본관 연혁
강진(康津)은 전라남도 남서해안에 위치하며, 옛 도강현(道康縣)과 탐진현(耽津縣)이 합쳐진 지명이다. 도강현은 백제 때는 도무군(道武郡)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무군(陽武郡)으로 불리었고, 940년(고려 태조 23) 도강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에 속하게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탐진현은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에 병합시켰고, 고려시대에는 영암에 속하였다가 뒤에 장흥(長興)의 속현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을 도강의 옛 관청소재지로 옮겨 설치하고 탐진과 통합하여 강진으로 개편하였다. 관할 관청을 탐진에 두었다가 1429년(세종 11)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겼고 1475년(성종 6)에 다시 탐진으로 돌아갔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진군이 되고 나주부(羅州府)가 관할하게 되었다.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강진김씨의 시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시조 김원경(金原卿)으로 고려 때에 사온서직장동정(司온署直長同正)을 지냈다. 문헌이 전하지 않아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김영광(金英光)으로 신라 신무왕 둘째 아들이다. 《신라김씨선원보》에 의하면 신무왕의 아버지 김균정(金均貞)이 836년(희강왕 1)에 있었던 왕위쟁탈전에서 패하여 살해되었고, 김우징(金祐徵, 후에 神武王)은 청해진으로 피난할 때 부인과 어린 왕자 4형제를 데리고 청해진(靑海津)으로 갔다. 그 후 838년(민애왕 1) 신무왕으로 즉위하였으나 4개월 만에 죽자 태자 김경응(金慶膺)이 문성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신라 조정과 장보고(張保皐)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자 문성왕은 김영광(金英光), 김흥광(金興光), 김익광(金益光) 등 형제를 돌보아 줄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피난처(避難處)에서 지내다가 강진(康津), 광산(光山), 영동(永同)으로 각각 옮겨가 살았는데, 김영광은 이후 강진김씨(康津金氏)의 관조(貫祖)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시조 김희조(金希祖)로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영(金殷說)의 9세손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과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으며 도성부원군(道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동강(강진)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강진김씨와 도강김씨(道康金氏)는 동원(同源)인 것 같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크게는 태인 사정공파(泰仁 司正公派), 강진 사직공파(康津 司直公派). 강진 전공조사공파(康津 典工曹事公派), 인천 병사공파(仁川 兵使公派)로 나뉘어지고, 작게는 태인 사정공파에서 훈도공파(訓導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좌랑공파(佐郞公派), 충의위공파(忠義衛公派)로 각각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면 신월리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송덕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용화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석문리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면 월암리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응리
평안남도 순천군 사인면 송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