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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행주(幸州) 기씨(奇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703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행주(幸州)는 경기도 고양시(高陽市) 행주산성 일대의 옛 지명이다. 백제시대에는 개백현(皆伯縣)이었고 고구려가 점령한 후로는 왕봉현(王逢縣)이라 불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우왕현(遇王縣)으로 고쳐 한양군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행주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楊州)에 귀속되었다. 1394년(태조 3)에는 고봉현(高烽縣)에 통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고양군 지도면(知道面)이 되었다가, 1985년에 지도읍으로 승격하였다. 1992년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됨에 따라 그 중심지역은 행주동으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행주기씨(幸州奇氏) 족보에서는, 기자조선을 연 기자(箕子)를 선계조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41세손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의 침입으로 전라북도 금마군(金馬郡: 익산군의 옛 이름)으로 옮겼고, 다시 그의 7세손 기훈(箕勳)에 이르러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기우성(箕友誠)은 덕양기씨(德陽箕氏: 덕양은 행주)의 시조가 되었고, 기우량(箕友諒)은 상당한씨(上黨韓氏: 상당은 청주)의 시조가 되었고, 기우평(箕友平)은 북원선우씨(北原鮮于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世系)에서 1세로 삼는 인물은, 기문유(奇文儒)의 아들로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기우성의 66세손인 기순우(奇純祐)이다. 기순우를 1세로 치는 이유는 한때 선대의 세계를 기록한 족보가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기자헌(奇自獻)의 동생 기윤헌(奇允獻) 집에 선계의 기록이 있었는데, 이괄의 난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688년(숙종 14) 족보를 개편할 때 이곡(李穀)이 지은 기황후(奇皇后)의 아버지 영안왕(榮安王) 기자오(奇子敖)의 행장(行狀)을 따라서 영안왕의 5대조인 기순우를 1세조로 기록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실된 것으로 알았던 고세계본(古世系本)이 기자헌의 동생, 기윤헌(奇允獻)의 둘째 아들 기정의(奇挺懿) 집에서 발견되어 선대의 행적을 알 게 되었지만, 기순우를 1세조로 하는 가계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기씨는 행주 단일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의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 온조왕 기록에는 기씨의 선조인 마한의 유민(遺民)이 온조왕에 의하여 한산(漢山)의 북쪽, 즉 행주(幸州)로 옮겨졌다고 하고 있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김포, 교하, 수원, 안산, 용인, 파주
경상남도 거창, 사천, 안의, 함양, 하동
전라남도 구례, 무안, 순천, 영광, 장성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행주기씨는 6,660가구 총 21,53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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