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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예천(禮泉) 권씨(權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376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예천(醴泉)은 경상북도 북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신라 영역으로 들어가 수주현(水酒縣)이 되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예천군이라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에 보주(甫州)로 개칭하였다. 1012년(현종 3) 용궁군(龍宮郡)으로 고쳐져 상주목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안동부(安東府)에 편입되었다가 명종 때 기양현(基陽縣)으로 승격, 1204년에는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되었다.
1416년(태종 16) 예천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729년(영조 5)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38년 군으로 환원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용궁군(龍宮郡)을 병합하였고 1937년 예천면은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예천권씨(禮泉權氏)는 본래 흔씨(昕氏)였다. 흔씨는 예천지방의 호족으로 호장(戶長)을 세습할 정도의 가문이었다. 《무진보(戊辰譜)》에 의하면, “시조인 권섬(權暹)은 본래 흔섬(昕暹)으로 고려 중엽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흔적신(昕迪臣)의 6세손인데, 고려 충목왕(忠穆王)의 이름이 흔(昕)이었기 때문에 국휘(國諱)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그의 외가 집 성씨인 권씨(權氏)를 취하고 본관은 시조의 세거지인 예천으로 하여 예천권씨의 세계를 열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고려사(高麗史)》에, “신종 원년에 명종의 휘 흔(昕)을 피해 예천의 흔씨(昕氏)에게 권성(權姓)을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19대 명종의 초명이 흔(昕)이었고, 29대 충목왕의 휘 역시 흔(昕)이지만 이 사이에는 150여년의 차이가 있다. 안동권씨의 세보에 의하면, 흔섬의 외조부인 권백서(權伯諝)는 고려 태조 때 인물인 권행(權幸)의 8세손이다. 따라서 섬의 대에서 개성을 하였다면 “명종의 휘를 피해 성을 내렸다.”는 《고려사》의 내용이 정확할 것 같고, 충목왕의 휘를 피해서 였다면 섬의 아랫대에서 개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예천권씨와 안동권씨는 일찍이 혼인으로 맺어진 가문이기도 하다. 상계(上係)인 흔적신은 안동권씨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며, 그의 3세손과 5세손인 흔승단(昕昇旦)도 모두 안동권씨 집안으로 장가를 갔다. 권섬은 충목왕때 예빈경(禮賓卿)을 역임하였고 전공판서(典工判書)에 추증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예천권씨와 안동권씨는 동성이본(同姓異本)이자 내외손(內外孫) 관계로 지금까지 통혼을 하고 있다.
판윤공파(判尹公派), 제평공파(齊平公派), 졸재공파(拙齋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가 있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안동시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북도 예천군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예천권씨는 1,512가구 총 4,87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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