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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담양(潭陽) 국씨(鞠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278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담양(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현재 담양은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와 창평현(昌平縣)을 1914년에 병합한 지역이다. 봉산면·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의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쳤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 도단련사를 폐지하였고, 담양군으로 개편하여 나주(羅州)에 편입시켰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原栗縣: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일대)을 병합하였다.
1395년(태조 4) 군으로 승격하였고, 1399년(정종 1)에 부(府)로 다시 승격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나, 1728년(영조 4)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쳤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창평군(昌平郡)이 폐지되어 담양군에 병합되었다. 1943년에 담양면이 담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에는 담양호와 광주호가 건설되어 용면 및 남면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성씨의 역사

담양국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시조는 국주(鞠周)이다. 국주는 본래 중국 송나라의 공경대부(公卿大夫)였는데, 금나라가 송나라의 황제였던 흠종(欽宗)을 납치해간 정란(政亂)이 발생하자 이 난을 피해 1128년(인종 6) 고려에 입국하여 귀화하였다. 국주는 고려에 입국하자마자 인종을 배알하고 군신의 예를 취하였는데, 인종이 크게 기뻐하면서 국주에게 감정관(監正官)을 제수(除授)하여 고려 조정에 출사(出仕)시켰다. 그리고 당시 중원(中原)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금나라에서 송나라를 제압하고 고려에게 군신의 관계로 대할 것과 많은 공물(貢物)을 요구하였는데, 인종은 국주를 금국봉사(金國奉使)로 임명하여 금나라의 요구에 외교적으로 대처하게 하였다. 국주는 왕명을 받고 여러 번 금나라에 왕래하면서 군신관계의 부당성을 주장하여 외교적으로 평등관계를 맺고 귀국하였다. 이에 인종은 국주에게 삼중대광(三重大匡) 추성군(秋城君: 추성은 담양의 옛 이름)에 봉하고 담양(潭陽)을 본관으로 정해주었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에서 귀화한 국씨는 담양을 관향(貫鄕)으로 세거(世居)하게 된 것이다.

분적종 및 분파

승지공항혁파(承旨公恒奕派)
덕온공윤방파(德溫公允邦派)
우수공성범파(迂叟公聖範派)
참판공윤원파(參判公允源派)
동계공항규파(東溪公恒珪派)
참의공윤돌파(參議公允突派)
감정공성대지파(監正公聖大支派)
금성공신도파(金城公愼道派)
일성공해생파(日省公海生派)
부사공윤학파(府事公允學派)
환성공함파(喚醒公涵派)
송만공침파(松灣公沈派)
송동공홍파(松洞公洪派)
죽계공명파(竹溪公溟派)
율동공렴파(栗洞公濂派)
담참공경희파(淡參公景禧派)
수참공명원파(水參公明元派)
감찰공민파(監察公旻派)
부사공정빈파(府使公廷賓派)
참판공도성파(參判公道性派)
운천공홍도파(雲泉公弘道派)
선전공계정파(宣傳公繼鄭派)
거창선전공파(居昌宣傳公派)
참찬공기업파(參贊公基業派)
태인공계업파(泰仁公繼業派)
수사공경파(水使公瓊派)
언양공대범파(彦陽公大範派)
동주공희정파(東洲公希程派)
직장공원용파(直長公元龍派)
참의공시영파(參議公時瑛派)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담양국씨는 4,892가구 총 15,774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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