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수운거사 작성시간22.11.20 먼저 저는 해미곽씨 시조 곽해 할아버지의 22세손입니다.
1743년(계해년) 발간한 족보에, <승이 조선조에서 벼슬을 했는데 해미로 귀양을 가서 그 자손이 (해미로) 본관을 바꿨다.
남쪽으로 갔다하나 공은 어떤 왕조 사람인가 미상이다. 한 본으로 자 숭원과 숭이가 있다> 로 되어있다.
또 청주곽씨로 알려진 15세 안반(安盤)을 승의 아들로 내세웠고, 승의 자손이 해미로 이관했다 했는데.
이후 족보에는 숭원, 숭형, 숭이, 숭정 등 네 분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승은 현풍곽씨 판관공파 14세로 창원교수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즉 '승'이란 인물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고려말 공민왕조에 중랑장을 지내신 곽해 할아버지 보다 60여년 후세사람입니다.
승이란 분은 해미곽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해미곽씨 시조는 <곽해>입니다, 잘못 기록된 족보와 책자를 보고 남의 시조를 함부로 바꾸지 맙시다. 올바르게 작성된 자료를 찾아보고 수정해주세요 -
작성자 수운거사 작성시간17.06.09 소위 국기기관이란 한국학 중앙연구원도 순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6년 포산곽씨족보와 2011년 현풍곽씨 족보를 보면 자세히 나와 있는데,
위에서 1976년 병진대동보 편찬 때 대종회 의결로 현풍으로 명칭을 통일하였다고 한다라고 했으면서
안에 있는 내용은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았군요
그런 자료는 보지도 않고, 엉터리로 쓴 자료만 보고 그대로 베껴쓰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한국학연구원에 잘못되었다고 제안을 했는데도 직접 연구는 하지 않고 나보고 자료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잘못된 자료를 베낄 시간에 최근에 발간한 포산곽씨족보 한 번 읽어보면 될 것입니다.
위키백과에 가서 보면 확실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