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씨 이야기

원주(原州) 최씨(崔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1|조회수568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원주(原州)는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 또는 치악성(雉岳城)인데,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北原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原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열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1683년(숙종 9)과 1728년(영조 4)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의 감영이 폐지되고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원성군(原城郡)이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원주군이 원주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원주최씨(原州崔氏) 시조 최치(崔峙)는 고려 말 문과에 올라 좌윤판선공감시사 상호군 전법판서(左尹判繕工監寺事上護軍典法判書)에 이르고 원주군(原州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대호군(大護軍) 최보은(崔寶隱)이 시조라는 설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세계집록(世系集錄)》에 그를 첫머리에 게재한 데서 연유했다. 《정묘보(丁卯譜)》에는 최보은이 최치의 손자라고 언급되어 있고, 서문에는 최치원의 17세손에서 분적되었다고 되어있다.

분적종 및 분파

원주최씨는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한 계통이다.
경성파(鏡城派), 명천파(明川派), 길주파(吉州派) 등 13파

주요 세거지

함경북도 경성군 금성면
함경북도 경성군 어라면 지공동
함경북도 경성군 어라면 하우동
함경북도 경성군 주북면 영원동
함경북도 경성군 주북면 화산동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 중평동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허의동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황덕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산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둔전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평촌동
함경북도 회령군 용흥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원주최씨는 550가구 총 1,709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