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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영천(永川) 최씨(崔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1|조회수108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영천(永川)은 경상북도 영천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대 골벌국(骨伐國)이었던 것을 초기 신라 때에는 절야화군(切也火郡)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임고군(臨皐郡)으로 개칭하였다. 925년(경애왕 2)에 고울부(高鬱府)로 고쳐 불렀고, 도동현(道同縣)·임천현(臨川縣)·맹백현·이지현(梨旨縣) 등의 현들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도동·임천현을 합하여 영주군(永州郡)이라고 불렀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파견하였다. 1018년(현종 9)에 경주(慶州)에 편입되었다가, 1172(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후에 주(州)로 승격되었다. 1414년(태종 14) 영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영천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신녕군(新寧郡)이 영천군으로 폐합되어 영천면을 신설하였다. 1937년 영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1년에는 영천읍이 시로 분리 승격했고, 1995년 영천군을 영천시에 통합하였다.

성씨의 역사

영천최씨(永川崔氏) 시조는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한 최균(崔均)의 9세손 최식(崔寔)의 둘째 아들 최한(崔漢)이다. 고려시대 예종(睿宗)과 명종(明宗) 양조에 많은 공을 세워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분적종 및 분파

영천최씨는 14세 최상(崔祥), 최유(崔裕)를 파조로 하여 참의공파(參議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로 나뉜다. 참봉공파는 후대에 몇 개의 파로 세분되는데, 최진린(崔震轔)의 후손이 좌윤공파(左尹公派), 최진화(崔震華)의 후손이 월주공파(月洲公派), 최위(崔瑋)의 후손이 방어사공파(防禦使公派), 최진중(崔震中)의 후손이 참판공파(參判公派), 최형(崔衡)의 후손이 매와공파(梅窩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경산군 용성면 곡란동
경상북도 경산군 용성면 외촌동
경상북도 상주군 수륜면 남은동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영천최씨는 5,886가구 총 18,72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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