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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떻게 처형이 아내의 언니인가?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9.12|조회수845 목록 댓글 0

 

 

  우리가 어떤 언어에 대해 말할 때 거론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다. 국어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역사성', '사회성'이니 '규범성', '과학성'이니 하는 말들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언어의 과학성이 언어의 사회성과 충돌하는 '가족 관계 호칭'에 대해 말을 해보려고 한다. 언어는 사회적인 약속이다. 일단 정해진 언어적 규범이 있다면 모두가 그 규범에 따라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언어는 과학성도 포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언어를 조합하거나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규칙들을 따라야 하고, 합성어의 경우 원래의 의미들이 변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족 관계의 호칭들을 꼼꼼히 들여다 보면, 이러한 '과학성'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물론 이미 그렇게 사용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면 그렇게 따르는 것이 맞겠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잘못된 언어적 약속이 제대로 된 언어적 약속을 쫓아낸 경우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가족 관계 호칭은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 '언니'처럼 순우리말에서 파생된 말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본적인 가족 관계 호칭은 한자의 조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부(父), 어머니는 모(母), 손 윗대는 조(祖) 식으로 호칭하는 것이 원칙이다. 거기에 덧붙여 나이 많은 남자 동생(同生, 원래 같은 부모에서 나왔다는 뜻이다)은 형(兄), 나이 어린 남자 동생은 제(弟), 나이 많은 여자 동생은 자(姉), 나이 어린 여자 동생은 매(妹)라고 부른다. 결혼한 사이는 일반적으로 부부(夫婦)라고 호칭하지만, 성조가 없는 한국어의 특성상 부(夫)와 부(婦)가 동음이므로 부처(夫妻)라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아버지의 형은 백(伯), 아버지의 제는 숙(叔), 아버지의 여자 자매는 고(姑)라고 부르며, 어머니 쪽 동생들은 외(外)를 붙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럼 이러한 조합 원리들을 이용해 가족 호칭들을 다시 재구성 해보자. 형의 아내는 형처(兄妻)가 맞고 제의 아내는 제처(弟妻)가 된다. 누나나 언니의 남편은 자부(姉夫)이고, 여동생의 남편은 매부(妹夫)가 되는 것이다. 처의 언니는 처자(妻姉), 처의 여동생은 처매(妻妹), 처의 오빠가 처형(妻兄), 처의 남동생이 처제(妻弟)가 되어야 한다. 남편의 형은 부형(夫兄), 남편의 남동생은 부제(夫弟), 남편의 누나는 부자(夫姉, 또는 媤姉), 남편의 여동생은 부매(夫妹)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의 형의 아내는 부형처(夫兄妻)가 되어야 하며 남편의 남동생의 아내는 부제처(夫弟妻)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누나의 남편을 매형(妹兄)이라고 부른다. 한자를 그대로 풀자면 여동생의 오빠가 되니까 나 자신이 되거나 다른 형제가 되는 것이다. 또 여동생의 남편은 매제(妹弟)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한자 그대로 해석해 보자면 여동생의 남동생이니 나의 남동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 고유의 가족 인식이 결혼을 하면 피가 섞이지 않아도 한 식구가 된다고 여기기에 이런 식으로 부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가족 관계 호칭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반복해서 잘못된 호칭을 사용하다 보니 엉뚱한 호칭들이 정착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다거나 혼동이 없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 관계의 호칭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니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또 형수, 제수 하는 식으로 쓰이는 수(嫂)의 경우, 전통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언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같은 집안에 들어온 아내들끼리 호칭하는 동서(同捿)라는 말도 같은 서방을 두었다는 의미로, 우리의 형사취수(兄死取嫂, 형이 죽으면 남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함) 전통에서 비롯된 낡은 표현이므로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여러 어려운 한자어들을 순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언어적의 효율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자어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고, 그 대표적이 경우가 가족 관계 명칭에 관한 단어들이다. '형의 아내'나 '여동생의 남편'처럼 길어지는 관계지칭어를 '형처'나 '매부'처럼 간단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한자어를 계속해서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언어는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고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그대로 써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가 분명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라면 원래의 원칙에 맞게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것이 우리 언어의 과학성을 지키고 증진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저 예전부터 쓰던 것들이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대로 가자는 것은 그저 타성이며 무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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