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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스크랩] 논어(論語)-30 위정편(爲政篇) 제4장 해설-2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11.08.13|조회수458 목록 댓글 0

위정편(爲政篇) 제4장 해설-2

四十而不惑하고
사십에 의혹되지 아니하고

於事物之所當然에 皆無所疑면 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라
사물의 당연한 바에 다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아는 것이 밝아져 지킴에 일삼을 바가 없느니라.

[앞주 해설]
나이 40을 ‘不惑年’이라고 한 것이 여기에서 나왔다. 맹자는 사십을 ‘不動心’이라 했는데 이에 대해 주자는 ‘彊仕ㅣ니 君子道明德立之時라’(강한 벼슬이니, 군자는 도가 밝아지고 덕이 밝아지는 때라)라고 하였다. 곧 사물의 당연한 바를 모두 깨우쳐 훤히 알게 되니 굳이 고집하여 지킬 것도 없는 것이다.

五十而知天命하고
오십에 천명을 알고

天命은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ㅣ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ㅣ라 知此면 則知極其精而不惑은 又不足言矣라
천명은 곧 천도가 유행하여 물건에 품부한 것이니 이에 사물이 써한 바 당연한 까닭이라. 이것을 알면 그 정밀함을 극도로 다할 줄 알아 의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족히 말할 것도 없느니라.

六十而耳順하고
육십에 귀가 순하고

聲入心通하야 無所違逆하니 知之之至며 不思而得也ㅣ라
소리가 들어와 마음을 통해서 어기고 거스리는 바가 없으니 앎이 지극해짐이며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느니라.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칠십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법도에 넘지 아니호라.

[본문 해설]
공자의 윗 글로 인하여 15살의 나이를 志年, 30을 立年, 40을 不惑年, 50을 知年, 60을 耳順年, 70을 從心年이라고도 한다.

從은 隨也ㅣ라 矩는 法度之器니 所以爲方者也ㅣ라 隨其心之所欲하야 而自不過於法度니 安而行之하야 不勉而中也ㅣ라

○程子ㅣ 曰孔子ㅣ 生而知者也어시늘 言亦由學而至하시니 所以勉進後人也ㅣ시니라 立은 能自立於斯道也ㅣ오 不惑은 則無所疑矣요 知天命은 窮理盡性也ㅣ오 耳順은 所聞皆通也ㅣ오 從心所欲不踰矩는 則不勉而中矣라 又曰孔子ㅣ 自言其進德之序ㅣ 如此者는 聖人이 未必然이오 但爲學者立法하야 使之盈科而後進하며 成章而後達耳니라 胡氏 曰聖人之敎ㅣ 亦多術이라 然이나 其要는 使人으로 不失其本心而已니 欲得此心者는 惟志乎聖人所示之學하야 循其序而進焉하야 至於一疵不存하며 萬理明盡之後면 則其日用之間에 本心瑩然하야 隨所意欲하야 莫非至理니 蓋心卽體요 欲卽用이오 體卽道요 用卽義요 聲爲律이오 而身爲度矣니라 又曰聖人이 言此는 一以示學者로 當優游涵泳하야 不可躐等而進이오 二以示學者로 當日就月將하야 不可半途而廢也ㅣ라 愚는 謂聖人은 生知安行하야 固無積累之漸이라 然이나 其心에 未嘗自謂已至此也ㅣ라 是其日用之間에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라 故로 因其近似以自名하야 欲學者로 以是爲則而自勉이오 非心實自聖이 而姑爲是退託也ㅣ라 後凡言謙辭之屬이 意皆放此라

종은 따름이라. 구는 법도의 기구이니 써 모나게 만드는 것이라.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스스로 법도에 지나치지 아니하니 편안히 하여 행해서 힘쓰지 아니해도 맞추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공자는 나서 아신 자이어시늘 또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름을 말씀하셨으니 써한 바 후인을 힘써 나아가게 하심이라. 立은 능히 스스로 이 도에 섬이오, 불혹은 고 의심하는 바가 없음이오, 지천명은 이치를 궁구하여 성품을 다함이오, 이순은 듣는 바가 다 통함이오, 종심소욕불유구는 곧 힘쓰지 아니해도 맞춤이라. 또 가라사대 공자가 스스로 그 진덕하는 차례를 말씀함이 이와 같은 것은 성인이 반드시 그러하지 아니하고, 다만 배우는 자가 법을 세워서 하여금 구덩이(과목)가 찬 뒤에 나아가는 것이며 문장을 이룬 뒤에 통달하니라.

호씨 가로대 성인의 가르침이 또한 법이 많음이라. 그러나 그 중요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할 뿐이니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자는 오직 성인의 보인 바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순서에 따라 나아가 하나의 병폐도 존하지 아니하며 일만의 이치가 밝게 다한 뒤에 이른 뒤면 그 날마다 쓰는 사이에 본심이 훤히 빛나서 뜻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지극한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대개 마음이 곧 체요, 하고자 함은 곧 용이오, 체는 곧 도요, 용은 곧 의요, 소리는 음율이오, 몸은 법도가 되느니라.

또 가로대 성인이 이것을 말씀하심은 첫번째는 써 배우는 자에게 마땅히 넉넉하면서 여유로우며 무젖어 들어와 가히 등수를 뛰어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는 써 배우는 자에게 마땅히 날로 나아가고 달로 가져서 가히 반도에 폐하지 않느니라. 우는 이르되 성인이 나서 알고 편안히 행해서, 진실로 쌓이고 쌓여서 점진한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이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이 그 날마다 쓰는 사이에 반드시 홀로 그 나아감을 깨달음이 있어 남이 미처 알지 못함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 근사함으로 인하여 써 스스로 이름하여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로써 법을 삼게 하여 스스로 힘쓰게 함이오, 마음이 실지로 마음이 스스로 성인임에도 이에 물러나 의탁함이 아니라. 뒤에 무릇 겸사에 속한 말들이, 뜻이 다 이를 모방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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