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구한말 대한제국 생활풍습

작성자사랑의 향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32 목록 댓글 1

 


사진으로 본 구한말 대한제국 생활풍습




▲마방집(馬房)

마방집이란 말을 두고 삯짐을 싣는 것을 업으로 하는 곳이다. 말이 더 이상 문반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면서, 마방집도 사라진 풍물 중의 하나 가 되었다.




▲여행차림

탕건을 쓰고 괴나리봇짐을 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오랜 풍상의 자 국과 인자함이 깃든 얼굴이다.




▲소를 탄 농부

"말 탄 양반 끄떡, 소 탄 양반 끄덕" 있듯이 소가 교통수단에 탈것으로 쓰이었다. 대개는 농부가 이용했다.




▲서당의 훈장과 학도들.

훈장의 위엄서린 얼굴과 어린이들의 표정이 재밌다.




▲서당풍경




▲서당(書堂) 풍경

삭발한 아이들과 편발한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배우는 책이 각기 다르므로 글 읽는 소리가 매우 시끄럽다. 그러나 아기 우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와 함께 삼호성(三好聲)이라 하여 이웃으로 부터 "소음공해"라고 반발을 사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필방

아이들은 글 읽는 외에 붓글씨를 배웠다. 따라서 지필묵(紙筆墨)의 수요가 대단해 동네마다 이런 필방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양반의 조복(朝服)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고도 하여 양반(兩班)이라고 했다.
요컨대 조선조의 귀족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조복(朝服)은 관원이 조정에 나 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다.




▲무관의 정장, 환도(環刀)를 차고 있는 젊은 무관의 모습




▲사또의 나들이

남여(藍輿)를 두 사람의 교군에 메고, 양옆에 구실아치 둘이 따른다. 뒤에 있는 종자는 서류궤를 짊어지고 있다. 藍輿는 의자와 비슷하고 뚜껑이 없는 작 은 가마인데 승지(承旨)나 참의(參議) 이상의 벼슬아치가 탔다.




▲사인교(四人高)

앞뒤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게 돼 있다. 민간에서 혼인할 때 주로 사용했다.




▲큰 벼슬아치의 가마.

네 사람이 메게끔 되어 있어 사인교라고 한다.




▲고관의 등청,

고관이 호피를 깐 사인교를 타고 등청을 하고 있다. 4인의 교군외에 단도를 찬 네 명의 호위병에 몇 사람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있다(1900년대),




▲초헌(軒)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외바퀴 수레로, 명거(命車), 목마(木馬), 초거(輟車), 헌초(軒輟)라고도 불렀다. 이 초헌은 앞뒤로 길게 난 들채와 들채 윗부분의 의자와 발판, 들채 아랫부분의 외바퀴와 외바퀴를 고정시키는 두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들채와 의자, 발판은 나무로 만들어 흑칠(黑)로 마감하였으며, 바퀴와 기둥은 나무로 만들어 쇠판을 덧씌웠다. 의자 등받이와 발판에는 해, 구름, 당초(唐草) 등의 문양을 부조(浮彫) 또는 투각(透刻)하였으며, 들채의 앞부분과 중간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나들이. 
나귀를 타고 나선 나들이,

고삐 잡은 하인의 표정과 행색엔 고달픔이 깃들어 
있다.




 
▲나루터, 건네주는 나룻배

멀리 강 건너에는 숲에 둘러싸인 그림 같은 강촌이 무척 정겨워 
보인다.




▲유생(儒生)

몸과 마음을 한치도 흐트리지 않을 것 같은 유학자의 정정한 모습




▲술상.

자작하는 노인네가 두 장정을 초대한 모양, 개다리 소반 위에 간단한 식사도 준비했는가 보다.




 
▲양반댁 아씨의 나들이.

귀하게 자랐음직한 양반댁 아씨가 가마를 타고 나들이에 나섰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마 옆을 따르던 몸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역참(驛站)

타고 여행하다가 역말을 갈아 타는 역참에 이르면 지친 말을 새 말로 바꾼다. 대개 25리마다 1참을 두고 50리마다 1원을 두었는데 역참과의 거리는 팔십 리 정도가 보통이었다.




공동우물, 마을

이런 공동우물에서 마을 아낙들은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소식을 묻고 소문을 교환하는 등 얘기꽃을 피웠다.




▲조랑말과 나그네.

여름의 산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나그네, 먼산들의 능선을 보니 산마루턱을 거의 다 오른 모양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갈모는 기름종이로 만든 것으 로 양산과 무산의 역할을 두루 했다.




▲조선조의 무

천인은 응시자격이 없었다.  과에 등용되려면 과거의 일종인 무과를 거쳐야 했고 학술보다는 실기 위주의 시험이었다.




 
▲날품팔이 노동자,

늘 입에서 떼지 않는 담뱃대는 그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십상이다.




▲제주 여인들의 물 깃는 모습


 
▲송사(訟事

동헌의 고을 뭔 앞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다.



▲호랑이 덫/범이 잘 지나다니는 곳에 만든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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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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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과객 6 | 작성시간 26.06.22 헐...백년은 된 풍경이네요..^^
    근데 호랑이덫은 처음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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