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제1차 세계대전.전.후 의 복식

작성자백작이쁜여우|작성시간12.12.04|조회수4,117 목록 댓글 0

제1차 세계대전.전.후 의 복식(1914년~1930)

사회문화적배경

프랑스 -산업의중심지 황폐화 러시아에 투자한채권상실

영국-전쟁으로 경제난심각

미국- 전쟁중 중립국-교전중인 연합국에 식량과 군수품공급. 많은 이익얻음

1차세계대전후 미국 눈부신발전 ,아시아 남아메리카 태풍양 지역 상권장악

러시아-공산주의 체제 성립

이탈리아 와 독일 파시즘이라는 새로운 이념대두 1차대전 여자들이 공장과 기타 사호적 분야 지출

여자복장-합리성과 기능성추구

전쟁이후 -다시 여성다움 강조된 복식유행

전쟁중 살아남기위해 파리는 오트퀴트르 패션을 미국으로 수출하기위해서 전력을 다함

일러스트레이션 (엘레강스 파리지엔)이라는 잡지를 통해 외국으로 배표 수출증진을위한 증대한 역할

패션-테일러드 쑤 트 광범의하게상요

오버스커트나 튜블러스타일의 튜닉착용

1915년 아워글라스 스타일- 현실도피 인간의 본능욕구

대표적실루엣-후프동원 여성스러움추구

포켓가장자리 또는 소매 스커트햄라인등 모피장식

1920년-가르손느 스타일로변화

여성들바지 즐겨입고 스트레이트박스 스타일 투피스 쑤트착용 ,자동차보급과 여성의바지는 스포츠웨어로 필수픔 .긴바지형스커트.짧은바지손호 일하는 여성 쎄일러스크트 풀오버나 스커트길이 짧은바지면서 색상양말이나 구두가 유행

1920년대 레이론스타킹 활성 여성의 머리는 짧아지며 모자착용.멋을내고 작고 꼭맞는모자는 눈에 그림자를 줄정도로 낮게 착용되어 .암울한시대표현

남성복-1910년경 .바지의변화시작

상의 어깨에 패드를 넣어 폭이넓어보이게 했고 바지는 힙을 헐렁하게하고, 아랫단을 좁게하여 역삼각형씰루엣을 만들어 호블스커트와조화를 이룸

1920년대-칼라의넓이와 바지의 폭이 약간 넓어짐 .케주얼 웨어로는 왜이셔트에 넥타이를 매고 그위에 스웨터를 입고아래에는 승마용바지를 입음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은 시절)라 할 만큼, 20세기 초는 예술, 문화, 과학, 그리고 패션에서 창의적, 열정적인 기운이 팽배하였으며 인류로 하여금 왕성한 변화와 실험을 시도하게 하였다. 영국에서는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서거와 함께 에드워디안(Edwardian) 시대라고도 부르고, 미국에서는 'the good years', 'the age of optimism'이라고 부를 만큼 모든 면에서 낙관주의와 삶의 즐거움이 풍미한 시대였다. 19세기 말 이래 서양 강대국들이 산업화 이후 원료 공급과 시장 개척을 위해 밖으로는 식민지 정책을 펼치고 안으로는 세력 간의 균형을 이루면서, 그러한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모더니즘 출범과 이국 취미의 시대(1900~1913)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낙관주의와 삶의 즐거움이 풍미한 시대

창의적인 예술과 과학의 발달
개인 자유의 급격한 신장을 경험한 프랑스는 창의적인 예술가와 과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새로운 세기의 변화를 주도하였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세잔(P. Cézanne), 고흐(Gogh)의 표현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뒤샹(Duchamp), 에른스트(Ernst) 등은 가장 극단적인 표현주의로 다다이즘 미술양식을 펼쳤다. 피카소(Picasso)와 브라크(George Braque)는 입체파 양식을 발전시켰고, 현대 미술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과학계에서는 1900년대 초반 아인슈타인(Einstein)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고, 마르코니(Marconi)가 라디오를 발명하였다. 1903년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가 하늘을 날았으며, 1903년 최초로 영화 [대열차강도]가 상영되어 서구 세계가 영상 오락에 빠지기도 하였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대규모의 국제 박람회는 파리 디자이너들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파리의 패션디자이너는 세계 패션의 리더로 군림하게 되었다.

자동차 문화의 확산과 기성복의 등장
1908년 헨리 포드(Henry Ford)는 T-Ford 모델 자동차를 개발하였는데, 이 새로운 자동차를 타기 위해 먼지막이 덧옷이나 베일로 가려진 모자 등 새로운 패션이 나타났다. 1913년 헨리 포드에 의해 자동화 공정을 거친 자동차가 생산되었는데, 이는 대량생산과 역동성이란 사회문화적 혁신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의류제조 기술이 발전하여 기성품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백화점이 새로운 유통의 장소로 등장하였고 중류층의 수요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메리 위도 헤트
헨리 포드가 개발한 T-Ford 모델 자동차의 등장은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 속의 여자는 메리 위도 해트(Merry Widow hat, 20세기 초 여성들이 썼던 챙이 넓은 모자로 주로 타조깃털로 장식, 오페라 [메리 위도]에서 유래)와 베일, 고글(goggle)을 쓰고 있다.

여자 전차 차장의 모습
1차 세계 대전 중 여자 전차 차장의 모습으로, 군인들의 제복에서 차용한 테일러드 재킷과 발목이 보이는 스커트를 입고 군인들의 철모와 유사한 모자를 쓰고 있다. 전쟁 중 여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보다 더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는데, 당시 자유스런 여성은 테일러드 슈트를 입거나 자전거를 탔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패션의 쇠퇴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1914년 한 광신적인 보스니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왕자를 향해 쏜 총탄이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되어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다. 1917년 레닌(Lenin)은 2월 혁명에 성공하고, 전체주의를 시행하면서 스탈린(Stalin), 마오쩌둥(모택동, Mao Zedong), 히틀러(Hitler)로 이어지는 독재자의 원형을 창출하였다. 전쟁 중 여성들은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고, 노동복, 유니폼, 상복 등을 많이 착용하게 되어 패션의 쇠퇴 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 많은 여성들이 전쟁에 나간 남성들 대신 일자리를 채우면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들은 종군 간호사로 직접 전선에 나가거나 공장에서 일했으며, 배달 운수업에 종사하거나 기술자로 일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의 대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동맹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협상국의 양 진영 간의 전쟁이 끝나자,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황실이 몰락하였고, 군수 산업의 확장으로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1차 세계대전 전 미국은 파리의 패션을 모방하고 상류 사회는 직접 수입에 의존해야 했으나, 전쟁 후는 [보그(Vogue)]를 주축으로 미국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 패션 쇼를 하게 된다.


어떤 패션이 유행하였는가?

패션디자이너의 탄생과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 형성
찰스 프레드릭 워스(Charles Frederic Worth) 이전의 복식은 왕족과 귀족의 신분과 취향을 구별 짓기 위한 잣대였다. 새로운 패션 스타일이란 왕과 귀족의 주문에 의해서만 탄생되었다. 그러나 워스는 19세기 후반기 버슬(bustle) 양식의 창시자로서 그의 취향은 왕족과 귀족의 표준이 되었고 패션디자인의 리더로서 군림하였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20세기 초 파리에서 오트 쿠튀르 (haute couture)가 형성되며 패션디자이너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영국인 워스를 비롯하여 두세(Jacques Doucet), 파퀸(Jeanne Paquin), 푸아레(Paul Poiret), 포르투니(Mariano Fortuny) 등 패션디자이너들은 창의적인 감각으로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고 자신의 디자인 하우스를 열었다.

찰스 프레드릭 워스

폴 푸아레

마리아노 포르투니

S-커브의 아르누보 여성미에서 기능적인 모더니즘으로의 이행
1910년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해 여성들은 클럽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등의 사회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옷 입는 규범이 느슨해지면서 패션의 변화가 더욱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은 남성의 테일러드 재킷(tailored jacket)과 셔츠 웨이스트 블라우스(shirts waist blouse)를 착용하였고, 스커트 길이는 짧아졌으며, 고어드 스커트(gored skirt)를 주로 입었다. 기능적이고 활동적인 바지를 착용하기도 하였는데, 일상복보다는 스포츠 웨어로 입었다.

복식에서 이국적인 취향
1903년에서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폴 푸아레는 프랑스 최고의 디자이너로 활약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입어 왔던 여성의 코르셋(corset)을 폐기시키고 속옷의 수를 감소시켰으며, 느슨한 가운 스타일을 여성에게 입힘으로써 신체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일명 페그 톱 스커트(peg-top skirt)라고 불리는 밑단이 좁은 호블 스커트(hobble skirt)를 고안하여 여성들의 걸음을 매우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이 호블 스커트 위에 느슨한 튜닉(tunic)을 입혔는데, 이를 미나렛(minaret, 회교의 뾰죽한 탑) 스타일이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스타일은 일본의 기모노에서 영향을 받은 한 예이다. 푸아레는 이 당시 예술이나 문화에 영향을 준 신고전주의, 동방풍, 그리고 러시아 발레단에서 많은 디자인의 영감을 받았다. 그는 전 시대의 유기적·곡선적·비대칭적인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적이며, 단순한 기모노 슬리브(kimono sleeve), 하이 웨이스트(high waist) 라인, 대칭적이며 리듬감이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동방적인 터번(turban)과 깃털 장식, 비즈(beads)와 금사의 자수를 애용하기도 하였다. 포르투니 또한 1906년경부터 1949년까지 패션 디자인을 하였는데, 그의 디자인의 특성은 과거의 서구 복식과 비서구 지역의 복식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스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직선적 형태의 주름 잡힌 드레스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이다. 포르투니의 디자인은 주로 무용수나 영화배우 등이 선호하였으며 대중의 지지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창의적인 감각은 동시대의 다른 디자이너에 의해 높게 평가 받았다.

전쟁 중의 밀리터리 룩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여성들은 원피스 드레스(one-piece dress) 보다는 투피스(two-piece dress)나 코트 드레스(coat dress)를 선호하였다. 싱글(single-breast)이나 더블 브레스트(double-breast) 재킷으로서 허리에 벨트를 매었다. 1916년경 스커트는 땅에서 6인치나 짧아졌고 테일러드 재킷의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이 유행하였다. 그 안에 레그 오브 머튼 슬리브(leg of mutton sleeve)의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였다. 전쟁 기간에 군복의 영향으로 여성복에서도 헐렁한 무릎 길이의 바지인 니커보커스(knickerbockers)와 승마용 짧은 바지가 출현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여성의 의복은 길이가 점점 짧아지거나 심플한 스타일이 유행되었으나 그렇다고 기능적인 복장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여성 의복에서 ‘캐주얼(casual)’이란 용어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미나렛 스타일
폴 푸아레는 호블 스커트 위에 느슨한 튜닉을 입혔는데, 이를 미나렛 스타일이라고도 불렀다.

기능적 모더니즘
여성들의 사회 활동 증가는 곧 패션의 변화로 이어졌다. 여성들은 웨이스트 블라우스를 착용하였고, 스커트 길이는 짧아졌으며, 고어드 스커트를 주로 입었다.

테일러드 재킷
이 시기 여성들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테일러드 재킷을 입게 된다. 그림은 셔츠 회사 '에로우 칼라 & 셔츠'의 광고 이미지(1907).

남성의 비즈니스 슈트
남성들은 모닝코트(morning coat)의 정장을 주로 입었는데, 베스트(vest)와 재킷, 바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셔츠와 넥타이를 하였다. 1차 세계 대전 후 모닝코트는 상류층이나 결혼식의 예복으로 입혀졌다. 정장 차림에는 톱 해트(top hat)를 착용하였다. 재킷은 싱글 브레스트, 더블 브레스트 두 종류를 입었으며, 20세기 초반에는 재킷 길이가 길고, 라펠(lapel)이 작고, 단추를 목 가까이에서부터 달아 배럴 실루엣(barrel silhouette)이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에는 길이가 짧아지고, 어깨선은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남성도 편안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경우에 캐주얼 복장을 입었는데, 볼러(bowler, 미국식 이름은 더비)나 홈버그(homburg)라는 모자를 썼다. 영국인들은 라운지 코트라고 부르고 미국인들은 색 코트(sack coat)라고 하는 슈트 차림이 주를 이루었으며 스포츠 웨어로도 이 색 코트를 입었다.


트렌치코트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군인들을 위해 개발된, 조밀한 조직의 트윌 코튼 개버딘(twill coat gabardine)의 천에 방수 코팅을 하고 허리 벨트가 있는 트렌치 코트(trench coat)가 디자인되었는데, 전쟁 후에도 유행했다. 이 방수 코트는 남성 레인코트의 기본적인 의복이 되었으며, 후에 여성도 레인코트로 착용하게 되었다. 후에 버버리(Burberry)와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은 이 트렌치 코트 생산업체의 리더로 군림하게 되었다.

홈버그
1900년대 남성들은 볼러나 홈버그라고 불리는 모자를 썼다. 그림은 독일계 미국인 휴고 라이징거의 초상화로 그가 들고 있는 모자가 홈버그다.(1907)

비즈니스 슈트
1900년대 색코트를 입고 볼러를 쓰고 있는 앤드류 카네기가 모닝코트를 입고 톱 해트를 쓰고 있는 위어데일 경과 걷고 있는 모습.

트렌치 코트
트렌치 코트는 원래 겨울 참호 속의 혹독한 날씨로부터 영국군인과 연합군들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세히 보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