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7월

7월 27일 - 윌리엄 와일러, "벤허"의 명장

작성자김인주|작성시간19.07.27|조회수299 목록 댓글 0

영화감독 혹은 작가 중에서 누가 가장 나은가? 이 질문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각자 취향이 다를 터이니. 가장 많은 쟝르에서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은 누구일까? 서부극, 드라마, 고전문학영화, 사극, 로맨스코미디, 뮤지컬, 심리극 등 종횡무진 명작을 만든 감독이 있다. 영화제명을 나열하면, “이세벨”, “우리생애 최고의 해”, “폭풍의 언덕”,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로마의 휴일”, “빅 컨트리”, “벤허”, “화니 걸”, “콜렉터등등, 어느 하나도 범작이 없다. 그는 1981727LA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윌리엄 와일러는 1902년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대에서 태어나, 성장기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25년에 만들어진 흑백 무성영화 벤허에는 조감독으로 참여하였다. 그 필름도 좋은 영상으로 꼽힌다. 습작 시대에도 결코 허술한 연출은 없었다. 그 결과, 필름을 많이 쓰는 완벽주의 감독으로 알려졌다. 1959벤허를 제작하면서 소요된 필름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필름낭비라 비난받을 수 있다.

화제작이어서 뒷 얘기도 많았다. 처음 구상했던 주역은 유대인 배우 폴 뉴먼이었는데, 첫 작품이 실패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때였다. 말론 브란도가 이 배역을 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주인공 에스더 역을 맡은 하이야 하라리트는 첫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원하여, 다시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 가족은 20세기 전반에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팔레스틴 유대인이었다. 단역으로 출연한 쥴리아노 젬마는 이름을 몽고메리 우드라고 영어식으로 바꿔 이후 서부극에 계속 등장하였다.

 

누가 지어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잘못된 정보도 있다.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혹은 시사회에서 감독이 하나님,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나요?”라는 소감을 말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영화작가는 필름을 공개하기 전에 수백 번 봐야 한다. 그 내용을 이제야 처음 보는 듯한 발언은 있을 수 없다. 원작자 류 월레스가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반대하는 글을 쓰다가 전환하였다는 일화도 50년 이상 돌아다닌다. 남북전쟁을 겪은 장군으로, 남부 주지사, 터키 대사를 지낸 명사였는데, 일생 이런 신앙소설을 쓰기를 좋아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