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시용(道謀是用)
집을 짓는데 길을 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짓는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 의견이 구구하여 집을 지을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이니, 일정한 주견 없이 남에게 좌우됨을 비유하는 말.
「詩經 小雅 小旻篇」,
如彼築室于 道謀是用 不潰于成
도방고리(道傍苦李)
길가의 오얏나무에 달린 쓴 오얏이란 뜻으로, 남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世說雅量篇」,
王戎七歲 嘗與諸小兒遊 看道邊李樹 多子折枝 諸兒競走取之 不惟戎動 人問之 答曰 樹在道邊而多子 此必若李 取之信然
도법자연(道法自然)
계절의 바뀜이나 우주만물의 생멸(生滅)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좋다는 말.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말로, 나라가 태평하게 잘 다스려짐을 비유한 말. 노불습유(路不拾遺)라고도 함.
「孔子家語 相魯篇」,
孔子之爲政也 三月則鬻牛馬者不儲價 賣羔豚者不加飾 男女行者別其塗 道不拾遺
孔子가 大司寇(법무장관)에 임명되어 재상의 직무를 본 지 3개월이 지나매, 소와 말을 매점매석하거나 양과 돼지를 에누리하지 않고, 남녀가 길을 달리 해서 문란함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子産爲政五年 國無盜賊 道不拾遺
子産이 정사를 바로잡은 지 5년이 되자 나라 안에 도적이 없어졌으며,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
「史記 酷吏列前」,
補上黨郡中令 治敢行 少蘊藉 縣無逋事 擧爲第一 遷爲長陵及長安令 直法行治 不避貴戚 以補案太后外孫脩成君子仲 上以爲能 遷爲河內都尉 至則族滅其豪穰氏之屬 河內道不拾遺 而將次公亦爲郞 以勇悍從軍 敢深入 有功 爲岸頭侯
義縱은 上黨郡 내의 어느 현령으로 승진하여 일을 과감하게 처리해서 거의가 용서되는 법이 없었다. 그 현에서는 그저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그의 통치 성적은 그 관내의 형령의 필두로 손꼽히게 되어서 長陵縣과 長安縣의 현령으로 승진되었다. 즉, 중앙 가까운 縣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 뒤에도 그는 법규대로 다스릴 뿐 귀족이나 외척에게도 조금도 고려함이 없었다. 脩成君의 아들로서 太后의 外孫이 되는 仲을 잡아다가 심문한 일로써 황제는 그를 유능한 인물이라 보고 河內郡의 都尉로 영전시켰다. 의종은 부임하자마자 그 지방의 호족이던 穰氏 일족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 후로부터는 하내군에서는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을 정도로 치안이 잘 되어갔다. 또한 이전에 강도의 한 패거리였던 張次公도 낭이 되었는데, 그 역시 군대에 나가서 용맹함을 인정받았고, 또 종군하여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는 용맹을 떨친 공으로 인해 岸頭侯로 봉해졌다.
「史記 齊世家」,
齊威王曰 吾有臣種首者 使備盜賊則道不拾遺
「史記 商君傳」,
行之十年秦民大說 道不拾遺 山無盜賊 家給人足
집을 짓는데 길을 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짓는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 의견이 구구하여 집을 지을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이니, 일정한 주견 없이 남에게 좌우됨을 비유하는 말.
「詩經 小雅 小旻篇」,
如彼築室于 道謀是用 不潰于成
도방고리(道傍苦李)
길가의 오얏나무에 달린 쓴 오얏이란 뜻으로, 남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世說雅量篇」,
王戎七歲 嘗與諸小兒遊 看道邊李樹 多子折枝 諸兒競走取之 不惟戎動 人問之 答曰 樹在道邊而多子 此必若李 取之信然
도법자연(道法自然)
계절의 바뀜이나 우주만물의 생멸(生滅)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좋다는 말.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말로, 나라가 태평하게 잘 다스려짐을 비유한 말. 노불습유(路不拾遺)라고도 함.
「孔子家語 相魯篇」,
孔子之爲政也 三月則鬻牛馬者不儲價 賣羔豚者不加飾 男女行者別其塗 道不拾遺
孔子가 大司寇(법무장관)에 임명되어 재상의 직무를 본 지 3개월이 지나매, 소와 말을 매점매석하거나 양과 돼지를 에누리하지 않고, 남녀가 길을 달리 해서 문란함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子産爲政五年 國無盜賊 道不拾遺
子産이 정사를 바로잡은 지 5년이 되자 나라 안에 도적이 없어졌으며,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
「史記 酷吏列前」,
補上黨郡中令 治敢行 少蘊藉 縣無逋事 擧爲第一 遷爲長陵及長安令 直法行治 不避貴戚 以補案太后外孫脩成君子仲 上以爲能 遷爲河內都尉 至則族滅其豪穰氏之屬 河內道不拾遺 而將次公亦爲郞 以勇悍從軍 敢深入 有功 爲岸頭侯
義縱은 上黨郡 내의 어느 현령으로 승진하여 일을 과감하게 처리해서 거의가 용서되는 법이 없었다. 그 현에서는 그저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그의 통치 성적은 그 관내의 형령의 필두로 손꼽히게 되어서 長陵縣과 長安縣의 현령으로 승진되었다. 즉, 중앙 가까운 縣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 뒤에도 그는 법규대로 다스릴 뿐 귀족이나 외척에게도 조금도 고려함이 없었다. 脩成君의 아들로서 太后의 外孫이 되는 仲을 잡아다가 심문한 일로써 황제는 그를 유능한 인물이라 보고 河內郡의 都尉로 영전시켰다. 의종은 부임하자마자 그 지방의 호족이던 穰氏 일족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 후로부터는 하내군에서는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을 정도로 치안이 잘 되어갔다. 또한 이전에 강도의 한 패거리였던 張次公도 낭이 되었는데, 그 역시 군대에 나가서 용맹함을 인정받았고, 또 종군하여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는 용맹을 떨친 공으로 인해 岸頭侯로 봉해졌다.
「史記 齊世家」,
齊威王曰 吾有臣種首者 使備盜賊則道不拾遺
「史記 商君傳」,
行之十年秦民大說 道不拾遺 山無盜賊 家給人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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