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버지/ 조병진님

작성자빈하루|작성시간25.07.10|조회수23 목록 댓글 4

 

아버지

조 병 진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가 고독한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웃으시는 걸 보지 못했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시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아버지 앞에서는 소리 죽여 웃어야 했고, 많은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는 항상 긴장된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아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아버지를 피해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돌아올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골목 어귀까지 나오셔서 나를 기다리며 염려하시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물끄러미 대문만 쳐다보셨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에 있어서 어머니의 가슴이 봄과 여름 사이를 왔다갔다했다면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갔다.
내 마음속에 아버지는 사랑보다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아버지만은 엄한 권위의 상징처럼 자식들의 생활을 규율하고 훈계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분도 늘 아버지였고, 글을 읽지 않고 날마다 놀러 다니다가는 '사람 안 된다.'라고 꾸중하시는 분도 아버지였다. 엄격함 사이에 존재하여온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왠지 차갑게만 느껴지는 아버지를 애써 외면하다 보니 마주 대하는 시간은 식사 때 외에는 거의 함께하는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어느 날 저녁이었다고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내방으로 건너가려는 나를 부르셨다.
"너 거기 좀 앉아라"
나는 주춤 놀라 멀찌감치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치 대죄를 지은 사람 모습이었다. 밥상을 물리시고 담배에 불을 붙이시며, 아버지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희 정승이 하루는 길을 가다가 석양에 밭 매는 농부에게 자기가 갈 곳이 여기서 몇 리나 되는지 묻자 30리라고 하였다. 그러면 일몰 전에 도착하겠느냐 물으니 아무 대답이 없다가 걸음을 한참 옮긴 후에야 다시 불러서 해지기 전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하도 이상해서 아까는 대답하지 않다가 가던 사람을 다시 불러서 대답하는 이유를 물은즉 "행보의 속도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대답하겠느냐"고 말하였다. 신중을 기하여 판단하는 일에 황희 정승은 크게 탄복해 마지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너 이 말을 명심해라."
아버지께서는 그 말을 던지고 안방으로 건너가셨다.
나는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필경, 평소의 나의 경솔함을 경계하신 말씀이 틀림없었다. 그 후부터 나는 더욱 아버지가 어렵고 두려웠다. 집에서는 물론, 밖에 나가서도 아버지의 엄숙한 표정과 근엄한 말이 생각나서 나 자신도 차츰 그런 표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 이후 잘 웃지도 않았고, 더욱 많은 침묵을 지켰다. 아버지와 꼭 같은 고독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독은 또한 어머니를 일평생 고독 속에 방치해 두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어릴 때 일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고독을 메우려고 신앙에 의지하여 위안을 받고자 열심히 종교에 전념하셨다.
어느 날 밤, 구약성서 아가서를 읽으시다가 갑자기 소리가 멎었다. 그 뜻은 잘 모르면서도 낭독하는 가락이 듣기 좋아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의아스런 시선으로 어머니를 살폈다. 눈물을 담뿍 머금고 계셨다. 나에게서 외면하시면서 한탄하셨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인생도 있는데....," 아마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었던가 싶다.
나는 이따금 어머니의 그 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으레 내 입가엔 쓸쓸한 웃음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고독의 제물이 된 어머니를 대할 때마다 나는 고독이 두렵고 싫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싶고, 엄숙하고 침울한 얼굴보다 명랑하고 쾌활한 얼굴들이 아쉽다.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양보하고 죽이기까지라도 하고 싶다. 내 아내와 자녀조차 나로 인하여 고독의 제물이 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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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희숙 | 작성시간 25.07.12 저의 부친께선 연세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잔소리를 하십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잔소리가
    필요한 존재인가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빈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7.12 살아계심을 오로지 기쁜 마음으로/!~~!!~
  • 작성자가원 | 작성시간 25.07.14 아부지=무겁다
  • 답댓글 작성자빈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7.14 그리고 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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