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힘/ 마경덕
저 사내는 프로다
배고파도 목말라도 발 저려도 종일 그 자세로
한 번도 졸지 않고 싸늘한 바닥에 앉아
악취를 참고 배뇨를 참고 가려움을 참고 추위를 참고 소음을 참고
매캐한 먼지를 참고 치미는 화를 참고
지하계단에 무릎 꿇고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저 늙은 사내,
이십 년 한자리에 눌러앉은 그 게으름이
사내를 먹여 살린다
지하도 입구
삼 년 경력 절름발이 사내
졸다가 자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늘 근무태만
돌아앉아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쌍욕도 하고,
오줌 누러 가고 밥 먹으러 가고 비 온다고 눈 온다고
아프다고, 생업을 작파하고 수시로 자리를 뜨는 그 부지런함에
늘 배가 고프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걸인(乞人)이 되려면 이 모든 것을 통과해야 한다
- 시집 『글러브 중독자』(애지, 2011)
.....................................................
지난 28일 방송된 '썰전'에 안철수 대표가 출연했다. 유시민 작가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사세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안철수는 "사는데 제일 중요한 기준은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사는 것"이라며 "변화를 만드는 게 삶의 가치"라고 덧붙였다. 유시민은 의자를 당기며 "그래도 힘들긴 힘드시죠?"라고 다시 물었다. 안 대표는 "힘들고 재미없을 때가 사실 많다"고 솔직히 답하면서, 어느 책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설명한 구절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바로 "아마추어는 자기가 재미있어서 일을 한다. 프로는 재미없어도 해야 되니까 한다"라는 구절인데, 자신도 '아, 내가 프로였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르면서 "정치하는 일이 왜 이렇게 재미없을까 생각하다가 용기를 얻는다"고 전했다.
한편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분의 발언과 태도로 보면 정치행위를 국가에 대한 비전과 이념보다는 자신의 성취 욕구에 사이클이 맞춰져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어쩌면 세간의 ‘초딩’이니 ‘아마추어‘라는 평판을 의식한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정치인이든 봉공에 앞서 자신의 욕망과 영달이 앞서기 마련이라지만 큰 정치의 뜻을 품은 사람의 변으로는 아쉽기만 했다. 우리가 단순하게 알고 있는 아마추어와 프로는 어떤 일을 본업으로 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좋아하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과 어떤 일에 전문가로서 그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의 차이 정도다. 스포츠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경기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함인가, 그저 즐기기 위해서인가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별이 현대에 와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올림픽 경기를 비롯해 국내외 ‘프로’란 수식이 붙지 않는 거의 모든 경기는 아마추어를 표방하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스포츠 등에서 이미 프로와 아마추어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아마추어는 곧장 프로의 기반이거나 프로의 속성을 그대로 갖춘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너무나 많다. 이 시에서도 ‘걸인’에 빗대어 조롱 비슷한 시선을 섞어서 우리 사회에서 프로가 되는 과정의 지난함과 험난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무슨 일이건 프로 정신이 없으면 버텨내기 어렵고 살아남기도 힘들다. 오늘 안철수의 승부수 관철로 일단은 통합의 동력을 얻은 듯 보여도 그가 꿈꾸는 제3지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리라.
그러나 그쪽 사정은 그쪽이 알아서 하면 되는데 당장 내 일이 코가 석자다. 어쩌다가 ‘시문학 운동’을 표방하고 계간 <시와시와>를 내고는 있으나 처음 시작을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나혼자 다 떠맡은 처지에서 나야말로 프로정신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버텨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저께 겨울호 발송을 마쳤는데 전체 발행부수 2,200권 가운데 우체국을 통해 발송된 책만도 1,700권이 넘는다. 책은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읽을 사람에게 가치 있고 정중하게 배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후원 여부를 떠나 우편 발송량이 늘어났다. 이에 따른 비용과 시간, 그리고 노동의 강도가 참으로 만만찮다. 여러 형식의 콘텐츠로 산문을 제외한 시만 해도 120편이 넘게 수록된 책이다.
책의 1년 4권 구독료(원래 무가지 형식이라 후원회비라 칭하지만)가 1만원인데, 그래봤자 발송비 포함하면 제작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유료 독자 수를 늘이는 것이 현실에서는 적자를 줄이는 최선의 방안이다. 처음 의기투합할 때 가졌던 적당주의와 막연한 낙관,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어림도 없다. 비용문제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외면 받지 않고 가독성 높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품질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책의 품질은 내용의 품질이며 글의 품질이다. 일반 독자들은 그 책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투자나 공정에는 관심이 없다. 아무 글이나 마구 실어서는 안 되며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 <시와시와>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자기중심적인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새해부터는 재미없고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해야 되는’ 일이니까 전혀 돈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프로의 힘’으로 밀고나갈 것을 약속하며 다짐한다.
권순진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빈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1.04 *^^*
-
작성자화니 작성시간 18.01.04 그렇치요. 프로는!
옆눈질 없이 한구멍을 파야 돈이 생기 던지 명예가 생기 던지 할 것이다 .
-
답댓글 작성자빈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1.04 권순진님의 "시와시와"라는 계간지를 받아 보고 있는데요
너무 좋습니다....권순진님의 말씀대로 돈되는 책의 발행임에도 퀄리티는 상당히 높습니다
저와같이 얼치기 습작자들은 참 좋은 교과서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