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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두로에 대한 심판/겔 26:1-14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06|조회수20 목록 댓글 0

두로에 대한 심판

 

 

[본문] 겔 26:1-14

 

 

두로는 헬라어로 ‘튀로스’, 라틴어로는 ‘튀루스’(Tyrus)라 하고 영어로는 ‘타이어’(Tyre)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티레’라고 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초르’인데, ‘바위’(rock)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 오늘날 레바논 남부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해안에서 약 8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바다의 요새’, ‘견고한 성’이라고 합니다(23장). 맞은편 육지 쪽에 ‘옛 두로’가 있었는데, 이것이 먼저 있었고 후에 섬에 ‘새 두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두로와 육지 쪽의 시돈 지역을 수로-보니게(Syro-Phoenicia)라 부르는데, 그들 자신은 자기를 ‘가나안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두로는 해상 무역을 해서 크게 번성하고 부요하였습니다. 이집트,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를 다니며 무역을 하였으며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대서양까지 탐험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유명합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이 페니키아인들은 옛날에 동쪽의 에리트레아 해(Erythraean Sea)에서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페르시아 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어떤 학자들은 바레인에서 살다가 왔다고 봅니다. 이들이 서쪽으로 올 때 항해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어 무역을 해서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전 1,000년경에 쓰기 쉬운 알파벳을 만들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글자를 간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국제 무역을 하면서 영수증과 계약서를 하도 많이 쓰다 보니 간단한 문자가 발전되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두로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었는데, 그 죄가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두로가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두로 사람들이 기뻐서 좋아한 것입니다. 왜 좋아했습니까?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중앙에 있어서 당시의 무역을 통제하고 관세를 매겼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만민의 문’이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만민의 문’이 없어졌으니 두로는 마음대로 무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홍해 입구의 항구 엘랏에서 두로까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엘랏을 통해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와도 직접 교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권이 두로에게 돌아왔다고 해서 기뻐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두로에게는 이득이 되고 남의 불행이 두로에겐 행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로는 이웃의 불행을 즐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악한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두로를 심판하십니다. 3-14절에서는 두로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4절과 14절에서 “맨 바위가 되게 하신다”는 것은 ‘두로’의 뜻이 ‘바위’인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7절에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데리고 와서 두로를 공격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6절에서 “...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와 8절의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는 육지에 있는 여러 딸 도시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7절에 ‘말(馬)’과 ‘기병(騎兵)’이란 단어가 나오고, 10절에도 ‘말(馬)’이 나오는데, 두로는 섬이기 때문에 사실 ‘말(馬)’은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이것을 ‘상징’으로 보는데, 그러나 이 ‘말들’은 두로 맞은편에 있는 육지의 딸 도시들을 공격하고 점령하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멸망 후 두로를 13년간 포위했지만(586-573 B.C.) 함락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두로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568년에 두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였습니다. 그리고 200여년 후인 주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와서 점령하였습니다. 7개월간의 공략 끝에 겨우 함락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댐을 건설하여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두로의 주민들 중 성인 남자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두로가 왜 이렇게 멸망한 것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두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멸망을 기뻐한 것이 큰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의 불행, 이웃 나라의 불행을 기뻐하면 안 됩니다. 로마서 12:15에 보면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해서 헐뜯고 공부 못하게 하면, 결국 자기도 공부 못하게 되고 불행하게 됩니다. 옆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잘하도록 도와주면 그 친구 덕에 나도 같이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생공영(共生共榮)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공부 잘하는 것이 배가 아파서 “너는 뭐 잘났냐?”고 하면서 헐뜯고 비방하고 괴롭히면 결국 자기도 손해입니다. 그런 심보로 세상을 살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웃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고 착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나라도 잘되고 발전합니다.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이지만 주위 나라들과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과 두루 잘 지냅니다.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못 사는 나라들을 많이 돕고 있습니다. 기아 대책 기구와 심장병 환자 돕기,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AIDS와 에볼라 퇴치 등을 위해 많이 돕습니다. 오래 전부터 수 백 개 단체를 통해 구호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린 피스’(Green Peace)는 암스테르담에 본부가 있고, ‘암네스티 인터내셔널’과 ‘국경 없는 의사회’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을 도우고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로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주전 10세기의 히람 왕 때였습니다. 히람(Hiram)은 다윗과 솔로몬의 친구였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 히람은 기술자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교역할 때 두로는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우리 원우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넓은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온 세상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받고 다함께 복을 받아 잘 살게 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시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록,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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