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기를 배우라
빌립보서 4:10-13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현대인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삶은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더 좋은 것을 바라고 더 빠른 것을 원합니다. 그 이유는 생존 경쟁이 그 첫째이고 둘째는 남이 갖지 않은 걸 갖고 뽐내길 원하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불안하며 속이 뒤틀리기 때문입니다.
대중 상업 광고는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현재 것에 불만족을 느끼게 하고, 반면 광고 되는 선전물은 인간의 모든 욕구에 만족을 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업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아 가는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불만족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든 필요한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다 제공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과 불안과 염려 가운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평신도로 있을 때, 어떤 선배 집사님 댁에 놀러 갔습니다. 그 집을 둘러 보는데 어떤 방을 들여다 보니 장난감이 온 방 가득합니다. 정말로 얼마나 장난감이 많은지 전자 게임들이 없는 것이 없고, 온갖 종류의 인형과 로봇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심심해 죽겠다며 할 일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다른 장남감을 사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은 돈이 많은 집이라고 얼마든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고 있지만, 그 어린 소년의 끝없는 욕구를 어떤 부모가 다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목회하면서 어떤 꼬마 여자애만 자녀로 둔 집에 놀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도 매우 부자였습니다. 그 집에는 외동 딸이 하나 있었는데, 고 녀석 방에도 가보니 옷이 수백벌이 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딸 아이는 엄마에게 입을 옷이 없다고 조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증상은 어린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심합니다. 어떤 바람둥이 남자는 쉴새없이 애인을 바꿉니다. 이 여자가 맘에 들어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 보면 더 이쁘고 더 참신한 다른 여자가 보입니다. 그러면 지금 사귀던 애인을 발로 차고 그리로 갑니다.
자동차도 마찬 가지입니다. 새 차를 구입한 후에 너무 신이 납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가 더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곧 자기가 모는 차에 진력이 나고 몇년 되지 않았는데 또 새차를 삽니다. 돈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돈만 있고 능력이 있으면 끊임없이 더 비싸고 더 좋은 차를 사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직장을 바꿉니다. 이 일을 하면 곧 진력이 나서 다른 일을 해 봅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는데 곧 싫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한 군데 있지 못하고 계속 흘러다니며 여러가지 직업을 갖게 됩니다.
여성들의 살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쓸만한데도 계속 가구를 바꾸는 가정이 있습니다. 돈만 나면 새로운 가구를 들여오고 좋은 가구인데 내다 버리는 집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 저것 너무나 많이 바꾸어 대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를 더 요구하며 살고, 그 요구한 바를 얻으면 쉽게 싫증을 내고 또 불만족의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또 새로운 것, 자극적이고, 환상적인 것을 따라 평생을 좇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참 만족이 없이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과 불만족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헛된 정욕이라고 합니다. 헛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순종하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정욕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이러한 세상의 정욕의 특징은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원치 않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요 만족함이 영원치 않으며 결국 죽음 이후에는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헛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욕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욕망(Desire)이 될 때 성경은 그것을 "탐욕" 이라고 부릅니다. 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탐심" 또는 “탐욕”의 대상은 돈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성적인 쾌락이며, 그 다음이 권력, 인기, 외모, 교육, 가문 등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탐욕의 대상의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6).
그렇다면 우리는 탐욕과 탐심에 대해 잘 알아야 우리 자신이 그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탐욕 또는 탐심의 특징을 성경적으로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는, 탐심은 탈을 쓰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살전 2:5).
여기서 ‘탈’이라는 것은 탈 춤을 출 때 쓰는 ‘탈’을 말합니다. 원어로는 (포로파시스)라고 합니다. 즉, 실제를 감추고 다른 위장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면’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습니다. 아무튼 탐심은 ‘가면’ 또는 ‘탈’을 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탐심의 가장 큰 특징은 ‘속인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감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탐심의 죄는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너무 잘 속습니다. 즉, 탐심의 무서운 상태에 처해 있으나 정작 자신은 탐심이라는 우상 숭배 속에 빠져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옆사람은 그 사람이 탐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을 아는데, 자신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어리석은 탐심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이처럼 탐심의 탈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할 때 보면 많은 죄를 고백하지만 정작 탐심의 죄를 고백하는 자를 만나 본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우리 자신이 탐심의 죄에 철저하게 속는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율법에 자신 만만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율법주의에 있어서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웠으며 그의 가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사회적 지위는 대단했습니다.
그는 십계명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 만만했습니다. 여호와만 섬겼으며, 우상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분의 이름을 망녕되게 한 적이 없으며,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고, 부모를 공경하였으며, 살인, 간음, 도덕질, 거짓말 등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탐내지 말라”에 대해서는 바울이 철저하게 실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즉, 바울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탐심의 사람인 것을 깨닫고 자기가 죄인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영원히 의롭게 여겼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탐심은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속이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으면 평생 탐심 가운데 살면서 스스로 속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평생 탐심에게 속고 살다가 죽음 직전에 알게 되면서 눈을 감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억울해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탐심은 파괴적인 것이 그 특징입니다. 특히 탐심은 모든 죄악들의 뿌리입니다.
[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
특히 돈을 향한 탐심은 한없는 죄악들과 끝없는 죄악들을 만들어냅니다.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이처럼 돈을 향한 탐심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뿌리입니다. 모든 죄악의 뿌리는 돈에 대한 탐심입니다.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돈 때문에 모든 귀한 것을 잃어갑니다. 우정도 잃어가고 신앙도 잃어가고 사랑해야 할 가정과 자녀들과 부모들까지 다 잃어갑니다. 교회에서도 돈에 탐심이 있는 자들은 모든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고 깨어지게 됩니다. 이는 그 사람이 인색하고 탐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탐심은 모든 관계 및 선한 것들을 파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가 탐심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는 돈에 대한 탐심에 빠져있는 한,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믿음은 아직 참 믿음으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죄의 뿌리는 탐심입니다. 왜 주의 날을 지키지 못합니까? 탐심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을 하지 않는 것도, 살인 죄를 짓는 것도, 도둑질을 하는 것도, 거짓말을 하는 것도 탐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탐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엡 5:5).
이처럼 탐심은 탈을 쓰는 특징이 있고 파괴적이며 또한 모든 죄악의 근원이요 원인이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면 탐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탐심은 성경에 의하면 사탄과 사륵스라는 우리 속의 죄성에서 생겨납니다. 사실 사륵스는 가만히 잠자고 있고, 사탄은 유혹이라는 덫으로 그 사륵스를 자극합니다. 그래서 사륵스와 유혹이 만나게 되면 탐심이 구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모든 인간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탐심과 사륵스가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육체라는 사륵스는 잠자고 있는 탐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탐심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유혹이라는 덫을 입에 물 때 난리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맨처음에 탐심은 오직 사탄에게만 있었습니다. 사탄의 탐심은 놀랍고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지독하게 어리석어지는 어둠입니다.
사탄 안에 있던 이러한 교만한 탐심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손아귀에 넣음으로 그 탐심은 인간에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인류의 마음 속에는 사륵스라는 탐심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탐심은 권세욕, 물욕, 성욕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우리는 죄로 인하여 탐심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탐심이 가장 크며, 이는 철학적인 용어로 이기심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탐심이 많은 사람은 사탄을 닮은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탐심의 노예로서 죄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탐심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기가 태어난지 6개월도 안 되었는데 자신은 10개를 갖고 있고 다른 아이가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 하나마저 빼앗으려고 그 아이를 밀칩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이미 그 아이 마음 속에는 이미 탐심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기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육에 사람이든지 또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갓난 아이 수준의 영적인 미숙아라고 진단하였습니다.
[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1-3)
이러한 이기적인 존재들은 가정, 사회, 하나님의 나라에 파괴적인 위험 인물들입니다. 바로 이 이기심이 탐심이며 죄의 뿌리입니다.
세상도 이러한 이기심이 너무 밉고 싫어서, 사람의 이기심을 제거하기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상 교육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전된 세상 교육을 보십시오. 세상 교육이 사람을 변화 시켰습니까? 인간의 이기심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탐심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된 세상의 교육들은 그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더 부자가 되고 더 권력을 누리며 더 많은 인기과 야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큰 욕심을 갖게 되고 결국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교육을 많이 받은 자들마다 오히려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한 좌절과 분노와 증오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이들 대 부분이 자신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 심한 압박을 늘 느끼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돈, 높은 인기, 높은 권력, 많은 야망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며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자들이 더 많이 자살하는 경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철학 및 종교도 본래는 이기심을 제거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이기심을 부추겨서 우월의식과 경쟁과 더 큰 탐심을 유도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유가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탐심을 채우기 위한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와 노력들은 철저하게 복음의 정신과 위배됩니다. 그 이유는 탐심을 제거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인데 제거는커녕 탐심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탐심과 이기심을 제거할 길과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탐심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자족의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깊은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지독하게 궁핍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하였습니다.
[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1-12).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러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까? 그 해답은 13절에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능력은 인간의 탐심을 목표로 놓고 그 목표를 이루어 가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평강과 평화의 삶을 누리는 비결,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 하나님께 충성하는 능력, 믿음을 지키는 능력, 거룩과 사랑을 잃지 않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서 내 능력이 전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사실 빌립보서를 쓸 때 바울은 로마의 깊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세상적인 능력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가장 연약한 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3절은 고린도후서 12장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구약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자족의 해답을 얻습니다. 하박국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불의와 패역함으로 가득한 것을 보며 낙심합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그후 하나님 안에서 하박국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배웁니다.
[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존 무어라는 그리스도 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주님 안에서 단순한 삶, 청념한 삶을 평생 살아왔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고백합니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의 고백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노라. 내게는 필요한 모든 것이 항상 있었노라. 머리 둘 곳이 있었고, 마실 물이 있었고, 먹고 살 음식이 있었고, 행복한 가정이 있었고, 내게는 늘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만족하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아. 나는 참으로 만족한 삶을 살다가 주 앞에 가는구나”
그러나 폴 게티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였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영광과 인기와 명예를 다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고백합니다.
“내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도다. 뭔가 빠져있다. 너무나 허망하다. 나는 좀 더 산다면 온 세상의 돈을 다 모았을 것인데, 아 아쉽도다. 그럼에도 지금 제일 부러운 것은 행복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이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있는 평안과 만족과 참 사랑 속에서의 기쁨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서 얻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비천에 처해 보기도 하고, 풍요와 세상 영광에 있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만족과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단 한번 사는 것입니다. 탐심에 속지 마시고, 자족함의 비결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자족의 비결을 배울 때 진정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도우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분의 깊은 사랑과 능력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비결은 오직 주님 당신이시며 그 분과의 사랑이며 또한 주님에게 속한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비결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언약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상황에서의 승리의 비결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자족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할 때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임할 것이며 남들과의 비교 의식이 제거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쉬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두 손으로 하나님을 붙잡길 원하는 욕구가 쉬지 않고 넘칠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나타나는 바울은 쉬지 않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족하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탐심에 빠지면 가장 먼저 잃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우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웃들에게 감사하고 목사님과 부모님들께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자족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하게 체험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는 조건 없이 나타나는 아가페 사랑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족하는 삶은 나눔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눔의 삶은 ‘코이노니아’의 삶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구원하신 목적이 완성되는 삶입니다(참조, 요 17장).
사랑하는 여러분!
자족하는 삶은 어느새 찬양이 흘러넘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찬미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3, 6).
예수님만으로 진정한 배부름을 체험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자족의 비결을 배우고 누리는 자들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로만으로 배부른, 그러한 자족하는 삶을 사는 참된 성도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