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에
욥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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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팔과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으로 레슬링대회에 참가하여 박진감 넘치는 시합을 보여준 더스틴 카터(Dustin Carter)입니다. 오하이오주 힐스보로 고등학교 3학년. 열여덟 살의 그는 3년 동안 42승 4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레슬링 유망주였습니다. 주 대표선수권 8강전에서 분투 끝에 패배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관중들은 10분간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패배했지만 그는 이미 영웅이었습니다. 더스틴은 5살 때 혈류에 박테리아가 감염되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습니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두 팔의 일부와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따라서 시작한 레슬링에 빠져들었고 주 대표선수라는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불완전한 신체로 일반인과 경기를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 몸을 단련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대신 수영으로 체력을 단련하였습니다. 두 팔로 펜을 잡고 글씨도 능숙하게 쓰고, 계단도 미끄러지듯이 쉽게 내려옵니다. 그는 현재의 상태에 절망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불행과 갑작스러운 위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질문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더스틴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다시 손과 발을 갖기 원하느냐” 물으면 그는 NO! 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린 옳은 결정과 그른 결정, 내 주변에서 나를 사랑하여 주고 격려해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장애인이라고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 이 모든 것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자신이 가는 길에서 승리한 모습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독실한 자입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욥기서는 기록합니다. 가족과 재산에 대해서도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로 소개합니다. 이렇게 다복했던 욥의 가정에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쳤습니다. 사탄의 시험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종기로 인해 온 몸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는 신세가 되었으며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노라고 욥기서는 증거합니다. 욥의 고백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초점을 고난에서 하나님으로 옮겼습니다. 눈을 돌려 하나님이 고난의 자리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눈을 돌려 자신을 본 것도 아니고 상황을 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자만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는 신앙고백이 가능합니다. 내가 가는 길의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확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확신을 가져야 합니까? 첫째로 나를 아시나니 한 아이가 장작을 패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다 팬 장작을 한데 쌓아놓더니 아들에게 말합니다. “이 장작을 부엌으로 날라야겠는데 좀 도와주지 않겠니?” “예, 그러지요.” 아이는 두 팔을 벌리고 아버지가 놓아주는 장작을 받았습니다. 수북이 올려놓은 장작을 들고 부엌으로 가는 아이를 본 동네 어른이 묻습니다. “조그만 체구에 너무 많이 들고 가는구나. 무겁지 않니?”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내가 얼마나 들 수 있는지 아버지가 나를 잘 아시거든요.” 내게 고난이 벅찬 것 같아도 하나님은 견딜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도리어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향하여 일하시는 하나님께 아멘 해야 할 뿐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에게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질과 가족과 많은 것을 잃었어도 믿음은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진정한 재산이며 영원한 기업입니다.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고난을 이겼고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무너지지만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 고통, 눈물을 아십니다. 수고, 봉사, 충성도 아십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내가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오직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를 단련하시니 일본의 내쇼날(National)그룹의 창업주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기업의 귀재라고 불립니다. 94세로 운명할 때까지 산하에 570개 기업, 종업원 13만명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점포의 점원이 되어 밤마다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던 울보였답니다. 그러던 그가 85년이 지난 후 일본 굴지 기업의 총수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마쓰시다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큰 성공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세 가지 하늘의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고 대답합니다. “세 가지 은혜란, 첫째 가난한 것, 둘째 허약한 것, 셋째 못 배운 것입니다.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기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또 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도 일찍이 깨달아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써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합니다. 또 초등학교를 중퇴했기에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데 노력하여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환경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기 위해 하늘이 준 시련이라 생각되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 고난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긴 뒤에 반드시 예비된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연단시키십니다. 훈련된 병사가 적을 이기는 강군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여기의 단련이란 몸과 마음을 닦아 익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드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깨끗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단련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귀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단련이나 훈련 없이 사용하시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지식이 증가한다고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명예나 권세가 높아진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진다고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나 권세, 명예가 높아질 때 변화가 아니라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잡혀 말할 수 없는 고난이지만 단련 받을 때 반드시 변화됩니다. 더 악해질 것 같고, 변질될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완악했던 사람이 부드러워집니다. 교만했던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이기적이던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풀무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니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단련하셨습니다. 거저 하나님의 일꾼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련 받음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 역시 크게 쓰시기 위해서 크게 단련하셨습니다. 욥을 단련하여 쓰신 것처럼 하나님의 단련을 통해 비로소 우리도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를 만드시니 파스칼(Pascal)은 물리학의 여러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이지만, 후에 위대한 신앙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학자이기도 합니다. 저서 팡세(Pensée -명상록)는 뭇 종교인들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스칼이 신령한 은혜를 받고,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까닭은 육체의 고난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다 말이 놀라 펄쩍 뛰는 바람에 다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온 몸이 상하고 죽을 뻔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누워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병석에서 치료받는 동안 경건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의 감화를 받아 성경을 읽고 명상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을 섬기라고 건강을 주셨건만 나는 그것을 세상을 위해서 전부 다 써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나를 일깨워 주시려고 나에게 육신의 고통을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이 시련을 금 제련에 비유한 것은 재물의 회복이 아닌 인격과 영예의 회복이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욥은 모든 과정들을 자신을 순금처럼 가치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해서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불로 금을 연단하듯이,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단련하셔서 정금 같이 순수하고 흠 없는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과 고난이 가져다 줄 영광스러운 결과를 알았기에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순금처럼 만들기 위해 훈련하십니다. 존귀한 사람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농장에 허리케인(Hurricane)이 불어 닥쳤습니다. 집과 농작물, 가축들까지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농부는 절망하여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무너진 닭장 속에서 벼슬이 찢기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수탉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나왔습니다. 수탉은 날개를 퍼덕이며 무너지지 않은 담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햇살을 바라보며 목청껏 외쳤습니다. “꼬끼오” 이 모습을 보던 농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 다시 일어나자. 나도 하늘을 향해 울고 있는 저 수탉처럼 다시 일어나자”. 잿더미 속에서 수탉이 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본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 울부짖도록 하는 본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 본성을 찾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난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길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아시리라,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시리라, 하나님이 나로 순금처럼 만드시리라는 확신입니다. 부디 내가 가는 인생길이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고난을 이겨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 2011-04-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