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암미, 루하마라 하라.
호세아 1:1-11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세아 선지자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시절에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한 주의 종입니다. 그는 약 60년 정도 선지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남유다를 위한 선지자라기보다 북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주신 때는,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가서 술집여자 중에 바람기기 많은 창녀를 하나 골라서 장가를 가거라. 그 여자는 결혼한 후에도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에게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 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네 아내가 너를 여러번 버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아내를 버리지 말고 다시 데리고 와서 함께 살도록 하거라. 너는 그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 여자는 네 아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을 계속 부끄럽게 하고 경멸스럽게 만들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부탁하는데 변함없이 네 아내를 사랑하거라.”
지금 호세아를 통하여 주께서 보여 주고 싶은 메세지는, 호세아의 아내 고멜과 같은 여자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우상 신들과 외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에 사실 하나님은 자신을 호세아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고멜로 비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영적으로 결혼한 관계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고멜처럼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외도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괴로우신지를 알리고 계신 것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불륜에 빠져 남편 호세아와 가정을 버리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간음을 상징하는 사건인데 곧, 바알과 아스다롯 등 세상 우상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져버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실, 생각해 봅시다. 호세아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남편을 떠나 바람피는 아내! 그리고 가출한 후에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고 아이를 하나씩 낳아서 데리고 올 때 그 남편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러한 아내를 찾아서 다시 데리고 돌아오는 호세아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묵묵히 다시 데리고 오고, 또 다시 데리고 오는 호세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처럼 사탄의 종교인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우상 숭배에 빠져 영적 간음을 행하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데리고 오고 다시 데리고 오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호세아가 살던 시대와 매우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모스의 글과 이사야의 글을 통하여 호세아 시대를 연구해 보면, 마을마다 동네마다 산이 있는 곳에는 산당이라는 교회로 가득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헛되고 악한 예배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주 여호와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예배였습니다. 즉, 기독교의 형식과 껍질은 갖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과 이생의 자랑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주를 향한 순종과 거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형통과 안녕과 복을 위해 산당을 찾았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회는 별 탈없이 평화로와 보였고 군사들이 나라를 잘 지켜서 내부적으로 안전한 사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었습니다. 충성이 없었습니다. 그들 마음에는 진실하고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은 허망하였으며, 산당에 드리는 제사는 형식적이었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으니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였으며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부패하여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적이며 정신적인 부패는 주변 이방 종교의 타락한 문화에 의한 육체적이고 정신적 음란이 동반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이 세대는 호세아의 음성을 수십번이라도 들어야 하는 부패한 세대입니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한없는 우상 숭배 속에 빠져갔던 호세아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자신들은 하나님을 매우 정상적으로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에는 전혀 마음을 다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는 마음이 다 떠나있고, 오직 그들 입에 종교적이고 상투적 말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 그럼에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매우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일까요? 사실 신약에서도 보면 말세의 교회가 라오디게아처럼 될 것인데 그 교회의 특징은 착각입니다.
[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6-17)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스스로 이렇게 오해한 이유는, 지금 자신들의 삶이 가난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성하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병들어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들의 신앙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 풍성한 물질적 축복과 건강의 축복과 안정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영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역겨워하시고 토해 내칠 정도로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당장 회개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피치못할 심판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요.
이 시대의 특징도 가만히 보면 모든 것을 돈의 축복과 사람의 수와 세속적 성공으로 판정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세상이야 하나님을 모르니 그런다 쳐도, 교회에서도 그러한 세상적 사상이 가득차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목회와 교회에 대한 평가도 그렇고, 심지어 한 개인의 신앙을 평가할 때도 세상적 행복과 성공으로 평가합니다. 그가 받는 년봉과 학력으로 신앙을 평가합니다.
와~. 저 분 사업이 저렇게 잘 되는 것을 보니 신앙이 매우 좋구나.
와~. 저 집사님 자녀들은 명문대에 들어갔다더라. 신앙이 매우 좋은가 봐.
야~. 저 집사님은 병들어 고통 받는 것을 보니, 신앙이 전혀 없나봐.
하나님을 잘 믿으면 저렇게 병들고 고생하고 그러하겠어? 자녀들이 저렇게 엉망이겠어?
우리는 세상 기준으로 자신이나 남의 신앙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으로서 죄악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아직 물질적으로 풍요하니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치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러한 논리가 호세아 당시의 타락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 구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의 칼을 내리치실 판인데, 북이스라엘 백성은 그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으로 자신들은 여전히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욥기를 보면 욥의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이와 똑같은 실수를 범합니다. 그들은 욥의 과거의 신실함과 의로움과 정직함은 다 잊고, 지금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욥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쫄딱 망하고 병이 든 것을 보니 욥은 숨겨진 죄악이 많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 때문에,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고 사탄의 도구들이 되어 버립니다.
이 시간에 우리의 구세주와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세상적 기준으로 그의 인생이 성공하였습니까? 그분은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궁픔과 고생 가운데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마지막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사실 현대 인간들의 기준으로 하면,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성공한 자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또 세례요한은 어떠합니까? 형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후에 잔치를 여는데,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 춤에 녹은 헤롯이
“살로메야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나라의 반이라도 원하면 주겠다.”
라고 망언의 언약을 합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로메가 청을 합니다.
“세례요한의 머리요.”
사람들 앞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헤롯은 어쩔 수 없이 감옥에 있던 세례요한의 머리를 잘라 소반에 가져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이 낳은 아들중 가장 복있는 자라던 세례요한이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행복한 자입니까? 성공한 삶입니까?
그 위대한 베드로도 마찬가지요, 돌에 맞아 인생을 마친 스데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평가 기준을 초월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신앙을 세상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성공은 이 세상에서 인정 받기보다는 하나님께 인정 받고 영원한 나라에서 인정 받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고 늘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만일 주 앞에서 순수한 동기로 믿음 가운데 행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인정 받고 있다는 깊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한없는 평강과 감사가 성령 안에서 흘러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죽도록 사랑하며 죽도록 주만 섬기며, 세상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른 신앙이요, 신앙의 성공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뚜렷한 역사가 나타나고 어느새 그들을 통한 생명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고멜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배교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의 메세지는 고멜이 낳는 세 자녀의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통하여 세 자녀를 두게 되었는데, 두 아들과 딸 하나입니다.
사실 첫 아들은 고멜이 호세아를 통하여 낳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녀들은 고멜이 외간 남자에게서 낳아온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로 그 자녀들의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1) 첫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4절).
“이스르엘”이란 단어의 뜻은 두 가지입니다. “흩어졌다”는 뜻이 있고 “심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쓰인 단어의 뜻은 “흩으셨다.” “산산 조각을 내시다”는 그런 뜻입니다.
곧,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치 못한 주의 백성들을 “심판하신다, 흩으신다. 산산 조각을 내신다.”는 그러한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르엘이란 이름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예후라는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량 학살할 때의 장소가 이스르엘입니다.
예후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량 학살하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을 알아야 합니다.
아합왕이 길을 지나다가 나봇의 포도원을 보게 되면서 그 포도원을 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포도원의 위치가 이스르엘이었습니다. 이때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었으나 나봇이 허락치 않자 아합 왕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일러 바칩니다. 그러자 아합왕의 아내였던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 왕에게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한 아합에 대하여 심판하시고 나아가 이세벨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십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엘리사를 통하여 예후라는 왕을 세워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예후 왕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열왕기하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왕하 9:30-37)
이와 같이 예후는 악한 왕비 이세벨을 향한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그 심판 장소가 이스르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만 했으면 예후는 아마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0장을 보면, 예후가 자신의 권력욕과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행을 저지릅니다.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11).
악한 왕을 향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예후 자신도 자신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미움과 분노에 빠져서 선민들까지 대량학살을 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의 큰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악을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후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후에 대한 심판을 장차 이스르엘에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심판 받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패와 외도에 대하여 이스르엘을 심판을 하시고 그 나라를 폐하시겠다, 그 나라의 흔적도 없게 하시겠다는 경고가 호세아의 큰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 즉 “흩으시겠다. 산산 조각 내시겠다” 뜻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의 첫 아들은 그 이름과 함께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이 심판의 선언된 이후 몇년 되지 않아서 예후의 후손들이 완전히 멸망 당하였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기원전 722 에 멸망 당하게 됩니다. 그후 북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에 흩어지고, 그 이후로 이 지구 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불신앙에 빠져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이스르엘” 즉 흩어지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쫓아 다니는 인생들은 그들의 꿈이 산산 조각이 나는 것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가 영적으로 외도하면서까지 구하는 그들의 우상을 절대로 얻지 못하게 하십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무엇을 하려 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5-6).
우리는 종종 요나처럼 주님을 떠나 내가 원하는 다시스로 가길 원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다시스에 절대로 도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르엘”을 언제나 기억하기 바랍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면서 우리가 뭔가를 구하려 할 때 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그 대신 흩어지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혹시 내 자녀들이 여러분의 우상은 아닙니까? 그래서 자녀들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꿈을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인 자녀들을 흩어놓으실 것입니다.
세상의 돈과 권력과 쾌락을 소유하느라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뭔가 잡힐 것 같으나 잡히지는 않고 항상 맘 고생만 하며 초조하고 힘들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면서까지 잡으려고 했던 그 모든 꿈은 철저하게 산산 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우상의 끝은 항상 심판의 “이스르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우상들을 재로 만드시고, 올무로 만드시고, 그 우상으로 인하여 우리를 향한 심판의 증거로 삼으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우상들은 나의 삶과 영혼을 파괴시키고, 우리의 삶과 꿈은 산산 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영적으로 배도하는 주의 백성을 ‘이스르엘’ 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제 호세아에게 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짓게 하셨습니다. “로”는 “아니다”라는 뜻이고 “루하마”는 “사랑받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는 더 이상 사랑 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낳는 자녀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이 되지 않을 것을 알려 주십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불순종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여전히 아담과 이브를 사랑하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은혜를 통하여 믿음으로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불순종의 열매가 났으니 바로 가인입니다.
이때 가인은 “로루하마”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외도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자녀들은, 로루하마가 됩니다.
구원 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가인이 태어났으며 에서가 태어났습니다. 롯의 경우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가 되는 암몬과 모압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스마엘이라는 “로루하마”가 태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영원토록 그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자비하시며 무한하게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영적으로 결혼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업신 여기고 회개치 않고 고집하며 제 맘대로 살때, 그러면서 우상을 섬기고 나아갈 때, 그 인생은 쓴 열매를 거두게 되고, 특히 우리의 자녀들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곧, “로루하마:의 자녀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자녀들은 반역하며, 패역하며, 감사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불신앙의 자녀들! 바로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 땅에 오게되는 “로루하마”들입니다.
이제 호세아가 셋째를 얻었습니다. 셋째는 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 선지자의 둘째 아들인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로암미라 부르라고 합니다. “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암미”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북이스라엘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신실치 못한 가정과 교회는 한 세대가 지나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정하신 그들의 자녀를 언제나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로부터 나는 후손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할 때 우리의 후손에게서 불신자들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자비가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 가운데 완고하여질 때 우리를 통해 거듭남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은 “로루아마”, “로암미, 곧 지옥 불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롬 11:21-2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정상으로 살며 신실할 때, 우리의 가정과 후손들과 우리의 교회와 우리 주변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나무에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상에 빠져 고멜처럼 되면 로루하마와 로암미의 열매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우리의 신앙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에 의하여 우리로부터 로루하마, 로암미의 열매가 걷힐 수 있고, 또는 루하마, 암미의 결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정절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자긍하며 안일함에 빠져서 온 맘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그러면서 입술로만 주를 사랑하는 가운데 물질 주의에 빠지고 쾌락의 삶에 빠지면, 그래서 예수님의 신부로서 거룩과 순결과 아름 다움을 상실하면 그 사람의 미래에 기다리는 것은 바로 세 이름 밖에 없습니다. 그 세 이름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10-11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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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 1:10-11).
이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가운데 전세계로 흩어졌습니다.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세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되었습니다. 흩어진 전 세계로부터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언젠가 이스라엘 민족이 대거 주께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열방에서 모인 주의 자녀들과 이스라엘 민족에서 구원 받은 모든 주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이스르엘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놀랍게도 “이스르엘의 날”은 흩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심기워진다”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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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25-36)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한 주신 옛 언약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불신실한 백성에게 불신앙의 열매가 맺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불신앙의 열매는 세 자녀의 이름으로 나타났는데 “이스르엘, 로루아마, 로아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동시에 또 다른 언약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 언약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새언약을 통해 영원토록 변함 없이 나타납니다. 새 언약, 즉 복음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2절을 보면 이를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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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 1:1-2).
흩어진 사람 나그네들, 이스르엘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영적으로 심기는 이스르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로 심겨진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어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이제 흩어진 이스르엘, 로루아마, 로아미가 언제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심겨진 이스르엘, 루아마, 아미가 되는 것입니다. 곧,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흩어진 이스르엘은 다시 심기는 이스르엘이 되며, 로루아마는 루아마가 되고, 로아미는 아미가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 대신에 완전하게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대신 모든 계명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에 죄 값을 다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분께 순종하면, 우리의 자녀들의 이름이, 우리의 남은 여생의 열매들이 “루하마, 아미, 이스르엘”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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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1-13)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치 못한 자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에 주 예수님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주여 저는 로루아마이지만 루아마가 되게 하시고 로아미지만 아미가 되게 하소서. 흩어지고 쫓겨난 이스르엘이지만, 다시 주 안에서 심기워지는 이스르엘이 되게 하소서.”
주를 믿는 자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님! 이 특권의 자리를 소홀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며 더욱 주를 사랑하기 원하나이다. 내 인생에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치 못하고 패역하여 얻은 삶의 열매들! (이스르엘, 로루아마, 로아미)를 용서해 주시고, 더욱 주님의 은혜로 베푸신 이스르엘, 루아마, 아미의 자리에서 한없는 주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루아마, 아미,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뿌리는 내리는 이스르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