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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미 6:6~8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

 

미 6:6~8

 



 

 

어느 마을의 농부들이 하나님께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년만 날씨를 변화시켜 주세요."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좋다. 일년동안 너희의 원하는 대로 날씨를 변화시켜 주마." 농부들은 자기들의 경험에 의해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하나님, 지금은 비를 주세요." "하나님, 지금은 햇빛을 주세요." "하나님, 지금은 바람을 주세요." 가을이 되자 들판에 곡식이 잘되어 추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농부들은 신이 나서 추수를 하고 탈곡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탈곡기에 넣어 탈곡을 해보니 알곡이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 왜 알곡이 하나도 없습니까?" 농부들이 의아해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다 주었다. 비를 원할 때는 비를, 햇빛을 원할 때는 햇빛을, 바람을 원할 때는 바람을 주었다. 그런데 너희가 언제 나에게 알곡을 달라고 하였느냐? 너희들은 알곡 달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의해 하나님께 주문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원하는 대로 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미가 선지자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을 구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울을 속여 장사하고,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권력을 잡고, 부를 얻는 일이라면 거짓된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복을 빌었습니다. 권력을 얻고 부자가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신앙적으로 정당화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미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에 대한 해답을 본문에서 제시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형식적 신앙을 버리고 본질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제사보다 실천적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헌신을 보이라

어느 선교사의 전도로 인디언 추장(Indian Chief)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감사하여 하나님께 무엇인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값진 가죽신, 자기가 타던 훌륭한 백마, 추장의 상징인 머리장식 등을 바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난감해진 추장은 선교사에게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드릴 게 없습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내 생명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선교사의 얼굴이 환해지며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체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야할 제물은 우리가 가진 것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참 제물은 나의 것들로 대치될 수 없습니다. 나의 것들과 함께 나 자신을 드려야 됩니다.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으면서 제물만 드리는 형식적 제사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하나님은 외형적 제사보다 우리의 헌신을 원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장 3-5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여기에 보니 제물보다 중요한 것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드려지지 않는다면 값지고 귀한 것을 드린다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엿새 동안 죄 짓고 와서 주일날 회개하는 것으로 진정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한 주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온 삶으로 나와 "주님, 이 삶을 드립니다" 고백하며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예배의 정신은 드림입니다. 주님 앞에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삶을 향기로운 제사로 바칠 수 있습니까? 회개 없이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찬송하며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가지고 있는 악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와 제물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형식적 예배와 제물을 드리지 마시고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순종을 보이라

아프리카로 건너간 영국 선교사 찰리 스터드(C. T. Studd)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이 실패했던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수많은 돈을 드렸습니다. 약혼녀를 위해서도 9,600불 상당의 돈을 저축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 있어서 남편 될 사람의 수준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찰리. 주님께서 젊은 부자 청년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신지 아세요." 그녀가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팔라고 하셨지" "그러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빈손으로 출발해야 하겠군요." 그리하여 그 돈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를 따르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적인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양의 제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였습니다. 무지한 신앙행위는 무서운 죄악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열심이 있다할 지라도 생각과 행위가 바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은 하나님께서 계시한 말씀대로 순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시며 순종이 없는 제물을 싫어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는 겸손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자 자신이 통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사울에게 보내어 책망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그리고 왕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순종을 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순종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셋째로, 행함을 보이라

키에르케고르(S. A. Kierkegaard)의 글입니다. 독실한 그리스도인 귀부인이 추운 겨울날 마부를 데리고 극장에 갔습니다. 그녀는 마부를 바깥에 세워놓고 극장에 들어가 연극을 보다가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주인공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러는 순간, 밖에서는 자기를 태우고 온 마부가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고 있었습니다. 모순의 삶을 풍자하는 글입니다. 성도란 완전 무결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자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택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은 소유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끊임없이 나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혹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기보다는 행함을 보이며 나타내는 신앙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신앙과 삶은 별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생활과 사회에서 생활이 일치되어야만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 하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라는 강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굴복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나 기독교의 신앙을 논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자 집사 가정에 심방을 가셨습니다. 마침 남편이 계시기에 권면합니다. "선생께서 교회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좋은 반응을 보입니다. "제가 교회에 가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럼요. 교회에 나와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에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묻습니다. "그럼 제 아내도 천국에 가겠네요?" "그럼요. 당연히 천국에 가시게 되죠!" 그때 남편의 표정이 돌연 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안나갑니다." 목사님이 놀라며 묻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교회에 나가면 천국에 가게 될텐데 천국에서 마누라를 보게될 것이 아닙니까? 지금도 지긋지긋해 죽겠는데 죽어서까지 만나게요?"

아무리 교회출석을 한다해도 변화가 없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외식된 모습이나 눈가림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변화되지 않는 마음으로 아무리 귀하고 값진 제물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열정적으로 봉사한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까지 행해왔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열심과 수고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에 맞게 행하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디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헌신과 순종과 행함을 보여드리는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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