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 21. 오늘의 양식 : 말세의 징조가 있으니 정신을 차릴 때이다. ( 3 )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400 험한 시험 물 속에서
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
234 구주 예수 그리스도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 348 마귀들과 싸울지라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마태복음 24 장 3 - 13 절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7. 설 교 ---------- 말세의 징조가 있으니 정신을 차릴 때이다. ( 3 )
1]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질 때니 정신을 차릴 때이다.
(1)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는다.
* 사 30: 10 -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 신 31: 17 -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성도들은 육안으로 세상을 보면 안 된다.
사람들은 지식으로 사람의 눈을 혼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영안을 떠야 한다.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2) 들리던 것이 들리지 않는다.
* 렘 42: 14 -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육적인 귀가 아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한다.
(3)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 롬 1: 20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고후 4: 18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창조된 자연 만물은 그 배후에 그것들을 만드신 능력 있는 누군가가 있음을 입증한다.
자연 만물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물은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무수한 증빙자료이다.
미세한 입자로부터 광대한 우주의 별자리까지 그것 모두를 계획하고 만든
전능한 디자이너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4)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되다.
* 계 16: 15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둑같이 오실 것이다.
‘도둑같이’라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뜻밖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을 보인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의 정상적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 계시된 대로 바르게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가리킨다. 바른 믿음은 바른 삶으로 나타난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떠나고 의롭고 선하게 살게 되어 있다.
주 예수께서는 또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도의 옷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義)의 옷이다.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갈 3: 27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 십자가의 의를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① 도둑같이
홀연히 임하시는 재림. 본 절은 마 24:42-44과 병행된다.
* 마 24: 42-44 –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귀신의 영이 미혹하여 전쟁 준비를 시키는 과정에 본문이 삽입되어 있는 것은 마지막 대 전쟁이 임박할 때 성도들이 극적인 위기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다.
이 경고의 의미는 어린양을 따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만 함을 권면하는 것이다.
* 살전 5: 2 -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둑 같이'오신다는 경고는 사데 교회(계 3: 2-4)와 라오디게아 교회에도(계 3: 18) 주어졌다.
이 경고는 두 교회의 우상 숭배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Johnson).
② 깨어 - 신앙의 잠.
'누구든지 깨어' - '깨어 있어 주의 재림을 말씀으로, 기도로, 세마포로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다
* 마 25: 13 -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눅 12: 37 -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 눅 21: 36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③ 자기 옷
'자기 옷을 지켜' - 자기 옷이란 주님이 주신 의의 옷으로 예복을 말한다.
* 마 22: 12 –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지킨다는 것은 깨끗이 빤다는 뜻으로 의로운 생활과 회개하는 생활을 말한다.
* 계 22: 14 -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 부끄러운 생활이 아니라 의로운 믿음의 생활로 세마포로 단장한 신부를 의미한다.
* 계 19: 7-8 –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로 입은 개인의 믿음.
ⓑ 성도의 옷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義)의 옷이다.
* 고전 1: 30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빌 3: 9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이 믿음의 의(義),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義)가 성도의 옷이다. 우리는 참된 믿음으로 이 의(義)를 지켜야 한다.
본문에서의 '복'은 본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일곱 가지 복 가운데 세 번째 복에 해당한다.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있을 사탄의 기만과 핍박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늘 깨어 있어 충성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실 것을 의미한다.
'복(福)'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의(義)의 말씀이요 진리의 옷을 입으라는 것이니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참 모습이다.
* 갈 3: 28-29 –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찾아 입어야 하는 자기(自己)의 옷이다.
④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우리는 의인들 곧 사도 선지자들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 선지자들의 영(靈)을 소유한 자들은 사도 선지자들에게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며, 말씀이 육신이 된 자들은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사도 선지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진리)을 가지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야 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들에게 복(福)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 옷은 어린 양의 피로 씻음 받은 성결한 흰 옷으로(계 7: 9, 14) 곧 주님께 대한 순결과 충성, 헌신을 상징하는 신부의 옷이다.
* 잠 30: 9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5)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기억하라.
* 마 6: 13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때니 정신을 차릴 때이다.
성인이 되면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사랑을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말한다. 사랑은 이론보다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의 속성을 나열하는 것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 고전 13: 4-7 –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헬라어에는 사랑을 나타내는 네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육정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os), 우정을 나타내는 필레오(phileo), 혈통적인 사랑을 표시하는 스톨게(stolge),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agape)이다.
이중 기독교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그것은 타자 본위의 순수한 사랑으로 자기 부정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 눅 6: 32-34 –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이 사랑의 본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 일컬어진다.
기독교에 있어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 요 1: 8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가장 큰 계명이며
* 마 22: 37-40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가 주신 새 계명이며, 믿음이나 소망보다 우위에 있다.
* 요 13: 34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고전 13: 13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인격적 성격과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고 그리고 나서 말씀이나 율법에 대한 사랑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등의 전인적인 헌신과 신뢰를 말씀하셨다.
* 마 5: 29-30 –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마 6: 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명령이다.
(1) 사랑이 없으면
* 고전 13: 1-3 –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 몸까지 바치는 헌신일지라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이것은 헛된 것이다.
* 마 20: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일 4: 8, 18 –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3) 사랑은 허물을 덮어준다.
* 잠 10: 12 -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4)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 롬 13: 10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이 말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의 메아리이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여러 상황과 환경에서 어떻게 사랑을 나타내 보이냐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해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자신보다 이웃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그런 사랑이 다른 모든 계명을 이끌고 있다.
(5)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 벧전 4: 8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말은 사랑으로 자기의 죄를 덮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기꺼이 감추어준다는 의미다.
결론 : 사명자가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견딜 때이다.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453 예수 더 알기 원하네 ------------------------------------------
10. 폐 회 ---------- 주기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