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1~39)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08|조회수32 목록 댓글 0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1~39) - 곽선희 목사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8장 31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신약 성경 250쪽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부터 39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으니,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시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당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건강을 위해서 가끔, 또 1년에 한 번씩 건강진단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건강 진단을 한번 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테스팅하고 내가 정말 믿음 안에 있는가 스스로 확증하라. 이런 확실한 명령이 있습니다. 확증의 기준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속성이요, 믿음의 목적 의식이요, 믿음의 궁극적 관심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조금 신학적인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니그렌(Nygren)이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쓴 **《아가페 앤 에로스》**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제가 신학 대학 다닐 때 이 책을 너무 좋아해서 이 책을 다 해질 때까지 읽고, 해진 다음에 다시 새 책을 샀습니다. 그만큼 이 책을 애독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까지 말합니다. "이 니그렌의 《아가페 앤 에로스》 이 책은 성경 다음 가는 책이다"라고까지 과대평가한 그런 신학자도 있습니다. 아가페 앤 에로스. 그것은 뭐냐? 모든 철학, 모든 신학, 모든 종교, 모든 믿음을 그 기준으로 분리해서 분석해서 우리에게 해석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가페적이냐, 에로스적이냐 우리가 한번 높은 수준에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가페적 믿음이냐, 에로스적 믿음이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시는 대로 대부분 환자들입니다. 정신병자들입니다. 심지어는 귀신 들린 사람,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많이 모여들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믿음이 너를 고쳤다, 내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병이 나을 만큼의 믿음, 그만큼의 믿음이 네게 있다라고 칭찬하시기도 하고 확증해 주었습니다. 그 믿음만큼의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만큼의 믿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시는 대로 예수님 앞에 온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 환자들이고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침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근데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예수님의 그 소중한 말씀에 대해서 흥미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에로스적입니다. 이건 에로스적 신앙입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었어요. 그러나 그건 에로스입니다. 아가페가 아닙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의 유명한 명작인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하여》**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속에 있는 몇 구절이 우리 마음에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가진다고 하지만, 믿음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둘째,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셋째,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넷째,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네 가지로 잘 분석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왔던 환자들, 특별히 문둥병 환자들 열 명이나 예수님 앞에 왔는데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곧 나은 것을 느끼자마자 다 제 갈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사람 한 명이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다고 사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말씀 한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내가 꼭 돌아와서 인사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둥병을 고쳤는데 고침 받았으면 와서 그래도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사마리아 사람 외에는 이 은혜를 받고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없더라." 이렇게 책망하신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부 에로스적입니다. 믿음도 있고 치유도 있고 병 고침 받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에로스적인 그런 신앙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나 그들의 관심은 표적에 있었습니다. 항상 예수님에게 그 많은 표적을 보고 이 병 고침 받는 것이 표적 아니겠습니까? 오천 명 먹이는 것이 표적 아니겠습니까? 표적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또 따라와서 "표적이 뭡니까?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는 표적이 뭡니까?" 계속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왜요? 표적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자기 마음이 충족하지 않거든요. 이것은 끝도 없는 욕심이에요. 이것은 에로스적이니까 또 다른 표적, 또 다른 표적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면 그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나의 표적 외에 보일 것이 없노라."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아주 오묘한 의미를 담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이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느냐? 메시아 대망 사상(Messianic expectation).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그 메시아가 오면 유토피아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다윗의 왕국이 이루어지고 솔로몬의 영광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그러한 메시아를 기다린 거예요. 그러한 틀(frame), 그러한 생각 안에서 메시아를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기적을 보여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표적을 또 다른 표적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오심, 왜 오셨는지,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계시는지,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숨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바가 아니었습니다.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욕망, 손바닥을 딱 들고 "여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주세요" 그런 마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에로스입니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들어 봅시다. 여러분 너무나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자,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뭘 줘야겠어요? 돈을 줘야지요. 명예를 줘야지요. 나라의 독립을 줘야지요. 정권의 회복을 주어야지요. 이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에로스적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무시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그리고 그 독생자가 십자가에 죽으신다. 도대체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가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하는 그 응답, 그것, 즉 아가페적 응답 이것을 내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가페적 신앙입니다. 내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 내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 내 세계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아가페적 신앙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가페적 신앙으로 응답해 주고 계십니다.

본문 성경에 보면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로마서 8장 32절에 말씀합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십자가 사건 속에. 그 속에 우리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 사랑, 아가페적 사랑이 있습니다. 그 아가페적 사랑을 내가 아가페적으로 받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에 엄청난 구속사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이 아가페적 신앙입니다.

그래서 아가페적 신앙의 대표적인 예가 뭐냐? 의롭다 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 죄인입니다. 영영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주십니다. 의를 충족해 주시고 의롭다 함을 주는 최고의 축복. 아가페적 신앙을 아가페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참 믿음의 속성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망 문제에 대하여, 이 세상에 제일 큰 문제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죄 문제요, 하나가 죽음입니다. 여러분 세월이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해답이 어디 있습니까? 이 사망 문제는 십자가만이 해답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이 너희도 변화하게 하시리라. 부활하게 하시리라.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와 부활. 이 외에 해답이 없습니다. 또한 완전한 해답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 그 거룩한 은사 앞에 내 십자가, 내 죽음, 내 부활도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절박한 문제인 사망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있고 그 부활 사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영생을 주시는 십자가의 능력이 그 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그리고 보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결국은 세계관이 바뀝니다. 현실관이 바뀝니다. 이것은 다 은사입니다. 질병도 은사입니다. 실패도 은사입니다. 환난도 은사입니다. 심지어는 전쟁도 은사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아가페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습니다. 모든 것을 은사로 소화합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도 은혜입니다. 실패도 은혜요. 전쟁, 그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가 함께, 십자가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모든 사건을 은사로 소화하는 은사 지향적 세계관, 그것이 아가페입니다. 아가페적 신앙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는 확실한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로 확증하십니다. 십자가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그 믿음 속에 뿌리를 받고 아가페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아가페적 신앙, 곧 오늘 본문에 말합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가페적 신앙을 확실하게 확보하면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여러분, 나를 보고 십자가를 보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보고 나를 보세요. 나를 보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보고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그것이 아가페적 신앙입니다. 아가페적 믿음, 십자가 안에 계시된 확증을 항상 재확인하면서 그 믿음 속에 살아갑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모든 사건 속에서 내게 향한 사랑을 확증하고 계시느니라. 그렇게 믿고 "하나님은 사랑이다.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 시간, 내 소유, 내 환경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해석하고 소화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여러분, 에로스적 신앙에서 벗어나서 아가페적 신앙으로 부활하는, 새롭게 태어나는 그런 아름답고 귀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을 주의 전으로 불러 주시고 주의 말씀으로 다시 일깨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오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 거룩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으며, 우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 안에 저희들이 있게 된 것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간구하오니, 저희의 믿음을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거룩한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응답하면서 거룩하고 귀한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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