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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주일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06|조회수21 목록 댓글 0

예배와 주일         

 

기독교와 가장 관계가 깊은 시간은 주일이다. 주일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예배의 날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왔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주일을 공적 예배의 날로 지키게 되었다. 이것이 언제부터 이루어진 일이며, 예배일이 바뀌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존재한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연관구절들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그것은 사도행전 20장 7-12절, 고린도전서 16장 1-2절,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10절 말씀이다.

 

1) 사도행전 20장 7-12절

 

사도행전은 33년경 성령강림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록으로 전반부인 1-12장은 베드로 중심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지는 33-45년까지의 기록이며 후반부인 13-28장은 바울중심으로 그의 전도여행과 로마 투옥까지인 46-63년까지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0장 7-12절은 청년 유두고 사건이 기록된 말씀이다. 바울과 드로아에 있는 신자들과의 고별 만남의 시기는 ‘안식 후 첫날’이었다. 물론 이 날이 주일이었음은 분명하다. 이 본문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같이 안식일에 모였지만(15:21; 18:4) 이제는 독립적으로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언급이며 최초의 언급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토요일 밤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주일 밤을 가리키는지 각각 다른 주장이 나타난다. ‘안식 후 첫날’이라는 표현은 이 시간이 저녁이었는지 아닌지를 가르쳐주지 않지만, 문맥 자체가 저녁임을 알려 주기 때문에 저녁 모임임을 인정한다. 논쟁의 초점은 바울이 유대인의 날짜 계산법에 따라서 일몰을 기준으로 하루의 시작을 보았는지 아니면 로마의 계산법에 따라 일출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여부이다. 일부 학자는 ‘안식 후 첫날’이란 표현 자체가 유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이 날은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신약성경에 사용된 이 표현들(막 16:2; 눅 24:1; 요 20:1; 마 28:1; 요 20:19)을 보면 네 경우가 주일 아침과 관련되며 한 경우가 저녁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유대의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으로 생각한다.(1) 그러나 연구자는 ‘안식 후 첫 날’에 어떤 부가적 설명이 없고 정황이 밤으로 나타난다는 것만으로 어떠한 판단을 내기는 어렵다고 보며, 오히려 유대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생각한다.

 

2) 고린도전서 16장 1-2절

 

이 구절에서 바울은 ‘매주 첫날’을 연보하는 날로 특별히 고정시켰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이미 고린도 교회가 주일을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과 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매주 첫날에 자신의 수입에 따라 헌금하여 모아두도록 하여 자신이 방문했을 때 헌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3) 요한계시록 1장 10절

 

10절에 보면 사도요한이 ‘주의 날에’(en te kuriake hemera) 성령 안에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 날’이라는 문구 속의 ‘주의’(te kuriake)라는 형용사는 ‘주님께 속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주님께 속한 날’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3가지 견해가 있다.(2)

첫째 견해는 구약에서 언급된 종말적 ‘주의 날’을 가리킨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주의 날’을 가리킬 때 70인역이나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는 계시록이 사용하는 ‘주님께 속한’(테 큐리아케)을 사용하지 않고, ‘hemera (tou) kuriou’(주의 날, ‘주’의 소유격 사용)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두 표현은 동의어가 아니며 사용되는 용법도 다르다. 또한 문맥을 볼 때에도 이 주장은 올바르지 않다.

둘째 견해는 ‘부활의 일요일’(Easter Sunday)을 가리킨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부활절 주일에 대한 이해는 사도요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kuriake’라는 단어가 결코 부활절 주일을 가리키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셋째 견해는 ‘예배의 날’로 부활사건에 근거하여 초대교회에 의해서 채택된 일요일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3)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매주의 첫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으며 특별히 본문에서 ‘주의 날’이라는 것은 안식을 지키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의식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견해가 가장 유력한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전통적으로 요한계시록의 기록연대는 요한복음이 기록되기 직전이자 도미티안의 통치 말엽인 95년으로 본다. 이 견해는 이레니우스(Irenaeus)의 진술에 의한 것인데 그가 말하는 예언이 요한계시록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이 견해에 비하여 훨씬 이르게 60년대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계시록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며 내용상 많은 부분이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의 밧모섬 유배를 66년경으로 보면 저술 시기 역시 70년 이전으로 추론할 수 있다.(4)

 

처음 주일 예배의 시기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들이 있다. 그러나 위의 세 구절을 참고할 때 이르게 보면 50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60년대 후반, 고린도전서의 기록을 55년 전후로, 그리고 사도행전 20장의 일을 50년대의 일이라고 보면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견해들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1세기에 자신들을 유대인과 구별하기 위해서 성찬식을 포함한 모임을 토요일 저녁에 가졌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유대력에 의하면 일요일은 현재의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즉 안식일 다음 첫 시간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시간으로 삼았고 이는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과 불과 몇 시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므로 신자들이 주일과 안식일 예배에 대한 큰 거리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트라얀 황제(Trajan: 제위 98-117) 박해 시에 제국 내의 모든 야간 종교집회가 불법화되었기 때문에 주의 만찬을 위한 초기 신자들의 모임은 다음 날로 옮겨졌다. 그들은 주님과 가장 먼저 영적교제를 갖기 위해 해가 뜨는 시간이나 그 전에 주일 예배를 드렸다.(5) 주일 아침에 모인 것은 아직 주일이 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른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안식일과 주일이 한 날에 있었던 관습을 깨고 주일 모임의 독립성과 신학이 발전되는 종교적 사회적 여건이 되었다.(6)

 

이와 관련하여 주일예배가 70년 이전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7) 또한 주일로 바뀐 시점에 대해서 2세기에 비로소 이루어졌다고 다소 시기를 늦게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아드려지지 않고 있다.(8) 또한 모임에 시간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가 있다. 로도르프(Willy Rordorf)는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이 제시한 것과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식사하신 일로부터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신 일이 주간의 첫날에 행해진 것을 기초로 매주 모인 성찬식은 토요일 저녁이 아니라 주일 저녁이라고 논증하면서 이것이 후에 주일 아침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9) 많은 사람들이 로도르프의 견해에 호응하였으나 그의 견해 역시 보편적인 승인을 받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정황을 이렇게 그려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자주 언급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회합장소는 성전, 회당, 그리고 가정이다(행 2:46; 5:42, 눅 24:53). 사도행전 5장 42절에는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회당, 그리고 가정에서 자주 모임을 갖은 것으로 보이며 이런 모임에 질서가 잡히면서 공식으로 예배하는 시간이 정착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신자들은 초기에는 그들의 신앙전통에 따라 안식일에도 모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도 모였다. 유대인들과 접촉이 없었던 이방인 신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에 공식 예배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방인들의 수가 절대 다수가 되고 복음이 이방인들의 지역으로 더욱 확대됨에 따라서 교회는 더 이상 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에 모이게 된 것이다.

 

주일의 명칭과 관련하여 ‘여덟 번째 날’이라는 표현이 있다. 일찍부터 주일은 강한 종말론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바나바의 편지에 의하면 이 날을 ‘여덟 번째 날’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날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선언하셨다’(.... on which God inaugurated a new world)고 한다.(10) 바실(Basil)은 이를 ‘오는 세계의 형상’(the image of the age of to come), 어거스틴은 ‘영원한 안식의 예시’(prefigures eternal rest)라고 하였다.(11) 이것은 종말론적이고 새로이 도래할 세계에 대한 대망이라 할 수 있다. 7일로 된 한 주간에 팔일 째라는 계산이 비이성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한 주간의 첫째 날인 일요일이 세상 창조의 상징으로 모든 사물의 시작을 뜻하는 것과 같이 동시에 안식일에 뒤이어 나타나는 이 특별한 ‘여덟 번째 날’은 새로운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예배의 날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 실체인 신약의 주일을 바라보는 그림자였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사역의 완전성과 영원한 안식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그 신령한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폐지된 안식일을 따르거나 안식일을 지키던 미신적이며 의식적(儀式的) 수행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주일을 성수하게 된다. 그것은 칼빈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그림자를 붙드는 안식일적 미신을 타파하고 일상적인 노동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와 그와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사업을 도모하며 성도간의 교제에 힘쓰는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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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상섭, 『분석 사도행전 II』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218; Willy Rordorf는 일요일 저녁에 일어났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Willy Rordorf, Der Sonntag (Zürich, 1962), Sunday (London/Philadelphia, 1968), 205.

(2) cf.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서울: 이레서원, 2006), 81-82.

(3) 이 견해를 찬동하는 학자는 Bauckham, Osborne, Stott 등이다. Harringon은 다소 신중하게 동의한다.

(4) cf. 송영목,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서울: 쿰란출판사, 2007), 13-19; 이동수, 『계시록의 구속사적 읽기』 (서울: 그리심, 2011), 34-35.

(5) 비시니아(Bythynia)와 폰투스(Pontus)의 총독인 플리니(Pliny the Younger)의 글에는 “정해진 날에 날이 밝기 전에”(before dawn on a fixed day) 모였다고 전해 주고 있다. 이 편지는 111-112년경으로 추적된다. Letters, 10,96.

(6) 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1999), 36.

(7) Samuele Bacchiochi, From Sabbath to Sunday: A Historical Investigation of the Rise of Sunday Observance in Early Christianity (Rom: The 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 1977), 151.

(8) Samuele Bacchiochi, From Sabbath to Sunday, 90-131.

(9) Oscar Cullmann, Early Christian Worship (London: SCM Press Ltd, 1953), 66; Willy Rordorf, Sunday, 54-153, 215-273,

(10) The Epistle of Barnabas, 15:8.

(11) Basil, de Spir. Sanct. 27; Augustine, The City of God; Peter G. Cobb,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Year,” in Cheslyn Jones, et.al. (ed.), The Study of Liturgy (London: SPEK, 1992), 457.

(12) cf. Calvin, Institutes, II, 8, 29-34; cf. 안수강, “칼빈(John Calvin)의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이해 및 현재적 함의”,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0 (2023. 10): 15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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