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은 믿음
본문 말씀 : 히 11:29-31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것을 보면서 믿음이 먼저냐 아니면 행함이 먼저냐 바로알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히브리서에 두사람을 기록하면서 이것이 믿음의 행위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기생 라합이 보여준 믿음의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은 어떻게해서 무작정 이 두 사람을 영접하고 숨겨주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영접이 과연 쉬운 일이라고 여기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에 관해서 세 가지 경우가 나와 있습니다. 첫 번 째 경우는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는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했다는 대목입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가장 어려운 기적이라고 보십니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홍해 물이 둘로 갈라지는 것이 가장 놀라운 일로 보일 것입니다. 지각 대 변동입니다. 세상에 흐르던 바닷 물이 졸지에 갈라서서 서로 마주보며 벽을 이루다니요! 정말 대단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거기에 비해서 여리고성의 무너짐은 아무래도 보다 작은 기적처럼 느끼겠지요. 기껏해서 인공 구조물의 붕괴에 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비해서 정탐꾼을 숨겨주는 기생 라합의 행동은 전혀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서로 위해주고 돕고 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깥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믿음은 사실 큰 믿음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놀랍게도 바닷물이 갈라져도 그러나 그렇게해서 드러난 바닥은 평범한 땅입니다. 다리가 성한 자가 단단한 땅을 못 걷겠습니까? 당당하게 그 바다 물 한가운데로 걸어가면 됩니다. 결코 마음이 달라질 필요조차 없습니다. 실제로 이들 홍해 바다를 건너온 자들이 광야에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과연 이래도 큰 기적입니까?
두 번째 여리고성을 도는 일도 큰 믿음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전혀 군사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을 함락시켜야 한다는 이것이 보통 큰 믿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마음이 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성을 돌면 그만입니다. 무너지고 아니 무너지고는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기적인 정탐꾼을 영접하는 일은 참으로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그 정탐꾼을 영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생 라합은 자기 집에 들어온 정탐꾼을 자신과 그 가족이 구원받는 유일한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스스로 기존에 자신이 누리고 왔던 것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홍해 바다 속으로 걸어가고 여리고성을 도는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기적입니다. 그리고 정탐꾼은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킬 나라에서 파견된 자입니다. 애국심을 발휘해서 그 사람을 신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생 라합은 오히려 그 두 사람을 숨겨주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 나라를 포기했다는 것이 됩니다. 도대체 기생 라합은 무얼 믿고 자기 나라를 버립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나라는 멸망당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즉 나와 내 가족을 이 나라에서 빼내어 달라는 차원에서 두 정탐꾼을 숨겨준 것입니다.
정탐꾼 보낸 나라는 단순히 이웃의 낯선 나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심판하실 분이 만드신 나라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그렇다고해서 홍해 기적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동안 애굽에서 백성들을 구원하고 광야를 40년동안 돌아오는 동안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풍문으로 통하여 듣고 믿고 있었습니다. 기생 나합은 그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도 된다고믿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멸하기로 하셨다면 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교회라는 것은 구원의 원리를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그 구원의 원리 안에 홍해 기적을 통해서도 주어지는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 보면, "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뒷 부분입니다. 즉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홍해 바다 가운데로 난 그 땅을 결코 애굽 사람에게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실 때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시켜서 구원하신다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도 구원의 원리에 포함되는 요소입니다.
같은 바다 속의 땅인데 왜 히브리인은 그 땅을 밟으면 되고 왜 애굽 사람들은 그 땅을 밟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여기에 따르는 원리는 두 번째 기적인 여리고성의 함락에서 보여집니다. 여리고성을 함락 시키는데는 세 가지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언약 궤였으며 다른 하나는 나팔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언약궤가 앞장 서 나가는데 있어 여리고 성은 결코 막아설 수도 없고 또한 멸망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란 언약에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팔이란 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심판하실 때 하늘에 나팔소리가 들려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즉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시고 손수 일하신다는 선언이 곧 나팔을 부는 일입니다. 사람은 손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한다는 겁니다. 여리고성의 무너짐은 곧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리고성은 하나님 앞에서 무너져야 합니까? 그것은 제사장의 존재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제사장처럼 거룩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멸망받게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온통 거룩으로 뒤집어 쓴 사람입니다. 복장부터 시작해서 내의까지 모두 거룩한 옷이요 그리고 신체에도 기름과 피를 직접 발라서 죄를 씻고 거룩이 유지되게 한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성의 함락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는 모든 것은 무너진다는 점을 앞 당겨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이러한 여리고성의 함락은 약속의 땅에서 무너져야 될 모든 성들의 운명을 대변해 주는 일입니다. 거룩하지 않는 것은 다 무너져야 한다는 요소가 구원의 요소에 역시 포함됩니다. 애굽에서 나온 겁많은 백성들이 시나이반도에서 그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정탐군을 뽑아서 들어가기를 거부할 구실을 찿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다 죽었습니다.
세 번째로, 기생 라합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마음 가짐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정탐꾼을 마치 구원자 모시듯이 모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은 그 정탐꾼과 약조를 했습니다. 자신이 그들은 창문에서 줄을 풀어서 생명을 건져준 것처럼 곧 이어 이스라엘이 쳐들어 욌을 때도 자신과 그 가족을 구원해 달라는 겁니다.
그 증표가 바로 창문에 붉은 줄을 늘어뜨리는 일입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과 정탐꾼처럼 생명을 구원해 달라는 겁니다. 이 기생 라합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휴유 살았다. 이제 안심이다"라는 마음가짐이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고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파견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도 이런 마음 가짐이어야 합니다. "휴우, 살았다. 이제는 살았단 말이야! 그런데 사실은 이런 마음 가짐과 믿음 갖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보내신 이를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기생 라합의 신앙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이 관심두지 않는 일에 관심두고 또한 그것을 위해 국가 민족마저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미리 항복해 버리는 이 현실성은, 종교적인 모든 형식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우리들도 "정말 다행스럽다"는 감격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기생 라합을 세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감사하는 믿음있는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