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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역사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10|조회수47 목록 댓글 0
기독교와 한국 문화
1. 한국 문화와 사상의 틀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한국 문화와 사상을 종교적으로 조명하는데 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어온 한국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고 이를 기독교의 신앙과 관계시키는 것은 인문학적인 과제중의 하나이다.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인생과 우주를 이해하고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며 살아왔는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삶의 아름다운 지혜를 주며 좋은 길잡이가 된다. 종교의 언어와 영성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족마다 그들의 문화적인 환경과 전통에 따라 각기 민족적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종교 이해는 토양과 기후, 그리고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형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우주의 창조를 이해하면서 고대의 한국 신화들은 제 각기 인간 출현과 시조신 신앙의 틀을 형성하였다. 신들과 인간이 함께 자연을 경영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공동체적인 사회단위를 이루어 가는 이야기들은 문화의 기초 개념이 되었으며 우주적인 질서를 하나의 신앙적인 대상으로 발전시켰다. 
종교의 본질은 통전적인 우주의 질서 속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사는 인간 행위를 표현하고 인간의 자기이해를 돕는 가치체계로 발전되었다. 인간이란 우주의 축소판이고 우주 질서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체계를 갖게 되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창세이념이 한국 문화의 원형적인 정신이라고 볼 때 인간을 유익하게 하며 살고, 하나 하나의 인격이 우주와 같이 존귀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으뜸 가르침으로서의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의 종교 문화는 고대로부터 기층문화로서 존속해온 무속과 제의를 중심으로 전승되었고 여기에 외래 문화와의 접촉을 통한 외래 종교들이 창조적으로 접목된 다원 종교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신화와 제의를 통하여 전승되어온 한국인의 종교적인 원형들은 수 없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색깔이 바래지 않은 채 이어져 왔고 우리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시해 주는 가치체계로서 작용하고 있다. 고대적인 문화의 원형들은 현대적인 요소에 비하여 간단한 상징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덜 진화된 개념들이나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종교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그릇된 편견이 될 수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 문화의 원형적인 틀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상이다. 삼국유사에 수록되어있는 단군신화는 천신(天神)인 하느님의 강림과 지모신(地母神) 신앙을 전해 주고 있으며 천지인(天地人)의 창조적인 관계를 보여 준다. 하느님은 고조선인들의 신앙의 대상이었다. 하느님은 그의 아들 환웅을 이 세상에 내려보냈다. 환웅이 강림한 곳은 태백산 신단수 밑이라고 한다. 이는 우주의 중심이 되는 우주목에 대한 보편적인 신앙이 강림 신앙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 속에 삼칠일간 머물었더니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곰이 여인이 되었다는 재생과 육화의 신화는 지모신 신앙을 들어내는 강한 묘사이다. 그는 후에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낳을 수 있었다. 천신 환웅과 지모신인 곰 여인의 혼인으로 태어난 이가 단군왕검이고 그가 고조선을 창건했다고 한다. 여기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함께 융합되는 창조적인 영성이 드러난다. 
단군신화는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자리를 천지인 삼재의 융합에서 다루고 있다. 하늘과 땅의 원만한 어울림과 창조 신앙을 중심한 인간의 근원적인 자리 매김이 문화의 규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자리 매김은 자연스럽게 제천의식과 관계되어 발전하였다. 언제나 시월이면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밤낮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 축제는 의례의 중심이었고 이는 당시 공동체 사회와 그 구성원인 그들의 안녕과 복을 빌며 생산을 재현하는 예배의식으로 표현되었다. 농사를 전후한 오월과 시월을 기해 풍작을 비는 농경의식과 함께, 하느님을 섬김으로 평안과 해방을 경험하려는 종교적인 요구가 융합된 문화행위이다. 더불어 사는 평화와 풍요로운 삶이 고대 한국인들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경험의 세계이며 신화적인 창조 원리 속에 생명을 중시한 종교적인 신앙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무교(巫敎)는 한국 종교 속에서 가장 문화적 저변을 다스린 무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였다. 때로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적인 체계에 밀리어 주변화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민간 신앙으로서의 무교는 한국인의 편재된 종교현상 체험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무교가 기층적인 신앙으로서 신성한 힘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의식과 표현이 평범하고 쉬우며 인간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그 기능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구병과 치유, 그리고 빙의 현상(憑依現象)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 저변의 호응과 창조적인 만남을 이루어 가는 것이 역사 속에 방대한 영향력을 끼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교는 종교 의식을 통하여 우주창생(cosmogony)을 모방하거나 재현함으로 하나의 우주론과 세계관을 세워간다. 
실제로 합리성과 근대화를 표방하는 역사화 과정에서 우리는 무교에서 표출해온 영웅들의 시조전승이나 우주창조의 이야기를 상실하였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거부해 왔다. 그러나 무교적인 종교체험은 세속사회 속에서 때묻고 더럽혀진 마음을 신성과 만나게 해주는 근원적인 생명감의 바닥을 체험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면면히 무교적 의례 속에서 자신의 아픔과 우주적인 아픔을 연결할 수 있는 재생을 경험하고 인간의 근원 회귀의 회복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처처에서는 마을이나 가족을 중심으로 하여 굿이나 풍요제의를 통하여 신성 숭배의 신앙을 재현하여왔다. 종교적인 경건성과 함께 노래와 춤,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진 술과 가락은 의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제의의 마지막은 난장판의 극치에서 맺는다. 여기서 난장판의 성스러움은 카오스의 혼돈과 어둠을 거쳐 신화적인 신성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사람들은 이 의식에 참여하면서 힘과 활력을 되찾았고 제 각기 자신들의 삶에 재진입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이 땅 위의 수많은 신령들에게 벽사초복(壁邪招福)의 기원을 담았던 계절마다의 풍요제의는 마을 공동체의 간절한 신앙을 표현하였고 동시에 마을의 축제로서 존속되왔던 것이다. 
무교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탓하기'와 '한풀이'의 두 기능이 공존한다. 실제로 '탓하기'는 조화가 깨지거나 소외된 현상을 지적함으로 문제 해명에 접근하는 해석학적인 원리이다. 괴로움이 생기거나 재난이 있을 때 이것의 원인을 창조질서의 파괴나 여러 신들과의 관계 단절로 돌리고 탓을 찾는다. 대개 결과는 조상신들의 탓, 잡귀들의 탓, 묏자리 탓, 그리고 집터나 어떤 초자연적인 것의 탓으로 돌린다. 점복의 기능을 통해서나 신성 현현을 통하여 탓을 찾고 종교적인 중재자인 무당을 중심으로 '한풀이'에 이르게 된다. '한풀이'의 해석학적인 과정은 신적인 능력들과 인간의 기대를 조화시키고, 초월적인 것과 비초월적인 세계를 융합시키는 통합의 단계가 된다. 
불교는 북인도에서 태동한 종교로서 중앙 아시아와 중국 대륙을 거쳐 한국에 전래된 종교이다. 인도의 다원적인 종교문화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진리의 길을 보여준 고타마 불타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참된 자기의 발견과 성찰은 불교의 주요한 관심이 되었다. 인도의 종교로서 출발되었지만 불교는 인간의 보편적인 물음들을 성실하게 대답해 주면서 아시아 전역에 뿌리를 내리는 종교로서 역사에 기여했다. 불교는 한국 종교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적으로 토착화된 살아있는 종교 전통이 되었다. 문화적인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의 나무로 성숙하고, 거기에서 많은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에 한국의 종교문화에 독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불교라고 할 수 있다. 
4세기 초반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 것을 시초로 백제와 신라가 후발적으로 공인하게 되었다. 이 전래에 대한 역사적인 연대는 국가가 공인한 해들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지만 실제로는 중국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하여 4세기 이전에 불교가 한국 종교로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들에 대하여 정리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선은 불교 안에도 다양한 교리들과 종파들이 산적하여 있다는 이유이고, 4 세기에서 21 세기까지의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담지한 종교사를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이다. 
한국의 토양에 뿌리를 내린 불교의 사상적인 특징으로서 우선은 각 시대마다 넓은 민중들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구원과 평이한 수행의 길을 보여주고자 했던 경향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접경 국가로부터의 전쟁과 내부적인 갈등, 그리고 봉건체제에서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재난을 거쳐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민중들의 삶은 빈번한 어려움과 재난들을 극복하면서 종교적인 위안과 해방을 갈구하여 왔다. 이러한 정황에서 불교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대안을 제공하였고 황폐해지기 쉬운 정신 문화에 풍요한 존재 가치들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여러 고승들 가운데 원효(元?)는 불교의 민중 지향적인 발전에 공헌하였다. 그의 학문적인 공헌은 화엄학과 여래장 사상에 커다란 맥을 형성한 것을 들 수 있다. 그의 저작은 주로 불교의 다양한 경전들에 대한 이해와 중심적인 주제들을 섭렵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 혜택을 베풀고자 하였다. '종요'(宗要)나 '소'(疏)로 이름한 그의 저술은 방대한 경전들의 현학성을 민중들이 쉽게 대할 수 있도록 정리해준 '요점 정리'였다. 원효의 이러한 실천은 각기 다른 경전들의 가르침을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하고 서로 부조화되는 가르침을 재정리해 주는 화쟁(和諍)의 해석을 중심으로 삼는다. 여래장 사상은 모든 사람들의 불성이 존재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본각의 가르침을 전하므로 보편적인 인간 완성의 도리를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전통은 고려시대 의천(義天)에 이르러서 가르침과 명상의 병행을 주장하는 교관병수(敎觀?修)의 입장을 밝혔고, 지눌(知訥)에 와서는 즉각적인 깨달음과 점진적인 수행을 균형 있게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전통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고승대덕들의 노력은 한국 문화에 일관된 보편정신으로서 불교가 가능한 한 모두에게 유익한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또한 한국 불교의 특징으로서 돋보이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는 미륵신앙이다. 미래불에 대한 희망은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미륵이 하생한다고 믿었다. 미륵신앙은 사회 혁신이나 체제의 변혁을 강하게 바라던 시대마다 사회 저변 속에서 민심을 사로잡았던 가르침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역에 걸쳐서 미륵불 신앙은 탑과 불상의 조성을 통하여 민간 신앙의 기층문화를 이루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미륵불을 중심으로 하는 신천지 신앙과 정감록을 중심한 묵시문학들이 새로운 사회체제와 질서를 희구하는 민중들에게 역동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는 민간 신앙화 된 신흥 종교들에게 중요한 변혁의 동기를 부여하는 천년왕국적인 신천지 신앙을 부축이기도 하였다. 봉건제도 속에서 좌절당한 무수한 민중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역사 변혁의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다는 측면에서 한국 종교문화 속에 살아있는 하나의 전통으로 지적할 수 있다. 민중 지향적인 종교로서 많은 호응을 얻은 불교는 한국 종교사에서 무교와의 창조적인 공생의 과정을 엮어온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혼합주의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미신적인 경향으로 이해되기가 일수였지만 무교와 불교의 접맥은 한국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활발한 토착화의 결과이며, 종교적인 치유와 희망을 갈망하던 민중들의 삶에 긴밀하게 응용된 중요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는 중국에서 태동하였고 4세기를 전후하여 한자 문화와 함께 전래되고 이식되었고 한국인들의 의식과 윤리적인 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가르침이다. 어떤 종파적인 집단으로서의 유교숭상을 보기보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군자(君子)나 이상적인 통치의 이념을 주창함으로서 생활의 윤리로 반영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전승된 원시 유교에서 비롯하여 주희나 왕양명 등을 통한 신유교의 체계는 한국인의 가치체계에 규범으로서 전승되었고, 효(孝)나 충(忠)의 대중적인 덕목을 구현하기 위하여 일상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유교의 가르침은 조상제사 의례의 실천을 통하여 종교적인 수행의 대중성을 견지하여 왔다. 유교는 자신의 몸을 닦고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이루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 송나라의 주자학이 수입되어진 후 퇴계와 율곡을 중심으로 심오한 한국적인 유학을 형성하게 된다.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한국 문화의 원형적인 모본 형성에는 여러 종교들의 교류와 더불어 한국적인 해석학의 독특한 공헌을 통하여 그 지평이 구조화되었다. 유교와 불교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상적인 교류는 하나의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주자학 형성과정에서 불교의 영향이 컸던 것처럼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에 있어서도 불교의 영향은 커다란 것이었다. 신유교에서 심성화의 새로운 학풍이 형성되었던 시기에 능엄경을 중심한 간화선(看話禪)이 불가에서는 유행하였다. 이자현은 간화선의 법을 통하여 성리학 이해의 기반을 만들었고 이제현은 유교의 인(仁)과 의(義)를 불교의 자비(慈悲)와 희사(喜捨)로 대비시켰다. 또한 이색은 진리의 세계는 차별이 없으며, 유교나 불교는 모두 마음 공부를 통해 자기 완성과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7-18 세기의 격동하는 사회적 변동에 따라 태동한 실학사상은 서구의 문명과의 접촉 속에서 능동적으로 이룩한 실용적인 사상이다. 천주교의 전래로 인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새로운 각성과 함께 합리성을 통한 사회 경제의 후진성을 개혁하려는 시도와 함께 실학은 대 문화의 갱신을 요구하게 되었다. 실학운동은 천주교의 접목과 함께 민족의 고유정신을 살리려는 능동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였고 공리공론에 치우쳐진 유교의 틀에 대한 개혁 정신이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학운동과 함께 근대 민중종교 운동으로 기치를 올린 것이 최수운의 동학(東學)이다. 동학의 근본 사상은 하늘을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한국 종교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월의 가르침 속에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을 중심으로 다루어서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실제적인 가르침을 전하게 된다. 해월이 베짜고 있는 서씨의 며느리를 가리켜 '한울님'이 베짜신다고 한 것이라든지, 어린이의 울음을 듣고 천음이라 하여 때리지 말 것을 종용하신 것은 종교적인 근거에서 인간 평등과 박애를 가르친 것이다. 
한국 종교문화의 틀 속에는 일반적으로 사상적인 교류가 자유로웠으며 단순히 종교간의 관계가 배타적이지 않았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문화와 사상의 틀 속에서 종교간의 관계는 생명 존중의 근본적인 실천을 위하여 격의 없이 포괄적인 관용을 실천하였다. 



2. 다원종교 문화와 기독교 

우리는 한국문화와 사상의 틀을 검토하면서 토양과 환경이 다원종교 문화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다원종교 문화는 여러 종류의 종교들과 가르침들이 함께 한 문화권에 공존하면서 구성해온 문화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와 종교간의 만남으로 인해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비롯되었고, 그것은 하나의 당연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종교들과 각양각색의 가치들이 함께 만나고, 때로는 충돌하는 다원주의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현대의 종교 상황들은 더 이상 자신의 전통이나 교리에서 사회적 설득력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종교는 일상적인 삶의 경험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설득력을 가진다. 종교간의 만남은 대화를 통하여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고 미래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인간 삶의 깊이를 조명해 주어야 한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의 다원종교 문화 속의 종교들은 다른 종교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함께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앙을 보다 깊게 실현해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 속에 살고 있다. 
9세기 신라의 석학 최치원(崔致遠)은 화랑 난랑의 비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고 한다.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이는 실제로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민중과 접하여서 그들을 교화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이 자료는 민족적 고유의 영성을 풍류도로 보고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를 포함한 삼교의 가르침을 다 포함한 가르침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종교학자 중 유동식은 풍류도를 한국인의 영성을 말해주는 근원으로 인식하고 동양종교의 모든 이상을 접맥시킨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한국문화의 기초이념이라고 보고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살아있는 보편적인 영성이라고 본다. 풍류도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은 아름다운 인생의 멋을 향유하고 생동감 있는 진리를 실천하며 살도록 가르친 원형적인 종교문화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 문화는 동서의 종교문화들을 수용하고 이것을 하나로 가다듬어 가는 수렴의 문화이다. 동서의 조화로운 만남을 획책하는 풍류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풍류사상의 내용 속에는 종교와 종교간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으며 종교간의 갈등보다는 화합과 공존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배타주의적인 독선을 허용하지 않고 보다 이상적인 진리의 선험적인 멋으로서 풍류를 내세우고 있다. '포함삼교'의 가르침은 고대로부터 한국 문화에 전승된 관용적인 태도를 돋보이며 포괄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탁사 최병헌목사는 유학자이면서 기독교인이 된 초기의 신학자로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대개 대도(大道)는 무한한 것이어서 나라의 진리에 있어서 안과 밖으로 통할 수 있다. 서양의 하늘은 곧 동양의 하늘이다. 하늘에서 아래를 보면 모두 한 집안과 같아서 사해의 모든 사람을 형제라고 부를 수 있다." 
진리 안에서 보편적인 조화와 일치를 주장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동양종교들과 서양 기독교의 공존을 하나의 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한국의 다원종교 문화 속에 전파되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한국문화 속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종교이다. 어떻게 기독교 신앙이 한국의 다원종교 상황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갈 것인가는 하나의 중요한 학문적인 과제이다. 기독교가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을 외면한다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로부터 설득력을 상실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은 한국의 문화적인 상황에서 요청하는 물음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가 무비판적으로 시대의 요청에 동화되어 자신의 동질성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간의 만남은 오히려 각 종교의 자기인식을 심화해 준다고 본다. 다른 종교와의 만남은 자신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포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역사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깊이'에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대화와 만남을 통하여 자신 속에 있는 폐쇄성과 편협성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하게 되는 통로로서 종교간의 대화는 중요하다. 다른 종교와의 상호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고 포괄적인 종교로 발전해야 한다는 요청은 한국 다원종교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반추해 가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존 캅(John B. Cobb) 은 종교간의 대화는 상호변혁과 성장에 있다고 주장한다. 각 종교는 종교경험의 상대적 제한성 때문에 종교전통들 사이의 만남이 불가피하고 만남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변혁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배타주의적인 태도나 우월주의 태도를 넘어서 열린 포괄주의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현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가르쳐온 사랑(아가페)은 자신의 폐쇄성을 깨고 자신을 초월함으로서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사랑은 그 어떤 이념이나 가치로 자신의 길을 정당화시키거나,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를 타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워나가는 끝없는 모험과도 같은 것이다. 타자를 향한 적극적인 사랑과 무제약적인 책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개방해 나가는 대화적인 삶은 영원 속에서 영원을 실현하는 신앙의 행위이다. 기독교 신앙은 실제로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숙하여온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토착화 신학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윤성범은 유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상호보완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기독교가 하지 못한 효를 유교가 그나마도 유지해 왔다는 사실에 반하여 유교가 자칫하면 잃기 쉬웠던 하늘에 대한 신앙을 기독교가 유지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와 기독교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각기 다른 쪽을 배워야 될 형편에 놓여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국의 다원종교 상황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은 통합된 사회의 형성을 위하여 절실한 과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간의 불신과 파괴적인 대립의 관계는 첨예화된 사회 문제중의 하나로 지적된다. 종교와 종교간의 대화 속에는 부정적인 요인과 위험도 내재되어 있다. 첫째, 종교 간의 대화는 항상 혼합주의(syncretism)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둘째 종교간의 대화는 세계의 사회-역사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지적인 유희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종교적 혼합주의란 서로 다른 종교들을 무분별하게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종교간의 차이점들이 여기서는 쉽게 간과된다. 
1)종교 혼합주의의 허구성과 비실재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특히 자신의 종교와 타종교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종교 비교연구는 항상 이러한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는 비교연구와는 달리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실현하지만 결코 자신의 한계를 잊지 않는다. 2)종교간의 대화는 자칫 세계를 변혁하라는 신앙의 사회 윤리적 요청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위험이다. 즉 종교간의 대화는 항상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중심으로 실천을 수반한 것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인류가 당면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의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생명과 인간 존엄성의 실현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다원종교의 현실에서 종교간의 조화와 협력은 이러한 과제를 중심으로 깊이를 더해가야 할 것이다. 



3. 동양적 사유와 기독교 

한국 문화의 틀 속에서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전반적인 동양적 사유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동양적 사유나 사고방식은 서양적인 문화에 대비하여 발상된 것일 수 있으며 오늘날처럼 지구의 촌락화와 첨단 정보시대 속에서는 그 분류가 애매모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적 사유의 독특성은 우리들의 정신문화의 토양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1)직관과 체험 위주의 사유: 동양적인 사유의 두드러진 특징은 직관을 중시하는데 있다. 서양의 사유가 객관적인 실체를 구명하고 이성을 중심한 합리성을 강조한 구조에 무게가 있다면 동양의 사유는 순수 경험을 향하여 의식현상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수 경험에는 지. 정. 의의 분리가 없고 주관과 객관을 대립시키지 않는 직접적인 경험으로서의 직관을 강조한다. 마치 우리들이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되어 우리 자신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도 함께 잊어버리며 천지가 다만 아름다운 하나의 음악소리인 것만 같이, 이 찰나에는 소위 참된 실재가 직접 체험되는 것이다. 
이 직관의 세계는 가끔 동양 예술의 특성을 통하여 설명되어진다. 
"동양의 그림은 사물의 실재 형태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물의 형태를 그릴 때라도 사물 그 자체는 그리지 않고 그 영혼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 영혼은 무형의 세계이다. 그래서 전체 화면은 빈 공간에 지배된다. 이 여백은 서양화의 배경과 전혀 다른 것으로, 오히려 그려진 사물의 형태는 그 여백을 표현키 위한 것이다." 
직관은 과학과 철학의 지식처럼 실험이나 관찰 또는 개념이나 이성을 통해서 얻어낸 지식이 아니다. 직관은 인간정신이 스스로의 정신에 스스로를 반영함으로써 얻어지는 일종의 깨달음이다. 마리땡(Maritain)은 그의 저서 <미술과 시에 있어서 창조적인 직관>를 통하여 직관이 일어나는 의식층은 햇빛이 밝게 비치는 표면세계가 아니고, 이성적인 의식차원으로 표출되기 이전의 어두움과 꿈과 이미지로 가득 찬 달빛 세계라고 설명하였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6장에 나오는 '골짜기의 정령'과 '신비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직관적인 지혜에 대한 고전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직관적인 정신을 신비스러운 여성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능동적인 수동성으로서의 무위(無爲)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교리의 조직화나 체계화에는 일차적인 관심이 없다. 다만 어떤 궁극적인 세계나 가르침에 대하여 체험하고 체득하고자 하는 삶의 수행이 중요시된다. 직관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유는 탈교리적이고 비조직적이기 때문에 일상성 속에서 진리를 체득하는 일을 강조한다. 불교의 연기(緣起)나 공(空)의 가르침은 사유방식에 있어서 역리성을 매개로 한 순수직관의 세계이다. 세계 속에서 열반을 찾고, 해탈은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실천적인 기대는 대승불교의 공 사상을 쉽게 풀어주고 있는 표현이다. 이것은 자주 '즉'(卽)의 논리로 설명되는 체험적인 초월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체험은 하나의 체계화된 객관적 지식으로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속에서 종교적 수행의 목표가 된다. 
직관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세계는 우리 문화를 내향적 유형으로 만들어 가는데 영향을 미쳤다. 내향적인 사유는 문화의 심미적인 면을 강조하고 객관을 넘어서 주관의 우월성에 치중한 인상을 준다. 가끔 무(無)의 형이상학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이 세계는 두 개의 모순 개념 사이에서 역설적인 요소를 근거로 신비주의에 가까운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동양적인 세계에서' 무'라는 개념은 단순한 부정이나 상대적인 무라기보다는 유와 무를 포용하는 절대무의 세계를 지시한다. 이것은 불교의 현세 부정적 성격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무에 함축된 긍정적인 의미는, 현세부정이 애초부터 인간의 진정한 구제 또는 깨달음으로 인도한다고 믿는 데에서 연유한다. 그것은 인생 자체가 직접적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그 가치가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신비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직관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유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고, 그 생각은 좀 더 심화되어 명상하는 인간이 되도록 부른다. 명상은 사물의 존재방식 그 본연을 인식하기 위한 자기 동일시의 과정이다. 실제의 깊은 속을 드려다 보며 원래의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 명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명상은 행동을 위한 현실과 격리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니고 보다 구체적인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직관의 세계와 연결된다. 명상을 통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허위성과 비현실성을 파악하도록 도우며, 인격의 내면화를 통해 통전적인 인간이 되도록 돕는다. 
기독교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할 때, 동양적인 사유는 거침돌이 되기보다는 성서의 가르침이나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지름길이 되거나 안내자가 된다. 기독교의 사랑은 그 본연의 의미에서 이성 중심의 이원론적인 구조보다는 무차별적이며 탈이원적인 자기초월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이웃 사랑이나 원수 사랑은 주관과 객관의 확연한 구분과 변증적인 도식 속에서 이해되기보다는 직관적 체험을 강조하는 동양적 사유의 흐름에서 경험될 수 있다. 너와 나의 관계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진리는 자기중심의 사고방식보다는 자기를 부정하고 철저하게 무의 형이상학을 삶의 원리로 채택할 때 오히려 쉽게 실천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마가복음 8:35).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요한복음 12:24).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은 동양적인 사유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정을 통한 긍정과 죽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는 길과 일치한다. 이 세계는 자기초월의 경험으로서 직관적 체험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가르치는 복음은 일체의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진리의 깨달음은 은총에서 오며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과 집착, 편견과 독선이 발붙일 곳이 없는 역설적인 은총에서 터득되는 것이다. 대개 기독교는 동양적인 것과는 대치되며 결코 해석의 틀을 동양에서 가져올 수 없다는 편견은 서구 중심의 사고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모순에서 비롯된다. 예수가 당시의 고정관념이나 종교적 차별에 대하여 과감하게 자유를 선포하였던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아적(無我的)인 존재이었기에 가능했다. 그 분의 언어는 직관과 체험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2)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동양적 사유로서 구별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해이다. 대부분 동양적 사유의 구조 속에서는 자연 및 우주의 운행을 순환적으로 본다. 여기서 역사를 이해하는 노선의 차이를 보인다. 서양적인 사유에 있어서 자연과 역사는 하나의 드라마처럼 시작이 있고 일정한 줄거리에 따라 전개되면서 종말에 이른다. 동양적 사유 속에서는 우주와 자연의 율동이 순환적이라고 보며 개별성보다는 오히려 보편성에 중점을 둔다. 우주나 인간은 비인격적인 법에 의하여 지배된다고 보는 사고를 헤겔은 비판한 적이 있다. 
"동양인들은 정신 혹은 인간 그 자체가 본래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헤겔의 자유의식에 대한 이해는 동양의 윤리적인 우주관을 전제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실제적인 조화 속에서 누리는 적극적인 동양적 자유를 과소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음과 양의 조화로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동양적인 사유는 사물의 대립적인 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꺼려한다. 기독교적 종말론에서 선과 악은 철저하게 대립하지만 음과 양의 관계는 오히려 유기체적인 번식과정에서와 같이 상호 교호적이며 함께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이 유기체적인 관계를 진리로 보게 된다. 음양이론은 하나의 상호대립이 아니라 상호조화에 근거하고 있다. 우주가 존재하는데 있어 여성적 음과 남성적인 양은 똑같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각각은 상대 짝에 대해서 보완적이며, 둘 중의 어느 것도 결코 도덕적인 견지에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자연과 인간의 질서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고 조화와 통일을 찾으려는 통합의 관계인 것이다. 세계상의 구조는 인간 중심의 이성적인 통치나 지배에 있지 아니하고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를 구분하지 않는 정신적인 태도를 동양적인 사유는 지속해왔다. 
"도는 크고, 하늘도 크며, 땅도 크고, 임금 또한 크다. 이 우주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임금이 그 중 하나이다. 사람은 땅을 그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모범으로 삼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 도는 스스로를 모범으로 삼는다"(도덕경). 
여기서 우리는 사회와 인간이 원형적인 자연을 모범으로 삼는 단순한 모형적인 자연을 배운다.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따르며 궁극적으로 사회 정치제도는 자연적이며 우주적인 질서의 모방적인 재생산으로 환원하여 이해되고 있다. 
주희(朱熹)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가야 할 어진 마음을 인(仁)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仁)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이 받아 그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은 모든 사물에 다 깃들이어 있다." 
이것은 천인합일을 표현하면서 인간질서는 자연의 질서에서 연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양인의 사유 속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하나의 생명으로 파악하고 실천하여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생명에 대한 유기체적인 이해는 현대 문명이 생태학적인 문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대안으로 삼고 있는 견해이다. 생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밝혀서 그것을 근본으로 삼아온 것이 바로 동양적 사유의 근간인 것이다. 
이러한 동양의 자연과 인간의 이해는 성서의 원초적인 생태학적인 이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성서적인 세계관이 마치 인간 중심적으로 모든 자연을 부리고 지배하는 정복주의적인 통치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창조기사 가운데 나타난 농경문화권의 생육과 번성의 책임은 오히려 정복적인 우주관을 견지한 유목문화권의 고백보다는 오늘날 더 생생한 교훈을 준다. 혼돈 속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질서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신앙은 동양적인 사유의 폭에서 쉽게 이해된다. 그 동안 성서의 공동체를 인간중심의 공동체로 파악했던 서구적 경향을 탈피하고, 그것을 우주적인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동양적인 사유를 채용할 것을 제안한다. 성서의 창조설화는 우주적인 신성한 공동체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생태학적인 신앙을 수립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이다. 
대개 기독교를 자본주의와 함께 이해하는 편이성을 우리는 상당히 수용한다. 합리적인 종교로서의 기독교와 자본주의 심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물신숭배에 대한 반대와 철저한 금욕적인 정신을 간과한 결과에서 온 것이다. 지나치게 근대화 과정과 발전의 개념을 성서적인 전통으로 이해함으로 와진 생태학적인 위기에 대하여 반성하고, 동양적인 사유 속에서 우주적인 질서 회복의 서곡을 들어야 한다. 피조물의 궁극적인 구원은 인간 중심의 조화 회복이 아니고 자연을 포함한 온 생태계의 구원과 맞물린다.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은 새로워집니다"(시편 104편). 
"만물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 1:3). 
"대머리 산에서 개울물이 흐르고 평지에서 샘물이 터지리라 마른땅에서 물이 솟아 나와 사막을 늪으로 만드리라"(이사야 4:18). 
"흙아 두려워 말아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야훼께서 큰 일을 이루셨다. 짐승들아 두려워 말아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야훼께서 큰 일을 이루셨다. 짐승들아 두려워 말아라 들판의 목장은 푸르렀고 나무들엔 열매가 열렸다"(요엘 2:21-22). 
자연의 질서는 하나님의 질서요 그 질서를 따르는 것이 인간질서의 안정된 구조일 수 있다는 성서적인 이상을 바라보면서 동양적 사유에 근거한 만물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도(道)를 함께 이해하게 된다. 자연의 회복은 하나님의 이상이요 자연의 황폐화는 인간의 죄에서 연유한다. 동양적인 사유처럼, 히브리 사고에서 기초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일치는 중요한 기독교의 이상인 것이다. 



4. 한국 토양에서 피어날 올바른 기독교 문화 

한국문화 속에서 기독교가 성숙하여 간다는 것은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는 것과 같다. 만약 토양에 맞지 않아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나무의 생명은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나무는 흙과의 상호의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양분을 얻게 된다. 그 관계가 양질의 것이라면 나뭇잎은 무성해 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다원종교 상황이 하나의 토양인 것은 분명하다. 그 토양 속에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실제로 많은 갈등과 희생을 요청되었다. 
종교신학의 선구자였던 변선환은 한국 기독교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가 오늘날 동서가 서로 거리를 깨치고 공존하여야 하는 다원시대 속에서 비본질적인 역사적, 문화적 낡은 의상을 담대하게 벗어버려야 할 비교의화라는 신학적 과제에 직면하였다. 역사적인 발전과정 속에서 역사적인 기독교가 계시의 진리성을 교회의 권위를 배경으로 하여 보편적 진리로서의 도그마를 고정화하고 배타적인 독선과 폭력을 일삼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서 오늘 기독교는 지성의 성실성을 가지고 근원에로 귀의하여야 한다." 
한국 기독교의 책임은 복음이 한국의 토양에 순조로이 뿌리를 내리고 사회변혁의 누룩이 되게 하는데 있다. 이런 노력은 다양한 학문과 개체적인 소명을 통하여 성실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뿌리를 내리면서 동시에 그 나무가 존재하는 공간을 성화하고, 그 주변을 변혁해 가는 것이 기대된다. 
신채호는 일찍이 주체적인 한국문화의 형성을 위해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성숙한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기대이며 문화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한국의 문화적인 토양 속에서 기독교를 접목하고자 한 함석헌은 아래와 같이 역사와 연결을 짓는다. 그는 <한국역사의 의미>에서 하나의 고난사관으로 역사를 보고자 했다. 
"기독교의 진리인 고난의 메시아라는 사상 그대로를 역사에 한 번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난사관'입니다. 성경의 입장에 서서 마치 예수라고 하는 하나의 개인이 인격으로 나타낸 것을 역사에서 하나의 민족에다가 적용해 보자는 것입니다." 
한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대비하며 문화와 역사를 재해석해보려고 했다. 씨알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씨알신앙도 그의 역사이해와 함께 성숙한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이것은 한국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를 나름대로 실험한 좋은 사례가 된다. 성숙한 정체성을 가진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한국문화 풍토에서 입양아가 아니다. 이젠 주체적인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고 전통적인 문화와 창조적인 관계를 가지고 성숙한 종교로서 공헌하게 된다. 열린 대화의 정신을 토대로 하여 지혜와 영적인 성찰을 통하여 고착된 문화를 새롭게 할뿐만 아니라 치유와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한국의 문화적인 정황에서 우리는 개방적인 정신으로 대화에 임하고 인간해방을 위해 한 공동체적인 경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다원종교 상황에서 기독교가 참여해야할 대화적인 실천은 기독교 신앙의 신선한 이해, 새로운 질문들, 그리고 더 나은 표현과 관계를 규명해 가야 할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의 한 부분인 것이다. 한국 문화 속에서 피어날 복음의 꽃은 열린 신앙인들을 통하여 곳곳에 만개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의 신학자 송천성은 풍토와 토양에 맞는 해석학을 전개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구속사의 선은 직선이다. 직선은 단순화시킨다. 규칙에 맞지 않는 것은 절단해 버린다. ....... 사랑은 곡선이지 직선이 아니다. 사랑은 공간 속을 직선처럼 꿰뚫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며 그곳을 흠뻑 적신다. 사랑은 선이 아닌 원으로 작용한다. 분석이 아니라 종합이다. 심판이 아닌 포용이다. ... 구속사에서 말하는 직선의 신은 경직된 하나님으로 구원받을 자를 이미 창세 전에 결정해버린 그런 하나님이다." 
우리는 한국 문화 속에서 기독교가 사랑과 자비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열린 마음으로 참여한다. 문화적 성찰은 고정된 사고 방식을 떠나 문화와의 개방된 접촉을 통해 상호 변혁을 이루어 간다. 문화적 제국주의로서 기독교가 한국 문화에 닻을 내렸지만 이제는 기독교가 한국문화를 반대하거나 파괴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된다. 기독교는 오히려 복음으로 한국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혁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위에서 실현되도록 우리는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인내하면서 겸허하게 사랑의 삽질을 해야 한다. 



<토의주제> 

1. 한국 문화 속에 기독교가 끼친 공헌은 무엇인가? 
2, 일상적인 삶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임해본 경험을 나누어 보라. 
3. 장차 결혼할 상대로 사귀고 있는 친구의 종교가 나의 종교와 다를 때 어떻게 사랑의 관계 
를 성숙시켜 갈 것인가? 종교간의 차이로 부모들이 반대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4. 동양적 사유와 기독교의 접맥을 통한 문화적 확장에 대하여 의논하여 보라. 
5. 종교간의 대화와 복음선포의 관계는 서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대치되는가 아니면 공존 
할 수 있는 것인가? 



<참고문헌>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연세대학교출판부, 1997. 
송두율. 계몽과 해방. 도서출판 당대, 1996. 
니시타니 게이치/정병조역. 종교란 무엇인가. 대원정사, 1993. 
변선환, 한국적 신학의 모색. 한국신학연구소, 1997. 
정희수. 정토와 해석학. 도서출판 예수살기, 1997. 
최준식. 한국종교이야기. 한울, 1995. 
이정배. 한국적 생명신학. 도서출판 감신, 1996. 
<출처: 기독교와 현대사회, 강남대학교 출판부, 33-54쪽)
정희수(강남대학교, 동양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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