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의 장자권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에게 왕비로 줍니다. 또 형 에서가 사냥으로 인해 허기진 배를 해결하기 위해 먹을 것을 달라고 했을 때 동생 야곱은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 장자권을 가로채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중심이 나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위에 나오는 사건들도 내가 중심이 되었을 때는 용납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이해가 됩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아내를 자기 누이로 속이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고도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미리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또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단지 그를 선택하여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한 통로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과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면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날마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에서와 야곱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창 25:29-31)
본문 그대로 해석하면 동생인 야곱은 간사하며 비겁하고 형제애도 없는 비정한 인간으로 묘사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간 에서와 야곱을 연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 속에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야 하는 것과 양심을 속이면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께 드리면서 자신이 맏아들 에서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맏아들의 축복권을 몽땅 받은 것은 이미 하나님의 예언적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모태 안에 있는 두 아이는 누가 큰 자인지 작은 자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은 먼저 모태로부터 나온 자가 첫째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이미 큰 자와 작은 자는 서로 싸우고 한 태에서 출생한 한 형제이지만, 두 나라가 되어 나눠질 것이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예언한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야곱은 형에게 팥죽을 팔아 장자권을 사야 했고, 리브가는 별미를 만들어 둘째인 야곱에게 주며 형 대신 장자권의 축복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축복권을 인간 세계의 물질 축복으로만 해석하면 곧 욕심이 생겨 육신적인 것을 구하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야곱이 행한 사건들은 미리 예언적 계시를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장자권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
‘장자권(hr;/kB] 베코라)’는 ‘태(胎)를 열다’란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곧 어미의 첫 태를 연 자가 가지는 특권을 말합니다. 그 특권은 첫째, 가정을 통솔할 수 있는 아버지의 권위를 공적으로 계승하는 것과, 둘째, 부친 사후 재산 상속 시 갑절의 재산을 상속 받습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의 집의 장자는 영적 특권까지 주어집니다. 에서는 빵과 팥죽 한 그릇에 그만 이 모든 권한을 동생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그러므로 이삭의 가정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일들이 단지 한가정의 사건으로만 제한한다면 한 가정의 역사로 머물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면을 찾아 현재 우리의 신앙까지 접목이 될 때 이 사건은 한 가정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의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형제들 중에서‘맏아들’이 되게 하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사도 신경에는 ‘외아들’로 나옵니다. 여기서 ‘외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됨에 있어서 외아들을 말합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독생자라고 했습니다(요 3:16).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로 소개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외아들에서 맏아들이 되는 과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외아들이라고 하신 것은 그와 같은 신의 성품과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분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 받기 전에는 모든 사람은 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죄가 없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외아들이 되는 것입니다(계 1:5).
죄가 없으신 외아들이신 예수님께 아버지는 죄를 정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넘기셨습니다. 이 아들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부활 후, 즉 영원한 죽음이 없고 영원한 생명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입니다. 이분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의 몸으로써 처음입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외아들입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모습, 즉 몸과 영혼이 죄 사함 받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예수님은 첫째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둘째가 되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형성됩니다. 이 관점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갈 4:6-7).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려면 먼저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 권한은 어린 자에게 장자권이 위임되어야 가능합니다. 동생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장자가 동생을 섬길 수 없는 것이 유대 가정의 법입니다. 에서가 장자 권을 소홀히 여겼던 다른 이면은 야곱이 강한 자가 되어 섬김을 받을 것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은 육신으로 하면 다윗의 혈통에서 났습니다(롬 1:3). 그러므로 영적으로 하면 예수님은 둘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전에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먼저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영적으로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비둘기 같이 내리는 성령을 받고 나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합니다.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두 영적인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때 유대 지도자들이 첫째였고 예수님이 둘째였습니다.
그러면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야곱은 팥죽과 별미의 사건으로 형의 분노를 사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외갓집으로 피신을 합니다. 하란을 향하던 중 벧엘에서 꿈을 꾸었고, 사다리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하나님의 언약의 악속을 받습니다.
그리고 외갓집에서 21년이란 종살이를 합니다. 21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야곱은 다시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을 하고 난 후 ‘야곱에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형인 에서의 마음을 돌려 놓습니다.
21년 동안 에서는 아버지 이삭만 돌아가시면 바로 동생 야곱을 죽이려는 분노의 마음이 가득 차 동생 야곱이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용사 사백 인을 데리고 갔습니다(창 32:6). 하나님의 계획은 에서를 통하여 야곱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사백 인이 온다는 소리에 그는 이 환난에서 구원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를 의지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야곱이 변화되자 에서의 마음도 변화 되어 그들은 서로 섬기는 형제애로 거듭났습니다(창 33:9-16).
이삭은 야곱의 별미를 통하여 장자가 가져야할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야곱은 아버지의 재산은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고 오히려 형님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창 33:11). 야곱이 재산을 증식한 것은 외갓집 즉 이방 땅에서 살았을 때입니다. 야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재산과 영적인 장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과정은 붉은 팥죽과 떡(빵) 때문입니다.
붉은 팥죽과 떡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창 25: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에서 ‘죽’은 ‘끓인 국’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 6회 나오는데 엘리사 시대에 선지 생도들이 끊인 나물국이 ‘나지드(dyzIn 국)’입니다(왕하 4:39-40). 야곱이 쓴 죽도 ‘나지드(dyzIn 국)’입니다. 그러므로 ‘죽’ 보다 ‘국’이란 개념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에서, ‘먹으며(lk'a; :아칼)’는 떡을 먹는 것을 의미하며, ‘마시며(ht;v 샤타)’는 ‘음료(drink)를 마시다’ 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붉은 팥죽”에서, ‘붉은(!doa 아돔 : 붉은, 불그스레한)’은 !d"a;(아담 : 붉다)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 했습니다(사 1:18). 피를 말할 때도 사용 했습니다(사 63:1-3) 더 놀라운 것은 에서가 붉은 색을 띠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왜 에서가 붉은 것을 요구했는가’ 하는 것과 별미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떡과 붉은 팥죽으로 인해 야곱은 장자권을 사는 기회도 되었지만 신앙의 견지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도구가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조상의 하나님을 만나 에서가 알지 못하는 약속의 언약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땅에서 오랜 세월 끝에 다시 형님을 만나 재회의 악수를 하며,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명되어 하나님의 약속의 계보를 잇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빵과 붉은 팥죽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듯이 예수님도 오는 사람들에게 빵과 붉은 음료를 주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6)
예수님의 ‘살’을 ‘참 떡’(요 6:32), ‘피’를 ‘참된 음료’로, 곧 생명을 말하며 주님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야곱이 주는 떡과 붉은 팥죽을 먹으므로 인해 장자권이 바뀌고 훗날에 야곱을 섬기는 자가 되었듯이 주님이 주시는 살과 피를 마시는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이후에 주님을 섬기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6장 전체를 보면 서론에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주님은 저들에게 나를 따르는 목적이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기 보다는 썩는 양식을 위해 따른다 하시면서 주님을 믿으면서 어떤 양식을 얻기 위해 좇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요 6:27).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6-57)
오병이어 기적을 맛 본 자들에게 자신의 몸과 피를 먹어야 살아계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그 분으로 인하여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그 말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또 그 말씀이 걸림이 되어 주님을 떠났습니다(요 6:66).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7-68)
그러나 주님의 영생의 말씀(살과 피)을 먹고 마신 가룟 유다를 뺀 열한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부활하고 성령을 받기 전까지 그들도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십자가전에 주셨던 영생의 말씀이 살아나 주님을 섬기며 전파하는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떡과 붉은 팥죽을 주므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듯이, 예수님도 자신의 살과 피인 아버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몸을 떠나 다시 오실 때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하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요 17:13-23).
에서와 야곱의 역사적인 사건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세워질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나가는 글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8-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에서는 큰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진정한 큰 자는 섬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떡과 붉은 팥죽으로 에서를 주었듯이,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살과 피)를 주어 앞에 오는 자들은 살리셨습니다. 큰 자는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큰 자였지만 작은 자로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셨을 때 원래의 큰 자로서 세상을 다스리며 섬김을 받는 맏아들이 되셨습니다(계 5:12-14).
야곱이 큰 자인 에서를 떡과 팥죽으로 섬겼을 때 아버지로부터 모든 복을 받았듯이 예수님은 작은 자로서 삶을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큰 자로 인정받고 그로 말미암아 수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같은 몸과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붉은 몸인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큰 자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성이 변화가 되어 작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살과 피가 되는 생명의 말씀이 자신 안에 거하는 것이 확증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그것이 생명의 근원임을 믿을 때 에서가 야곱을 섬겼듯이 우리도 작은 자가 되어 섬기는 순종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 얼굴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첫째이며, 죄가 주인노릇 하는 들사람인 에서와 같은 자입니다. 주님을 만나 그분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림으로 우리는 큰 자에서 작은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사는 동안 말씀으로 큰 자들을 섬기는 작은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생이 마감되면 그 때 가서 주께서 우리를 아들의 유업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