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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받는 자가 다시 나누는 은혜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용서는 받는 자가 다시 나누는 은혜         

1. 용서의 정의

감정인가? 선택인가?

성경에서 '용서'는 단지 상처를 잊거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히브리어 단어가 주로 사용됩니다.

첫째, '나사'(נָשָׂא, nasa)는 "들어올리다", "짊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출 34:7). 이 단어는 죄를 짊어져서 제거하는 행위, 곧 죄책을 감당하는 주체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둘째, '살라흐'(סָלַח, salach)는 “죄를 사면하다”는 의미로,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용서의 동사입니다(레 4:20, 민 14:20). 인간은 살라흐를 할 수 없으며,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서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아피에미'(ἀφίημι, aphiēmi)라는 헬라어가 중심입니다. 이는 “놓아주다, 떠나보내다”는 의미를 가지며, 죄책과 정죄를 붙잡지 않고 풀어주는 행위를 뜻합니다(마 6:12).

즉, 성경적 용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적 결단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를 둔 영적 행동입니다.

 

2. 하나님의 용서

공의와 자비의 신비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시 85:10). 구약의 제사제도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잠시 유보할 수 있었지만, 완전한 사함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충족된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용서가 아무런 대가 없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언합니다(롬 3:25-26).

 

3. 인간의 용서

하나님의 용서를 따라 사는 삶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이 말씀은 인간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지만, 본질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용서하게 된다'는 복음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엡 4:32).

용서는 받은 자가 다시 나누는 은혜입니다. 나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반영하는 ‘영적 반사 작용’입니다.

4. 용서와 화해는 같은가?

많은 이들이 용서와 화해를 혼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을 분명히 구분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8).

여기서 '할 수 있거든'이라는 표현은 화해가 항상 가능하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용서는 한 사람의 결단으로 가능하지만, 화해는 두 사람 모두의 변화와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피해자가 감정의 해방과 영적 자유를 경험하기 위한 '단독적 행위'일 수 있으며, 화해는 상호적인 '관계의 회복'입니다.

 

5. 피해자의 고통과 하나님의 정의

용서는 고통의 부정이 아닙니다. 성경은 피해자의 눈물과 분노를 경시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 13:1).

예수님조차도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Eli Eli lama sabachthani)—“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고통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분노와 원한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정의로운 위탁’을 행하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6. 용서의 열매

자유와 회복

용서는 단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는 내가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영적 해방의 행위입니다.

루이스 스미디스(Lewis B. Smed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는

과거를 바꾸지 않지만,

과거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힘을 끊는다.”

골로새서 3장 13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상처의 노예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의를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용서하기

하나님의 용서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단지 감정을 억누르는 자기부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완전하게 만난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선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는 것도 하나님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억눌려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용서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 길을 걷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 길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와 회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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