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그리스도론
목차
들어가는 말
내용
1. 구원자─그리스도론
2. 중보자─그리스도론
3. 제사장─그리스도론
4. 성결─그리스도론
5. 경험─그리스도론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필자는 「웨슬리의 그리스도론」(김영선)을 중심으로 웨슬리의 기독론을 총 다섯 가지, 구원자─그리스도론, 중보자─그리스도론, 제사장─그리스도론, 성결─그리스도론, 경험―그리스도론으로 구분해보았다. 구원자─그리스도론을 통해서 웨슬리 기독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보자─그리스도론에서는 웨슬리의 기독론적 관심이 무엇이며, 왜 그러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사장─그리스도론은 웨슬리 기독론의 전제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경험─그리스도론을 통하여 웨슬 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신학이 무엇인지, 웨슬리 기독론이 가지고 있는 함의와 목적, 그 목표와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1. 구원자―그리스도론
웨슬리가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올더스게이트의 한 작은 집회의 경험 이후이다. 그는 올더스게이트의 경험 이후에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설교에서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함을 말하였다.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본질적으로 “구원자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사실은 개념화된 교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웨슬리에게 ‘구원자 그리스도’는 실제적인 의미이며, 실용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웨슬리는 시종일관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연결”시킨다. 이처럼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구원론과 연결되어 이해할 수밖에 없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경험 그 이후,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구원론과 철저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웨슬리의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구원자―그리스도론”이라 명명하고 싶다.
2. 중보자―그리스도론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며 인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니케아―칼케돈의 그리스도론을 따른다.
웨슬리의 저서 「신약성서 주석」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직무는 신성에 속한 것이라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아네트 또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었음을 언급하며, 웨슬리가 이를 강조하고, 예수의 신성을 강조했음을 분석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웨슬리의 신학에서 두 가지 기둥의 역할을 한다. 개중에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고, 중보하는 차원에서 예수님은 신성이 특별히 강조된다.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로서 존재하시며,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제사장―그리스도론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즉 속죄와 화해를 중심으로 삼중직을 이해하고 있는 웨슬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제사장―그리스도론은 ‘속죄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주된 업무와 역할은 인간의 전가된 원죄로부터 속죄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웨슬리의 제사장─그리스도론은 구원론 아니, 더 구체적으로는 속죄론에 흡수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삼중직’ 자체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도식 안에서 이해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이미, 멀리 떨어진 상태로 접촉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한 접촉을 가능케 하는 역할이 바로 ‘중보자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이다. 이 중보자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접촉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 접촉 이후에야 비로소 ‘예언자적 그리스도’ 혹은 ‘왕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적용이 된다.
웨슬리에게 ‘제사장─그리스도’는 이해의 대상이 아닌 ‘필요의 대상’으로 요구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인 그리스도의 인격보다는 사역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스도의 역할과 그로부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과 혜택이 무엇인지, 실용적인 것에 관심을 두었다.
4. 성결―그리스도론
이러한 웨슬리의 관심을 대변하듯 어떤 이는 웨슬리를 향하여 이와 같이 표현한다. “사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인격보다는 사역에 비중을 두어 그리스도의 인격론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속죄론의 각주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Colin Williams)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보다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는 데에 웨슬리의 관심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웨슬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죄의 대가로 보는 방식을 주로 말하지만 그의 기독론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한계와 제한점, 죄의 대가를 치루시고, 더 나아가 우리가 같은 육체가 되셔서 우리의 한계인 죽음을 극복하셨으며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성품을 회복시키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웨슬리는 예수의 인성보다 신성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근본적으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가장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순서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앞세워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의 ‘구원론’ 즉 속죄론이 인간에게 적용이 되어야 하나님과 인간이 접촉이 가능하며, 인간의 성품도 성결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후, 웨슬리는 예수님의 인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신성을 분명하게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론의 인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는 가현설을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인성을 성결론과 연결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소고」에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론과 연결하는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화의 표준과 모델로서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1729년을 기점으로 신앙이란 ‘내적, 외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 명명한다. 즉 단순히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오는 혜택을 넘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닮아가야 한다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관심과 이어지는 성결론을 엿볼 수 있다.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속죄론―혹은 구원론―이면서 동시에 성결론이기도 하다. 한영태는 이러한 웨슬리의 구원론을 “구원론의 핵심은 성결이다” 라고 말한다. 즉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속죄론에 속하며, 속죄론의 핵심은 곧 성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웨슬리 성결─혹은 성화─론의 중심에는 그리스도론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웨슬리의 관점을 “성결―그리스도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5. 경험―그리스도론
웨슬리의 신학적 경험의 특수성, 즉 올더스게이트 경험 이후, 웨슬리는 이성중심의 신앙, 이신론적인 종교이해로부터 탈피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론을 조직신학적으로 정립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론적 교조이기보다는 실제적이고, 실용적이고, 사역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전통적인 것들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칼케돈 신조와 영국교회의 39개조 종교 강령’을 인정했고, 그것들을 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강조점은 전통교리에 있지 않았으며,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과 성결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웨슬리의 고백에 의하면, 올더스게이트에서의 경험 이전에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도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거의 다 된 것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스스로를 생각했고, 본인은 여전히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가 누구시냐’는 물음에 ‘세상에 구주시라’ 대답했다. 그 이후에 예수가 바로 당신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신앙이 없음을 깨닫고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도 이야기 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올더스게이트 체험은 “그리스도의 존재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신성과 인성이 함께 만나고 있는 타자적 만남의 현실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한다.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신가를 이론적으로 지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뛰어 넘어 그분을 직접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찰스 W. 카터는 웨슬리의 기독론을 “기독교인의 완전에 대한 진정한 체험을 하게 만든 기독론”이라고 말하면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능력을 가지고 오셨고,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취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웨슬리에게 있어서 경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가 구원자임을 깨닫고 성화의 과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가 보낸 구원자이자 우리가 따라야할 모형이 되신 분임을 깨닫고 그 분의 삶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은 구원받은 자들이 앞서가신 모형 되신 그리스도를 필연적으로 따라야 되는 십자가의 길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경험적으로 구원론적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확신 이후로 그는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서 형성되는 ‘성화의 과정’이라는 성화―성결론이 발생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화―성결론은 순차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중요한 사실은 웨슬리에게 이러한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화―성결론은 실제적인 의미로서,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사변을 넘어 경험에 이르는 경험적 그리스도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웨슬리의 기독론은 총 다섯 가지 구원자, 중보자, 제사장, 성결, 경험―그리스도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분류해보았다. 구원자―그리스도론에서는 웨슬리의 기독론의 본질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임을 밝혔다. 중보자―그리스도론에서는 웨슬리의 기독론적 관심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있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구원을 충족시키는 조건이 됨을 이야기했다. 제사장―그리스도론에서는 ‘속죄론’에 기반한 기독론임을 이야기하였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속죄로써 회복케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성결―그리스도론에서는 내적인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이 있다면 외적인 행동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됨을 언급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론, 속죄론, 성결론으로 이어지는 웨슬리의 기독론을 순차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경험─그리스도론을 통하여 웨슬리 기독론은 교조가 아닌 체험이며, 인지적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닌 전인적 체험에 머물러야 함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