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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20|조회수17 목록 댓글 0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조창훈목사

칼빈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스스로 해석하는 성경

칼빈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루터의 견해인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성경은 그 스스로 해석한다) 원리를 따랐다. 칼빈은 성경에 있는 언어의 통상적인 용법이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위한 열쇠로 믿는다. 칼빈은 좋은 해석이란 성경에서 통상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칼빈의 성경해석 원리는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원리와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거”을 통해서만 해석된다는 원리로 대표된다. 그의 성경해석의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명백한 간결성’에서 나타난다.

칼빈은 이사야 34장 16절 주석에서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들의 교훈을 모두 율법으로 끌어내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사야는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라고 명령한 것이다.

칼빈의 신학을 계승한 개혁신학의 성경해석법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이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이 모두 동일한 구속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상에 근거한다.

2. 전체 성경

개혁교회의 특징적인 성경해석 원리는 ‘전체 성경(tota scripta)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속사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성경해석 원리이다. 성경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함께 포괄하는 구호가 ‘전체 성경으로’(tota Scriptura)라는 구호이다. 개혁주의의 성경관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에 ‘전체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묶어서 한 쌍으로 받아들인다.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가 전체 성경이라는 구호를 만날 때 “성경은 그 자신의 해석자”(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가 된다. 이것은 루터의 명언이다. 하지만 그 명언을 루터보다 더 바르고 정당하게 성경해석에 적용한 것은 칼빈이다.

3. 명료하고 보편적인 해석

칼빈은 성경에서 불명료한 것은 명료한 것으로, 특수한 예가 아닌 보편적인 예들로 다른 성경과 비교하여 조화있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주석의 여러 곳에서 그렇게 주장하였다.

칼빈은 성경해석에서 특수한 예가 아닌 보편적인 예들로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들어 성경에서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보속은 없었다. 세리, 베드로, 중풍병자도 보속 없이 용서받았다. 로마 교회가 다윗의 경우를 보속의 예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원칙은 특수한 예가 아닌 보편적인 예들로 정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간청한다. 만일 그들이 의에 대한 진정한 표준(標準)을 성경에서만 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성경 자체를 가지고 조화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나와 함께 경건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숙고하기를 바란다.”

칼빈은 야고보서와 로마서를 비교하면서 조화있게 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이 야고보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생각한다면, 야고보의 말을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모순되지 않도록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를 성경의 다른 부분들 및 야고보 자신과 조화(agree with)시키려면, "의롭다 함"이라는 말을 바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칼빈은 야고보는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행의 열매가 있는 의(a righteousness fruitful in good works)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또한 바울도 우리가 행위의 도움이 없이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야고보는 선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의도(this intention)를 생각하면 우리는 모든 곤란에서 해방된다. 우리의 반대자들은 야고보가 칭의의 방법(the manner of justification)을 설명하는 줄로 생각하는데, 이 점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망상이다. 이와는 반대로, 야고보는 믿음을 가진 체하면 믿음을 구실로 삼아서 선행을 경멸하는 자들의 사악한 확신을 분쇄하려 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칼빈은 성찬 논쟁에서 성경해석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일반 법칙을 따르지 않고 문법적으로 검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간단하면 뜻이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려고 하면 이야기가 길수록 좋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바울과 누가는 충실하고 확실한 해석자이이므로 그들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말과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다’라고 하는 명제가 동일한 것이냐고 묻고자 한다. 다르다고 인정한다면 (그들은 내키지 않더라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떡은 성례적인 의미에서 몸이라고 부른다는 오직 한 가지뿐일 것이다. 이로부터 그리스도의 말씀은 일반 법칙에 따르지 않고 문법적으로 검토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나는 엄격하고 완고한 모든 문자 고수파에게, 누가와 바울이 잔을 ‘피로 세운 언약’이라고 부를 때(눅 22:20; 고전 11:25) 그들이 떡을 몸이라고 하던 앞 절에서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다. 이 신비의 한 부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경외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말이 간단하면 뜻이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려고 하면 이야기가 길수록 좋다. 그러므로, 그들이 떡이 몸이라고 한 한마디 말을 근거로 주장할지라도, 나는 떡은 몸으로 세우는 언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는 것을 여러 말을 근거로 하여 제시할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바울과 누가보다 더 충실하고 확실한 해석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칼빈은 성찬에 대해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칼빈은 성찬에 대해서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왜곡하지만, 개혁자들은 충실하고 바르게 해석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로마서 3장 20절 주석에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다른 성경과 조화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칼빈은 갈라디아서 2장 19절 주석에서 이 구절은 로마서 7장과 비교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칼빈은 사무엘하 1장 17-20절 설교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선지자들에 관하여 연구할 때 우리는 극도로 모호한 문장들이 그들의 책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들로 인해 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호한 말들은 성경의 다른 구절로부터 나오는 말씀들에 의해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야살과 같이 잃어버린 책들을 찾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칼빈은 사무엘하 2장 8절의 모호한 문장을 역대상 18장 17절의 구절들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사무엘하 8장 9-18절 설교에서 성경은 불명료한 것은 명료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모호한 성경 구절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비교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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