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히 서 가는 교회(교회창립기념주일)
행 9:26~31
데오도르 뷔델(Theodore O. Wedel) 박사가 교회를 풍자적으로 비유한 글이 있습니다. 자주 배가 파선하는 위험한 해안에 난파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작은 인명 구호소가 있었습니다. 움막 같은 보잘 것 없는 집에 작은 배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헌신적이었고 희생적인 일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불철주야로 난파한 배의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인명구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명구호소에 의해서 구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호소는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구출 받은 사람들 그리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기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인명구호소는 점점 좋아졌습니다. 시설도 좋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인명구호소가 차츰 인명구조에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하던 일꾼들은 이제 더 이상 인명구호에 나서지 않았고, 양복을 입고 멋진 구호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인명 구호할 사람들을 돈으로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인명구호소의 전체분위기가 더 이상 인명구호소가 아니라 사교클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그 의견은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인명구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결국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자 새로 시작했던 구호소도 처음의 구호소와 똑같은 길을 되풀이하기 시작했습니다. 헌신적은 사람들은 또 다시 다른 곳에서 시작했습니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해안에는 사교장으로 변한 인명구호소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난파한 선원들이 대부분 구조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도행전 9장은 사울의 회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의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기 위해 가던 중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된 사울이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자들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회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사도들은 두려워하며 냉담하였습니다. 그 때 바나바가 사울을 변호하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것과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하였습니다. 즉 바울을 받아들이고 동역하는 교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든든히 서 가는 교회’ 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주를 고백하여야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중국에서 선교할 때 한 청년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신자가 되는 데는 몇 년이 걸립니까?” 그러자 테일러는 “심지에 불을 붙이려면 얼마동안 불을 붙여야 불이 붙고 빛을 발하지요?” 물었습니다. 청년은 “불을 그어 대자마자 불이 붙고 빛을 발합니다” 하고 대답 했습니다. 테일러 선교사는 “바로 그겁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삶의 빛이 우리 영혼 속에 타오르게 되고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자 청년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고백하며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29절입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변화된 후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교인이 그가 변화된 것을 믿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비난받고 성장하지 못하고 침체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력이 되는 하나님과의 접촉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에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빠져 버린 교회가 되었으니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져버린 교회는 건물일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 냄새만 가득한 세속주의 교회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이 떠나가신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접촉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모름지기 교회는 하나님이 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교회가 될 때 비로소 교회는 든든히 서 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주를 경외하여야 초대 한국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캐나다 출신 맥킨지(W. J. Mckenzie) 선교사는 황해도 소래 마을에서 복음이 이처럼 높이 존중된 것은 전적으로 성령 충만한 서상륜 일가의 공로였다고 그의 일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895년 5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소래 예배당이 돈이 없어서 기와를 올리지 못하여 지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상륜 성도가 자기 집의 기와를 벗겨서 교회 지붕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인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반드시 부흥될 것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여기의 ‘경외’라는 단어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예배입니다. 그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할수록 밤낮 그 이름을 찬양하고, 거룩하신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진실로 예배하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은 저들을 흩어 놓았지만, 그들은 어떤 자리,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장 고귀한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정신입니다. 물질이든, 건강이든, 재능이든, 시간이든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희생이요 헌신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하나님께 진실로 드리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영적으로 두려워하며 예배할 때 교회는 변화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예배는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일보다 관계가 우선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일을 많이 한다 해도 하나님과 관계가 닫혀 있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인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힘쓰는 교회가 될 때 비로소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어 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의 영이 임해야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i)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세빌레에 오셔서 전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세빌레의 유명한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를 면회하고 꾸짖었습니다. “예수여! 왜 또 오셨습니까?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일을 교회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잘 건축하고 교회법과 프로그램을 세워 잘하고 있는데 왜 또 오셨습니까?”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현대교회에도 있습니다. 온갖 전도계획, 성장 방법론, 각종 세미나와 프로그램은 있지만 정작 예수 정신은 중심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비판을 받습니까? 외형적이고 상업적인 모습에 물든 것처럼 교회가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비판의 핵심내용은 교회 이기주의입니다. 개 교회 중심주의를 통해 다른 연약한 교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주의 영입니다. 성령의 강림과 역사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여기의 ‘성령의 위로’ 라는 말은 ‘성령의 후원가운데, 성령의 격려가운데 ’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태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초대교회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한 이후 교회가 탄생합니다. 성령강림 이전에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출발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교회를 성장시키려 해도 안 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는 주체가 바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가는 동력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성령이 맥을 못 추는 교회와 성령이 기뻐 춤추는 교회입니다. 세속적인 욕심으로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교회는 성령이 맥을 못 추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기뻐 춤추며 역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였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수 없이 나타난 교회입니다. 성령의 후원이 있고 성령으로 증거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교회였습니다. 성령께서 원동력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위로를 사모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초가 물질이나 사람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만이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가는 기초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이 위로하심으로 진행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의 ‘진행한다’ 는 말은 ‘움직인다. 보다 나아진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움직이며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점점 나아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든든히 선 채로 있어서도 결코 안 됩니다. 보다 더 진취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평안하고 든든히 서 있는 채로 안주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어 구원을 얻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3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감사로 영광 돌리면서 앞으로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필히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진행되는 교회가 되어 든든히 서 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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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