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다국적) 선교 전략의 성경적 검증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전략을 중심으로-
손 윤 탁
| 1. 새로운 선교 전략의 시대적 요청 2. 지역별 선교 전략의 개념과 성격 3. 바울의 선교 전략 1) 바울의 선교 전략에 대한 제견해들 2) 사도행전을 중심한 바울의 선교 전략 (1) 지역 중심의 거점 선교 ? 도시 선교의 거점인 회당 ? 도시를 거점으로 한 지역 선교 (2) 동역자들과의 협력(팀 선교 전략) (3) 다양한 선교 방법의 적용 (4)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 (5) 전도의 최종 목적 - 교회 설립 4.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정책 5. 지역별 선교 전략의 적용과 문제점 |
1. 새로운 선교 전략의 시대적 요청
선교의 형태가 변모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방 교회 위주로 계속되어 오던 선교가 전통적인 피선교지 교회들의 선교 시대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 지역, 비기독교 지역 등으로 구분되던 전통적인 지리적 개념의 선교관이 무너지고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서서히 국경이라는 장벽이 무너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선교 전략의 개발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는 세계가 좁아지고 경제적인 국경이 없어짐에 따라 민족주의가 더욱 팽배해지고 종교간의 갈등이 더욱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자본의 전횡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른바 무한 경쟁에서 세계적인 자본의 전횡을 막고 생존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노선을 취하는 것이다. 서구 자본의 침투와 수탈, 그리고 그러한 자본과 정치 권력을 등에 업은 서구 기독교의 선교는 많은 선교지들로 하여금 민족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서구와 서구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배양하게 했으며 타종교들의 경각심과 배타성을 더욱 증가시켰다. 어떤 면에서 국경보다 더 높아진 선교 장벽이 바로 민족주의와 종교적인 배타성과 폐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폐쇄성과 배타성이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선교사들에게는 비자를 주지 않으며 선교사가 입국을 하였더라도 몇 개월 이상 체류할 수가 없다. 또 국외로 나간 선교사는 일정한 기간 안에 재입국을 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않은 세계 모든 민족과 국가, 복음의 바깥에 있는 모든 종족과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증거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시되는 새로운 전략이 '다지역, 다국가,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선교 전략'이다.
지난날에는 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면 거기서 죽어 뼈를 그 나라에 묻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특히 아시아 일대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결국 선교 전략은 다지역(多地域), 다국가(多國家) 선교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과거처럼 국가명을 붙여 어느 나라 선교사라 하지 않게 되고 동남아 선교사, 서남아 선교사, 동북아 선교사 정도로만 구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다국적 선교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이 전략을 제창한 이들도 이러한 선교 전략이 차선(次善)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선교 전략 중 최선의 것은 섬기는 선교지에서 일생을 보내며 거기서 뼈를 묻고 자기가 다 못한 것은 자손 대대로 선교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선교하도록 놓아주는 나라가 없다. 서구의 거대한 선교 단체들이 곳곳에서 철수하였고, 말레이지아의 경우 한 가정도 그냥 두지 않고 다 쫓아 보냈다. 인도를 비롯한 곳곳의 선교지는 선교지의 자취만 남겨 두었다. 선교사의 비자를 주지 않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최선의 전략이 되지 않을 때에는 차선의 전략을 취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혹 '다국적 선교'가 차선의 선교 방법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때때로 시대적인 상황과 지역의 형편에 따라 최선의 선교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선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다.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라든지 '다국적 투자'등과 같은 용어로 인하여 어감상 좋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글라데시와 인도 출신의 두 학자 사무엘(Vinay Samuel)과 쉬덴(Chris Sugden)은 그들의 공저인 '제3세계 시각에서 본 80년대의 세계 선교'에서 선교 단체를 '다국적 기업'에 비유하면서 이러한 선교 단체를 '복음의 해적들'이라는 혹평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다국적 선교'의 개념과 전략을 '다국적 기업'과 비교하면서 살피는 가운데 '지역별 선교' 혹은 '지역별 선교 전략'의 개념과 성격을 규명한 후, 이 전략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 전략을 중심으로 성경적인 관점에서 검증하려고 한다. 동시에 이 선교 전략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그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그 해답을 모색해 보려는 것이다.
2. 지역별 선교 전략의 개념과 성격
새 시대의 선교 전략은 세계화 추세에 따른 지역 중심의 선교 전략이어야 할 뿐 아니라 '국경 없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역별 선교 전략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새로운 전략으로서 효율적이면서도 어떤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선교 방안이다.
1) 지역별(다국적) 선교의 정의
대부분의 선교지 국가들의 선교 정책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선교사의 추방, 비자 발급의 거부, 단지 3개월 혹은 6개월 이내의 체류등 현지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인 제도는 선교사로서 매우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교사가 현지의 정치적인 사정에 대하여 무감각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러한 분별력이 실제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득이 새로운 선교 전략과 팀사역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해야 하며 3개월 혹은 6개월씩 몇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동역자들과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하는 선교' 하는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손중철은 여러 나라에 두루 다니면서 하는 선교를 '다국적 선교'라는 이름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째, 다지역 다국가 선교 전략이다.
현재처럼 국가명을 붙여 어느 나라 선교사라 하지 않고 동남아 선교사, 서남아 선교사, 동북아 선교사, 서아프리카 선교사, 동아프리카 선교사등으로 불려져야 할 것이다. 저들은 적어도 3개 이상의 선교지를 정하고 그 나라에서 비자와 기한이 마치기 전에 제2의 선교지를 향하여 출발하여 나간다. 이 간단한 전략으로 한국 선교사들의 많은 어려움은 어느 정도 배제하게 될 것이며, 보다 효과적이 될 것이다.
둘째, 다민족 다문화 선교 전략이다.
과거에는 한 민족을 선택하여 그 민족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으나 앞으로는 선교지의 선교 대상이 그렇게 될 수 없다. 다지역의 다민족을 상대할 수 밖에 없다. 문화도 그러하다. 다문화 선교사가 될 것이다. 다문화에 대한 연구와 여러 문화를 상대하여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
셋째, 다언어 선교 전략이다.
다종족에는 다언어가 필수적이다. 대학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기 위해서도 여러 언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선교지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더욱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선교사들은 몸으로 뛰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다국적 선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국적 선교란 선교사가 어느 한 나라에 파송되어 그 나라에서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선교 대상 국가들로 삼고 두루 다니면서 하는 선교이다."
2) '다국적 기업'을 통한 '지역별 선교 전략'의 개념 이해
다국적 선교의 개념은 '다국적 기업'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실제적인 내용이나 목적면에서는 엄격히 구별될 수 있겠으나 조직과 관리면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다국적 기업을 일반 용어 사전에서는 '여러 나라에 걸쳐 현지 국적을 얻은 제조 공장과 판매 회사를 거느린 대기업' 으로 단순히 해외에 지점이나 자회사를 두는 것과는 구별된다. 원종근은 국제기업(international corporation)의 개념과 다국적기업(TNC : Transnational Corporation 혹은 MNE : Multinational Enterprise, UN에서는 TNC를 공식 용어로 사용)의 개념이 혼용되고 있음을 지적한 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다국적 기업이란 여러 국가에 계열 회사를 가지고 다양한 기업 활동을 영위하며, 본사가 설정한 다국적 기업 체계 전체적인 기업 목표(corporate system-wide objective)에 의해서 일률적으로 통제, 관리되는 기업군이다.
따라서 원종근은 '우리 나라의 기업을 주 연구 대상으로 하기 위하여는 다국적기업의 개념을 보다 확장한 국제기업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국제기업이란 '국제적인 기업 활동이 기업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기업'이라고 하였다. 정구현은 다국적기업에서 더욱 발달한 기업을 초국적기업(supranational corporation)으로 소개하면서 국내기업에서 국제기업으로, 국제기업에서 다국적기업으로,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서 초국적기업으로 진화해 나가는 기업 진화론적인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기업 목표는 다국적기업 체계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체계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이라면 그 일이 설사 일부 계열회사의 이익에 반(反)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다국적기업은 국가간의 상호 의존 관계를 강화시키고, 기술 이전이 이루어지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수출 시장의 한정, 대체 가격에 의한 자금 이전, 세율이 낮은 제3국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탈세를 꾀하거나 환율 변동을 이용해 투기하는 등 국가 주권과 기업 활동이 모순되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국적 선교의 '다국적'이란 용어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다국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독과점' 및 주권 국가에 끼치게 될 경제적 폐해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다국적 선교 전략의 '다국적'이란 용어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다국적 선교 전략'이라는 말보다는 '지역별 선교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오해의 소지도 적어 진다. 즉, '동남아 다국적 선교사'라는 말보다는 '동남아 지역 선교사', '서아프리카 다국적 선교사'보다는 '서아프리카 지역 선교사'가 훨씬 부르기도 좋고 그 의미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3) '지역별 선교 전략'의 특징과 성격
일반적인 선교 사역이 갖는 성격 외에 '다국적 선교'가 갖는 몇 가지의 특징들을 정리함으로서 '지역별 선교 전략'의 성격을 규명하려고 한다.
첫째, 지역 중심의 선교 전략이다.
과거에는 한 민족 한 국가를 선택하여 선교사들이 그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으나 앞으로의 선교지와 선교 대상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다지역, 다민족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센타를 설립하고 여러 곳에 임시 선교 기지를 많이 세우게 된다. '지역 중심'의 선교 전략이 이루어지게 된다.
둘째, 전략 면에서 팀(team) 사역이 전제되어야 한다.
2-3개 나라를 상대할 경우 2-3명의 선교사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지역 중심에 한 명의 선교사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이들 선교사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번갈아 가면서 사역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3개월 혹은 6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에 사역을 하게되지만 지속적인 선교 사역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발이 잘 맞는 팀사역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전문적인 훈련과 준비가 요구된다.
지역적 선교사들은 먼저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여야 한다. 다문화 다민족을 상대하기 때문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같은 지역에 위치한 나라라 할지라도 나라마다 고유한 정책과 특색이 있고 민족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각기 다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다양한 선교 방법을 연구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훈련과 준비가 요구된다.
끝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본국의 역할이 더욱 커질 뿐만 아니라 선교사 정책 개발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지역별 선교 전략'이 요구하는 선교사는 여러 명의 선교사가 팀이 되어 사역하게 되므로 그들의 상호 협력과 무리 없는 선교 사역 진행을 위해서는 선교사 후원을 위한 정책이나 주기적으로 바뀌어 오는 선교사들과 현지인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위한 특별한 배려도 필요하게 된다. 선교 단체가 현지 교회를 무시하게 되면 악감정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현지 교회와 선교사, 선교국과 피선교국에 대한 관계, 제도나 정책 개발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요구되어질 수밖에 없다.
3. 바울의 선교 전략
1) 바울의 선교 전략에 대한 제 견해들
'바울에게 과연 선교 전략이 있었는가?' 허버트 케인(J. Herbert Kane)은 이 질문에 대해 전략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전략'이라는 말이 인간의 관찰과 경험을 기초로 한 의도적이며 공식화된 인위적인 활동 계획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바울에게는 거의 혹은 전혀 없었다고 하겠으나, 성령의 지시와 통제를 철저히 따르는 융통성 있는 운용 방식(modus operandi)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바울은 분명히 일정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다음은 케인이 요약한 바울의 선교 전략이다.
1. 그는 선교 기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 그는 집중적인 노력을 네 개 지역에 국한시켰다.
3. 그는 대도시 중심의 전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4. 바울은 회당을 이용하여 복음 전파의 본거지로 삼았다.
5. 바울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청중들에게 주력하였다.
6. 바울은 신앙고백에 즉시 세례를 베풀었다.
7. 바울은 새로운 교회를 세울 때까지 충분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8. 바울은 동역자들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9. 그는 융통성 있는 전도 활동을 하였다.
서정운도 바울의 선교 전략을 소개하는 가운데 '선교 본부와의 긴밀한 접촉 유지', '네 개 지역을 중심 하여 노력을 국한 한 점', '대도시 중심의 선교'를 이야기 한 후 '교회가 조직되면 자치, 자립, 자력 전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사실 우리 나라의 3자 원리도 바울의 전도 전략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동시에 바울의 접근 방법은 상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대하는 융통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메세지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신념으로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광순 역시 케인과 마찬가지로 롤란드 알렌(R. Allen)의 말을 인용하면서 "바울에게서 우리는 어떤 선교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바울에게 있어서의 전략은 미리 계획하였다는 의미에서의 전략이 아니라 그의 선교 활동을 통해서 보여준 실례들을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의 선교 전략을 제시한다.
1. 기도의 전략 :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를 통해 환상을 보았으며, 그 환상이 성령의 인도하심인 줄 믿고 순종하였다.
2. 동역자들과 협력 : 그는 혼자서 선교 사역을 담당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동역자들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였다.
3. 적응이라는 전략 : 복음의 진리는 철저히 고수하였으나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적응해 나가는 능력이 있었다.
4. 도시 중심의 교회 설립 : 그는 대도시들을 선교의 거점으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설립하되, 기존의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 기지가 되었다.
아더 글래서(Authur F. Glasser)는 이 외에도 '남의 터위에 건축하지 않는 정책'(롬15:20)과 '고난을 통한 선교 전략'을 추가시키고 있다.
2) 사도행전을 중심한 바울의 선교 전략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그의 선교 전략을 여러 가지 입장에서 정리할 수 있겠으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적 특징과 전략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당시로서는 가장 인구가 많고 번성한 지역 몇 군데를 거점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선교하였다.
둘째, 그는 외로운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팀(team)으로 사역을 하였다.
셋째, 그는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선교의 대상에 따라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하였다.
넷째, 바울의 선교 전략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전략은 역시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All things to all men)이 되었다.
다섯째, 그의 전도 전략의 최종 목적은 교회 설립이었다. 바울이 지나 간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그 교회들은 또 다시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다.
(1)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거점 선교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로서 그의 선교의 본부는 분명히 안디옥교회였다. 지금까지 예루살렘교회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그리스도 세계 전체의 어머니 교회로 지내 왔으며,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이 교회를 관장해 왔으나 이제 안디옥교회가 이방 교회의 어머니로서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되고, 바울 선교의 출발지인 동시에 종착점이 되었으며 모든 선교 지원의 보급지가 됨으로서 분명한 선교 본부가 되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후에 스티븐 니일(Stephen Neil)도 예루살렘 중심의 사고 방식과 행동이 전체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었던 세 가지의 급격한 변화의 발생 가운데 하나로 '교회 동향이 이제는 주위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부터 주위 세계로 번져 나가는 형태임'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변화는 매우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며, 훗날 바울이라고 불려지는 다소인(人) 사울의 생각과 사역에 관계'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하튼 바울의 선교 전략은 철저하리만큼 거점을 중심으로 한 선교 전략이다. 작게는 회당을 중심으로 크게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 전략이었다. 회당을 그 도시의 선교 거점으로, 또 그 지역의 수도나 인구가 많고 번성한 도시를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로마의 속주였던 빌립보, 아시아 선교의 전진 기지로서의 에베소에는 바울이 무려 3년간이나 체류하였으며, 로마로 향한 집념과 일루리곤까지 나아가려는 그의 계획 속에는 한 선교사가 효과적으로 맡을 수 있는 선교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집중적 선교의 효율성'이라는 전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장 인구가 많고 번성한 지역 네 군데를 집중 전도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것은 곧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니아, 아가야 등의 네 지역이었다.
① 도시 선교의 거점인 회당
바울이 가는 곳마다 회당을 도시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는 선교지로 나아가면 어떤 도시에서든지 먼저 회당으로 들어갔다. 회당에서 그는 먼저 유대인을 만날 수 있었고, 이방인 개종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이방인들을 쉽게 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경건한 이방인들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흔히 바울과 그의 메세지를 거부하였다(행13:45, 50, 14:2,19, 17:5, 18:12, 21:27, 23:12등). 그래서 그는 회당에서 추방당하는 일들이 잦았지만 그 때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으며(행18:7, 19: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에 도착하는 즉시 그는 또 다시 회당으로 향하곤 하였다. 이러한 회당 중심의 선교에 대하여 케인(J. H. Kane)은 "바울을 대적하는 대부분의 세력이 회당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회당은 로마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바울이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도한 회당들은 구브로에서의 살라미 회당(행13:5), 비시디아의 안디옥회당(행13:13-52), 이고니온 회당(행14:1-6), 데살로니가 회당(행17:1-9), 베뢰아 회당(행17:10-14), 아덴 회당(행17:15-34), 고린도 회당(행18:1-17), 에베소 회당(18:18-22) 등이다.
다만 회당을 찾을 수 없었던 빌립보에서만은 다른 '기도할 장소'를 찾아야 했을 뿐 그는 회당을 복음 전파의 본거지로 삼았던 것이다.
② 도시를 거점으로 한 지역 선교
바울이 도시 중심의 선교 전략을 구사한 것도 역시 도시를 거점으로 한 주변의 복음화를 위한 전략이었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신학적으로 빈틈이 없는 유대인과 이방인 청중에게 유대인 회당이 도시마다 바울로서는 목회를 시작하기에 적절한 장소였지만 그것이 그의 목회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아니었다. 그의 선교는 선교 본부 중심의 선교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안디옥 교회가 그의 이방 선교의 중심이 되었고,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팀은 안디옥 교회의 소달리티(Sodality)였으며, 그들의 선교는 또한 디아스포라와 회당 중심으로 선교 거점을 확보해 나가는 선교였다. 그러나, 바울의 도시 중심의 집중 선교 전략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대도시를 선택하게 된 것은 거기에는 생활이 보다 안락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대도시들이 복음의 빛을 주변 지역에 전파하는 데 있어서 전략적 기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타이센(Gerd Theissen)의 지적처럼 인구가 새롭게 불어남으로 발전되어 가는 도시들은 전통적인 관습에 얽매인 시골보다는 새로운 메시지에 대하여 더욱 열려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니아, 아가야 등 네 지역을 선택하였다. 갈라디아와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역이었고,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유럽 지역이었다. 그는 모든 지역을 다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좁은 지역을 선택하였고, 이들 지역의 중심 도시들을 선교의 센타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전도함으로서 그 주변의 복음화는 새로 설립된 교회에 일임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즉 바울이 골로새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지게 되었다. 케인(J. H. Kane)은 바울의 이러한 선교 방법을 통한 효과를 '산술 급수적인 것'이 아니라 '기하 급수적인 것이었다'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울의 제1,2,3차 전도 여정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제1차 전도 여행은 주로 갈라디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선교한 여행으로서 비시디아 인디옥이 중심이 되었다. 이고니온, 루스더라, 더베를 여행한 후 다시 안디옥(비시디아의)으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와 고난'에 대하여 교훈한 후(행14:22) 밤빌리아의 버가를 거쳐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된다.
제2차 전도 여행은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를 시작으로 한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역이 중심이 된다. 드로아의 환상(행15:36-16:10) 이후 마게도냐 지방에 속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아가야로 나아가 아덴과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를 집중적으로 복음으로 공략하게 되는 것이다
. 물론 제3차 전도 여행시 바울은 또 다시 이 지역을 순방함으로서 그의 선교 전략적인 관심이 어떠 하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3차 전도 여행의 중심은 아시아에 있다. 마게도냐 환상 이후 유럽으로 향한 그는 제3차 전도 여행을 시작으로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에베소를 택하게 된다. 유럽 지역을 순방한 후 귀향 하는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교훈하는 모습은 에베소에 대한 그의 관심을 충분히 대변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였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내가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현대인의 성경, 행20:31-32上).
(2) 동역자들과의 협력(팀선교 전략)
바울의 사역에는 반드시 그와 협력하는 선교의 동역자들이 있었다. 브루스(F. F. Bruce)의 표현처럼 '자석의 주변에 쇠붙이가 달라붙듯이' 바울 주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사람들을 사귀며 동역자들을 좋아한 것은 단순히 친구를 사귀고자 하는 욕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혜로운 건축자'(고전 3:10)로서 그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바울의 전략은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선교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활동을 살펴보면 철저한 팀 사역을 통한 협력 선교임을 알 수 있다. 안디옥에서 1년동안의 교육 사역은 바나바와 함께 협력한 활동이었고, 1차 선교 여행은 바나바, 마가와 동역하였고, 2차 선교 여행 이후 그는 다른 동역자 실라와 함께 하였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누가는 드로아에서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자들로 합류되었으며, 특히 고린도에서 만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행18:2) 부부는 그와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며, 장막 만드는 일을 하게 됨(행18:1-3)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기도 하였다. 고린도교회에서 바로 이 일로 인하여 바울에게 대적자들이 생기게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3차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에서 아시아까지 함께 한 자들의 이름이 사도행전 20장 4절에 소개되고 있는 데 그들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 등이다. 밀레도에 초청받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 역시 에베소교회를 위한 바울의 중요한 동역자들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서신서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이름들이 있는 데, 에바브라, 데마, 에바브로디도, 아깁보, 아볼로, 디도, 뵈뵈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며, 로마서 16장에는 무려 27명이나 되는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보다 더 많은 동역자들의 이름 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어서 친구를 맺는 일에서 바울의 탁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브루스는 지적한다.
바울과 관련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 신약성경에 약 70명 정도 나온다. 물론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친구들까지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바울은 또한 비그리스도인과 우정을 맺는 데도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에베소의 아시아 관원들(행19:31)이나 백부장 율리오(행27:3, 43)같은 사람들이 그 좋은 예이다. 바울은 별로 볼품은 없었을지 몰라도 따뜻하고 개방적이며 친근한 성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의와 사랑을 베풀었다.
여하튼 바울은 단체 행동을 확고히 믿는 자로서 그의 기질로나 교육으로나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전략가였다. 그래서 스테반 닐(Stephen Neill)도 바울에 대하여 '그는 동역자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을 훈련시켰으며, 그리고 그들을 교회 건축을 위한 일꾼으로 내 어 보내기도 하였다(골로새의 에바브라등)'고 소개하였으며 케인 도 바울을 가리켜 '사령관의 자격을 가지고 작전을 총괄적으로 지 휘한 자'로 표현하면서 "바울은 외로운 전도자가 아니라 다수의 선 교사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었으며, 선교 사역이 진행됨에 따라 동역자들의 수는 날로 증가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바울은 항상 그의 동역자들 특히 현지에서 만난 동역자들을 통하여 그의 선교 사역을 계속 진행하여 나갔으며, 심지어 옥중에서 만난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까지도 '사랑받는 형제로'(몬1:16)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되었음을 바울 자신의 친필로(몬1:19) 그 주인된 빌레몬에게 간절히 증거하고 있다.
(3) 다양한 선교 방법의 적용
이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All things to all men) 적용되는 바울의 선교 전략에 대하여 고찰하였거니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 선교의 중요한 특징을 '방법에 있어서의 다양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어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먼저 바울은 때와 장소에 따라 잘 적용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수주간만 머물렀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2-3년을 머물게 됨으로 시간에 구애되지 아니 하고 형편에 따라 적응하였다. 특히 에베소에서는 3년동안이나 체류하였으며(행 20:31), 고린도에서는 1년 6개월을 유하였다(행18:11). 뿐만 아니라 그는 장소에도 구애되지 아니 하였다. 물론 그가 회당을 중심으로 한 전도에 힘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옥내외를 가리지 아니 하였다. 루스드라에서(행14:8-10), 빌립보 강가에서(행16:13), 빌립보 감옥에서(행16:30), 아테네의 시장에서(행17:17), 심지어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어 가는 가운데 멜리데 섬에서까지도(행 28:4-6) 기회를 놓치지 아니 하고 전도하였다. 바울의 전도 방법은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였으나 개인 전도에 대해서도 등한히 하지 않았다. 루디아(행16:15), 야손(행17:5), 디도 유스도와 그리스보(행18:7-8), 빌립(행21:18) 등은 가정 단위의 전도였으며, 자신이 다메섹에서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경험하고 개종하였던 것처럼 그도 배가 파선 당하였을 때 멜리데 섬의 대표자인 보블리오에게 전도함으로(행28:7), 그를 통한 섬 주민들의 개종을 기대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외침은 분명히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외침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바울의 선교 전략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문서 선교 전략이다. 필요에 따라 '서신'이라는 방법을 이용함으로서 효과적인 교육 전도를 시도하기도 하였는 데, 그는 이 방법으로 뿌려진 복음이 잘 성장하도록 격려하였으며 개개인의 신앙 훈련도 도모하였다.
그래서 이광순은 바울의 신학은 선교적 노력과 관심의 결과이며, 그의 서신서 13권은 각기 그런 선교적인 노력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바울의 대표적인 교리서신으로 간주되는 로마서조차도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선교적 관심의 결과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바울에게 있어서 교육 전도는 개종자 교육에 힘을 썼는 데 체계적으로 교육한 대표적 케이스가 '두란노 서원'이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한 후에 특별히 12명의 제자들을 교육시키게 되었는데(행19:5-7), 바울은 이들을 따로 세워 두 해 동안을 두란노서원에서 강론하며(행19:9-10) 교육하였다. 결국 바울은 그들을 새로운 교회의 지도자로 세웠을 것이다.
(4)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을 구사하였음이 서신서와 사도행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때때로 모순적인 사람으로 묘사될 정도로까지 지역 상황과 필요에 따라 행동하였으며, 심지어 '극단적인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위 환경에 순응하고 경험을 통하여 배우는 데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의 내용에 관한한 일체의 양보가 없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받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6:8). 아무리 시대적인 상황이 바뀌어 간다 할지라도 복음은 변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행4:12)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기'(요14:6)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에 대하여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다. 곧 예수님의 선교 명령에 대하여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걸식 전도자들이 곧 그들이다. 고린도전서 9장에 의하면 그들은 고린도교회내에서 바울을 반대하며, 그의 사도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로 나타나 있다. 다음은 이 대적자들에 대하여 박수암의 지적이다.
이들은 그 공동체 내부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 자들로서 외부에 있는 자들로 볼 경우 그들은 유대 그리스도교회로부터 온 걸식 전도자들일 수 있고, 그들을 내부에 있는 자들로 볼 경우 그들은 이 걸식전도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고린도교인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한집 한집을 걸어 다니며 마을과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온 걸식 전도자들로서 예수님의 몸소 세우신 원리를 인정하고 있었으며, 또 문자적으로 이를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 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10:9-11, 참조; 막6:8-9, 눅9:3-5)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우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이르신 말씀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처럼 "그의 생계를 염려치 않으며 '위엄있는' 걸식 행위로 생계를 유지해 가는" 이들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9장과 고린도후서 10장-13장은 이러한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입장인 것이다. 바울이 생활비에 대한 수납을 거부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거절함으로서 견유학자적 생활로 살아가는 방랑전도자들과는 달리 친히 노동을 하였으므로 바울은 생계의 염려에 매달려 있는 자이며, 따라서 그는 사도도 아니라는 예상 밖의 비난이 바울에게 쏟아진 것이다.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사도의 규범을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노동을 하였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며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더라(행18:3).
본도 출신의 유대인 아굴라는 그 아내 부리스길라와 함께 글라우디오에 의해 모든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 한 연고로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에 새로 온 부부였다. 그런데 이들의 업이 바울과 같았다. 가죽 또는 염소털로 짠 천으로 휴대용 천막을 만들면서 이들 부부와 함께 살게 된 바울에 대하여 누가는 '일을 하니'(????????)라고 표현하였다. 바울은 어느 곳에서든지 그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였던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있는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 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2:9)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3:8)
바울이 그의 생계를 위하여 그리고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 하려고 밤낮으로 일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고린도후서 11:9이나 12:13, 빌4:18 등을 살펴보면 그가 전혀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던 것도 아니며, 그것이 그들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헌납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 미루어 짐작컨대 바울은 생활비 거절 자체를 원칙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고 다만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처신함으로서, '새로운 지역에서 개척 전도가 가능한 한 효과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정책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비록 문자적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치 아니 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효과적인 선교를 위하여 융통성 있는 선교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적자들에게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함'(고전 9:12)이었음을 주장하면서 경직된 문자적 순종보다는 오히려 상황이 요구하는 데 따라 융통성 있게 처신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같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었다고 밝힌다(고전 9:19-22).
바울의 이러한 융통성 있는 전략과 방법은 앞서 고찰한 다양한 선교 방법과 일치하며 특히 제2차 선교 여행시 루스드라를 방문하였을 때에 디모데에게 행한 할례(행16:3)등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이 헬라인인 줄 다 앎이더라 (행16:3)
바울은 순수한 헬라인인 디도에게 있어서는 완고하게 할례받음을 반대하였다(갈2:3-5).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함에 대한 원칙의 존폐가 디도의 할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모데가 할례를 받는 것은 디모데는 헬라인이자 자유인이었으며이방인의 자유에 기여할 수 있는 아무런 유익이 없이 유대인에게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을 인하여"(??? ???? ?????????)라는 상황의 편의를 위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만약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디모데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설교하도록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구원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인 사역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바울은 융통성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5) 전도 전략의 최종 목적 -교회 설립
바울의 선교 전략의 최종 목적은 교회 설립이다. 그는 그의 설교에 반응이 약한 곳보다 반응이 좋은 곳에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제한된 시간과 인력, 자원으로서 반응이 빠른 곳에 집중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원리이다.
예수님도 산상보훈을 통하여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을까 하노라(마7:6)"고 하셨다. 박수암은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귀한 복음 진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반대하는, 복음 진리를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자들에겐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주석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아무데나 파송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음'(요4:35)을 말씀하셨고, 추수할 일꾼을 찾으신 것이다(마9:37-38). 그래서 바울도 가능한 한 추수가 가능한 곳에 집중적으로 선교하였고, 잘 익은 추수 밭인 회당이나, 일꾼들의 활동이 기대되는 도시 중심으로 선교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특별한 방해가 없는 한, 교회가 설립될 때까지 한 곳에 머물렀고, 박해가 따르고 복음 증거가 어려운 곳에서는 또 다른 추수 밭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래서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루스더라로, 또 루스더라에서 더베로 나아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설립된 교회는 새로운 선교 기지로서 또 다시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교에 의한 교회였다.' 교회는 선교적일 때에 교회답다. 즉 교회는 사적 목적을 따라 모인 집단이 아니라 공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회집된 공동체이다. 그 공적 사명이 선교이다. 그러므로 이상적 교회는 항상 선교적 교회(missionary church 또는 church in mission)로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사명이 선교이기 때문이다. 바로 바울의 선교 전략은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선교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렌(Roland Allen)도 바울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훈련받은 일꾼-디모데, 디도, 두기고, 그외 여러 동역자-들을 특별히 그들의 임무에 따라 교회에서 교회로 보내어지는 데 필요한 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교회 설립은 바울 선교 전략의 최종 목적인 동시에 세계 복음화를 위한 그의 중요한 선교 전략이기도 하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정책
예수님은 친히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선교사이다.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친히 두로와 시돈,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이방 선교를 행하셨으며(막7:24-31), 이방인들의 간청을 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막7:25-30) 마지막 날 이방인들이 참여할 천국 잔치까지 말씀하셨다(마8:11). 그러면 예수님에게도 선교 전략이 있었는가? 이 질문은 '바울에게 선교 전략이 있었느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에게 있어서 '정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하는 문제와 동일한 질문이다.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예수님의 행적을 통하여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과 비교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의 정책을 도출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1) 4개의 지역을 중심한 거점 선교
먼저 예수님의 선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가버나움을 중심한 갈릴리, 그리고 사마리아, 베뢰아 등의 4개 지역을 거점으로 이루어졌다. 예수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그는 제자들을 부르셨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던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고(마4:18, 막1:16-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으며(막1:19-20), 세관에 앉은 레위를 부르시고(눅5:27), 그 외의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열 두 제자를 세우셨다(마10:2-4, 막3:13-19, 눅6:12-16).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기도 하셨고, 그 곳에서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기도 하셨다(마4:23, 막1:21-28, 눅4:33-37). 그래서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에 두루 퍼지게 되고 갈릴리,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 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좇았으며(마4:25), 심지어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었다(눅6:1下). 그의 지상 생애의 절정은 예루살렘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공관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요2:13-3:36, 5:1-47, 12:2-8), 그 중 유대 전도에 대한 기사가 요한복음 3장 22절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서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박수암은 마가복음 6장 14절로 56절의 기사를 예수의 유대 지방의 사역으로, 그 후에 나타나는 막7:4-30을 이방 지역을 위한 사역으로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의 삶을 마감하고 승천함으로서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게 된다. 유대 전도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다.
동시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마리아와 베뢰아 지방 역시 중요한 복음 전도의 거점이 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는 중에 사마리아를 통과하게 되고(요4:3-4), 당시의 유대인들의 통념을 깨고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접근하여 천국의 비밀을 전해 주었고, 그 대화 이후에도 이틀이나 그 곳에 머무시며 일하셨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사마리아의 한 촌이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눅9:53-53). 예수께서는 다른 촌으로 들어 가셨다(눅9:56).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이런 일을 당하셨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다 배척을 당하자 곧 이방인에게 향한다고 선언 한 것처럼(행13:46)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다. 예수께서 고향을 방문하셔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는 기사가 나온다(마13:53-54, 막6:1-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척을 당하셨다. 그래서 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방향을 바꾸어서 베뢰아 지방으로 향하신 것이다. 베뢰아 지방으로 향하신 예수님은 여리고에 들어가시기까지(눅19:1) 70인의 제자를 파송 하시기도 하시고, 각종 비유와 교훈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기도, 욕심, 회개와 겸손, 물질적 문제, 제자로서의 삶, 재림과 구원, 복음 증거 등을 가르치심으로 그의 죽음을 대비케 하셨다.
결국 예수의 사역도 정리해 보면 주로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마리아와 베뢰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승천 시에 명령하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도 이러한 지역적인 개념이 나타나게 되는 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는 표현이 그것인 데(행1:8) 이는 곧 점진적인 복음 확장과 우주적인 개방을 의미한다.
2) 제자(동역자)들을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시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막3:13-15). 70인을 세우셔서 각 동 각 처로 둘씩 보내시며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눅10:9).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2)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을 격려하시며 자신의 일을 계속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의 지상 명령과 더불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약속은 계속적으로 부르신 인간들과 함께 동역하시기를 원하고 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상 생활을 통하여 이들을 부르신 후 훈련을 시키셨다. 그들을 통하여 그가 가장 중히 여기시는 사역을 실행토록 명령을 하셨다. 지금도 이 사역을 위하여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3) 융통성 있는 선교 정책
예수님은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하셨다. 각종 병을 고치시며(마8:1-4, 14-17, 9:2-8, 막1:29-34, 40-45, 눅4:38-41, 5:12-26),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다(마8:28-34, 막1:23-28, 눅4:33-37). 여러 방법으로 가르치기도 하시고(마4:13-17, 13:3-51), 때때로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기도 하셨다(요2:1-12, 눅5:4-9). 굶주린 무리를 먹이기도 하시며(마14:13-21, 15:32-38, 막6:34-44, 8:1-9, 눅15:-16:), 직접적으로 전도 훈련을 시키기도 하셨다(마10:5 이하, 눅101:20). 기도로 모범을 보이기도 하신(마26:36-46)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고난 당하신 후 다시 부활하셔서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도 하셨다(마28:19-20, 행1:8). 방법도 방법이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융통성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경직된 율법주의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시며,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막2:23-26, 3:1-6, 요5:18등).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하심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함이 목적(마5:17)이라고 하신 그는 구약에 구애됨이 없이 율법들을 재해석하셨다.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난 내용만 보더라도 구약에 나타난 각종 율법들을 지금까지의 문자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시거나 그 내용을 더 강화하시기도 하시는 데 살인 행위(마5:21-22), 간음(마5:27-28), 이혼(마5:31-32), 맹세(마5:33-37), 보복에 대한 비폭력, 무저항주의(마5:38-42), 원수를 위한 기도(마5:43-48)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5-6)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방 선교를 행하셨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방 지역에 대한 사역이 나온다(막7:24-8:10). 즉 예수님께서 두로 지경으로 나아가 아무도 모르게 한 집에 들어 가셨다. 그러나 이를 안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라는 애절한 간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두로 지경에서 나아 와 시돈으로, 데가볼리로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는 이방 지역을 위한 선교 여행을 행하셨다(막7:31). 특별히 박수암은 마가복음 8장 1절 이하에 나타난 '급식 보도'에 대한 기사를 마가복음 6장 34절에서 44절 사이의 5병2어의 급식 이적과 비교하면서 마가복음 8장에 나타나 마가의 이 급식 보도는 예수의 이방 지역에서의 선교 사역으로 주석하였다. 즉 8장 1절의 "그 즈음에"(en ekeinais tais hemerais)란 말은 앞 절과 연결시키면서도 정확한 지식이 없음을 나타냄으로 이 사건은 적어도 마가에 있어서는 데가볼리 이방 지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역(벳새다 광야, 눅9:10f)에서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고 다음에 이곳 이방 지역에서 "개들"(이방인)을 배불리는 것으로(7:27) 풀이하였다. 그래서 박수암은 7병 2어로 4천명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를 거둔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신학적 메시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선교 :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우주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민족, 어떤 인종, 어떤 계층에만 국한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은 빚진 자이다.
이는 곧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내용 자체의 문자적 실천이라기 보다는 그의 융통성 있는 선교 실천의 일례인 것이다.
4) 지상 생활의 최종 목적 - 교회 설립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한 지상 생활의 최종 선교 목적은 그의 몸된 교회를 설립하는 데 있었다. 처음부터(마4:23) 끝까지(행1:3)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교회 자체를 강조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복음서에 비록 교회라는 말이 강조되지 않았고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전혀 없지만 교회라는 개념은 예수의 선포와 계시의 범위 안에서 볼 때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그 믿음의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는 말씀은 그의 사역의 목적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승천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를 통하여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사역을 계속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와 함께 계시며(마28:20), 교회 안에 살아 계시고, 교회를 통하여 사역하신다(골1:23).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선교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공생애의 사역은 그가 보내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게 될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한 사역이었고, 대위임령은 세상 모든 나라들을 향하여 그의 몸된 교회가 수행하여야 할 최대의 임무가 무엇인지 지적해 주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친히 선교 전략을 구상하시고 선교를 정책적으로 수행하셨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공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나타난 몇 가지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선교 정책과 바울의 선교 전략이 일치됨을 볼 수 있다.
5. 지역별 선교 전략의 적용과 문제점
1) 적용면에서 살펴 본 지역별 선교 전략
기독교는 선교 초기부터 '국경 없는 선교 정책'으로 세계적이었다. 지역별 선교 전략이 바울의 선교 전략과 일치한다는 것은 성경적이라는 말인 동시에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가까이 한국 선교의 초기 역사 가운데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다음은 곽안련(C. Allen Clark)선교사의 '네비우스 방식에 대한 전반적 진술' 중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사역을 시작할 것인가?"하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첫째, 사역의 독창성과 자기 의존, 가변적 상황에 계획을 적용시키는 수완을 요한다.
둘째, 젊은 선교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먼저 언어를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라. 그리고 자기 선교회나 타선교회를 방문하여 간접 체험을 쌓도록 하라.
셋째, 각 선교사는 본토 그리스도인 가운데 개인적인 조사(helper)를 두어 항상 자기와 동역케 하고 또한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을 돕도록 하라.
넷째, 새로운 사역을 개시할 경우에는 지상 명령과 사도들의 본보기가 시사해 주듯이 무엇보다 먼저 두루 순회하도록 하라.
존 네비우스(John L. Nevius)는 중국 산둥, 북장로회 선교회소속의 선교사이다. 그는 중국 산둥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선교 방법은 가변적 상황을 전제로 한 한국 교회에는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되어졌다. 또 네비우스의 삼자 원리(三自 原理)인 자립·자치·자력 전도의 방법은 사실상 바울의 전도 전략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이같은 원리는 19세기 말부터 많은 지역에서 기본적인 선교 정책이 되어 왔다.
나라와 나라간의 선교는 아닐지라도 선교 거점 확보에 관한 기록도 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이 전략적 중심지에 교회를 세움으로서 시간이 흐르면 복음이 자연적으로 그 주위에 편만하게 됨을 깨달았던 것처럼 1891년 당시 감리교나 장로교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에도 서울을 근거로 그 바깥 지역에도 선교 활동을 펼 수 있도록 더 많은 선교사와 자금을 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가 있는가 하면 선교 본부에서도 또한 선교사들에게 "서울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라"고 격려한 편지들이 있었다.
전략적인 차원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한 사람의 선교사가 한 민족 혹은 한 국가를 선택하여 그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식적인 선교사로 입국하지 않았다고 하나 그래도 최초로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한 알렌(Horace N. Allen)은 본래 중국 의료선교사로 임명받아 1883년 10월 11일 부인 메신저와 함께 상해에 파송된 선교사였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부터 1884년 7월 28일 초대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는 목사가 된 뒤 그의 뜻을 인도 선교에 두고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는 데 그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도 민중에게 봉사할 목적으로 1년 동안 의학과 인도어를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선교사 중의 선교사로 기억되고 있는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야말로 대표적인 다국가 선교사이며, 말 그대로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아니하는 아프리카 지역선교사였다. 중국 선교를 꿈꾸던 그에게 아편전쟁은 선교지를 아프리카로 옮기게 하였고, 1840년 12월 8일 알고아만을 향하여 출발한 그는 1841년 7월 남아프리카 최북단 베추아나국 쿠루만에 도착하여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는 가운데 선교하였고, 1843년 6월에는 쿠루만 윗쪽 지방인 마보차에 선교 본부를 두고 선교하였다. 1856년 5월 케이프를 떠나 만 4년에 걸쳐 퀼리메인에 도착하기 까지 전 대륙을 횡단하였으며, 탐험과 노예 매매 반대 운동 등 그의 선교 행로는 전혀 '국경이 없는 선교' 그 자체였다.
다국적·다민족·다지역 선교의 배경은 바울의 선교 전략에 기초한다. 선교 본부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선교 센타가 있게 되고, 각 도시에는 선교 거점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 안의 각 지역이나 도시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또 다른 선교 거점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나 총회 세계선교부가 선교 본부가 되고, 동남아 지역, 동북아 지역, 서남아 지역, 북유럽 지역, 북미 지역, 중남미 지역, 남아프리카 지역, 북아프리카 지역 등으로 대별하여 선교 센타들이 건립될 수 있을 것이며 각 나라 안에 도시를 중심한 선교 거점들이 마련될 수 있는 방법이 채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울의 선교 전략이 단순한 조직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와 지역을 다 선교 지역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동시에 지역별 선교는 최소한의 팀 사역을 전제로 하는 선교 전략이다.
지금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은 지역연구원 제도를 두고 있다. 세계를 12개 지역으로 분류하고 그 지역을 담당하는 지역연구원을 위촉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는 전략일 것이다.
2. '지역별 선교 전략'의 문제점과 그 대책
'지역별 선교 전략' 역시 취약점이 없을 수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전략이 차선의 전략임을 밝힌 바 있다. 주목할 것은 사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고 초대 교회에도 당대의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그 당대의 문제들을 이해하였기 때문에 존속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별 선교 전략'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먼저 나타난 문제는 용어상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지역별 선교 전략'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바울 시대 때부터 적용되어 온 선교 전략이다. 그러므로 이 선교 방법은 오늘날의 선교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용한 선교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선교 전략'이 혹평을 받으며, 피선교국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선교 전략의 내용보다는 '다국적'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다국적 선교'의 정의와 개념에서 논의한 것처럼 이 용어가 경제적인 용어로서 '국제 경영학'에서 이미 사용되어지고 있고, 또 이 용어 자체가 2/3세계 국가로부터 많은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선교 단체들까지도 '다국적 기업'에 비유하면서 '복음의 해적들'이라는 혹평을 듣게 된 지경에 무턱대고 이 용어를 함부로 남용하게 될 경우 소위 '제국주의적 선교 전략'이라는 비평을 면키 어렵게 된다. 국제 선교나 다국적 선교 등의 용어는 물론 성경에 나오는 용어들이 아니다. 특히 우리 말 '다국적 선교'의 '다국적'이란 말은 '多國的'이라기 보다는 '多國籍'이라는 의미로 마치 선교사가 여러 나라의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 인상을 주게 됨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뜻으로 보면 오히려 영어의 'Transnational' 혹은 'Multinational'에 해당하는 '多國家'라는 말이 적합하다. 그래서 싱가폴의 손중철도 막16:20을 근거로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민족과 지역을 대상으로 두루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영어의 'Through(Thru) Asia' 라는 뜻을 살려서 '두루선교', '두루 아시아 선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다국적 선교 전략'이라는 말보다는 그 개념이나 내용을 쉽게 이해 할 수 있고, 거부감도 없는 '지역별 선교 전략'이라고 불렀다. '국경 없는 세계 선교'라 하여 기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무조건 전 세계를 누빌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 한 지역을 선정한 후 그 지역 안에 있는 특정 나라들을 중심으로하여 선교한 후 그 주변 지역을 선교케 하는 이 전략을 '지역별 선교 전략' (Regional Mission Strategies)이라고 표기하고, 선교사에 대한 호칭도 그 나라에서 일생 동안 선교를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선교사', '베트남 선교사', '인도네시아 선교사'등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선교사', '서남아시아 선교사'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나라 이름을 지칭할 수 없는 지역과 구 공산권 일부 국가에 파송되는 선교사들에게 그 지역을 지칭하는 '동북아 선교사', '중동 지역 선교사'등으로 불려진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선교 행정상의 문제점이다. '지역별 선교 전략'이 '다국적 선교'라는 용어를 연구하는 가운데 명명되어진 만큼 '다국적 기업'과 일부 유사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역 회사 형태의 선교 행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곧 그것이다.
다국적 기업 전략에서 … 지역 중심에서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영업권은 다른 회사로 넘어 간다. 최근 선교지의 선교 전략이 표방하는 교회론에서 이같은 유형의 기업 정신을 찾아 낸다. 교회는 분산을 위한 중심지이다. 만일 선교지의 교회가 선교 단체의 생산물을 능률적으로 유포시키지 못하면 이 일은 다른 데로 넘어 간다.… 선교 기관들은 국내 교회들보다 훨씬 많은 사례금을 지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 기관들은 능력 있고 신학 교육을 받은 젊고 자격 있는 사람들을 기용할 수 있다. 잘 교육받은 이들은 선교 단체가 표방하는 메세지와 방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지도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자국 교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지역 교회나 교단과도 연관이 없는 '복음적 지도력'을 구축하게 된다. 그들은 자국의 교회들과는 다른 인상을 풍기며, 교회와 연계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지의 유능한 일꾼들이 복음에 매여 있다기보다는 물질에 매여서 한 선교 단체가 다른 선교 단체보다 조금이라도 사례를 더 주게 되면 쉽게 그들의 사역지를 옮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교 단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 사실은 비단 '다국적 선교 단체' 혹은 '다국적 선교 전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사례들이므로 '지역별 선교 전략'에서도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들이다.
다음은 다국적 선교기관과 다국적 기업을 비교하면서 지적한 부정적인 면이다.
첫째, 다국적 선교 기관은 현지 교회를 무시하거나 약화시킨다.
둘째, 그들의 최우선적 관심은 복음 시장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셋째, 판매 전략(전도, 운영기법)은 복음의 위력을 반감하고 성육신의 정신과도 상치된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선교사 선발에 관한 문제이다. 이미 선교사가 파송되어져 선교 사역을 무리 없이 잘 수행되고 있는 나라나 비자 발급도 대체로 용이한 나라들에게까지 이 전략을 구태여 적용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우리 선교사들이 나아가 사역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가 2/3세계에 속한 나라들이고 세계에서 가장 복음이 전해지지 않아 반드시 선교사가 나아가야 할 "10/ 40창" 지역 안에 거하는 나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의 정치 경제적 상황의 다양함은 물론 그들의 문화적 여건과 언어 역시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 민족, 한 국가를 상대하던 선교 전략과는 달리 다국가, 다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이 선교 전략은 선교 본부(총회 세계 선교부)의 역할과 정책 개발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선교지 배분과 선교사 선발에 대하여 더 큰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 개인에게 있어서도 한 나라의 언어도 습득하기 힘든 지금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여야 하고 다문화에 대한 연구가 따라야 하며, 다양한 선교 방법이 연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동시에 팀 사역을 위한 선교사들 간의 협력 관계가 특별히 좋아야 한다. 항상 한 장소에서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동성이 있어야 하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바울의 선교 전략을 바르게 적용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다. 바울의 선교 전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래도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성령에 의지한 '성령의 선교'라는 점이다. 성령에 의해 세움을 받아 파송을 받았으며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으며 수시로 그 방향도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조종되어졌다. 성령은 선교사를 선발하시는 분이시며, 수행자요 관리자이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선교의 일꾼이 되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선교적 영성을 가져야 한다. 바울의 선교 전략적인 입장에서 볼 때 '지역별 선교 전략'의 성공 여부는 선교사 개인의 어떤 자격이나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그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영성적 자질이 있느냐 하는 데 달려 있으며, 선교 본부의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곳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잘 발휘하여 현지인 교회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좋은 제자를 양육해 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선교사를 잘 선발할 수 있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지구촌 시대가 몰고 온 세계화 시대의 개막은 세계가 더욱 가까와지고 경제적인 국경이 제거됨에 따라 선교 역시 '국경 없는 선교 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듯하였으나 오히려 민족주의는 더욱 팽배해지고, 종교간의 갈등이 증대되면서 노골적인 선교사 거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다국적 선교 전략은 이와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된 선교 전략으로서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선교 전략이다.
지역별 선교 전략은 성경적인 선교 방법으로서 효율성, 융통성, 적합성등을 지닌 바울의 선교와 일치하는 전략이다. 대륙과 대륙을 횡단하며, 국경에 전혀 구애되지 아니하고 세계 복음화의 일념으로 초국가적인 보편적·우주적 선교 전략을 실천한 바울이야말로 분명히 국경을 초월한 초국적 지역 선교사였다.
'지역별 선교 전략'(Regional Mission Strategies)은 '국경 없는 세계 선교'(the borderless World Mission)로 바울의 선교 전략과도 일치하며, 예수님의 선교 정책과도 일치하는 성격적인 선교 전략이다. 이 선교 전략은 무엇보다 성령에 의존하는 성령의 선교로서 국가, 민족, 문화를 초월한 성육신적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서정운이 지적한 것처럼 선교 정책 입안자들이나 선교사들은 '실제적인 선교 사역 가운데서 보편적으로 범하기 쉬운 몇 가지의 과오'에 대하여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즉, ①인간 중심의 사고와 선교 사역, ②신학 중심의 선교 사역 ③[경직된 조직으로서의] 교회 중심의 선교 사역, ④방법 위주의 선교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선교 전략이 과연 있었느냐?'라는 질문은 바로 이러한 지적과 같은 맥락에서 제시된 문제이다. 사도 바울의 선교가 결코 선교 전략에만 의존한 선교는 아니었다. 바울의 선교 전략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이 있었고, 또 바울이 성공적인 선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선교 전략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이거나 인간적인 계획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성령의 선교여야 한다.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난과 고통과 심지어 좌절이 따르기도 하는 사역이다. 그러나 성령은 때때로 고난을 받음으로 오히려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바울은 철저하게 성령의 지시에 따르며,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였다. 국가와 민족,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는 다국가,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선교의 결정적인 힘과 동력은 성령에 의존하는 성령의 선교이다.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 하심만이 '세계 복음화' 내지 '복음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선교 전략'은 성경적 선교 전략이며 역동적인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는 성령의 선교 전략이다.
[출처] 지역별(다국적) 선교 전략의 성경적 검증 |작성자 성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