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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무 / 갈망

작성자pilgrim22|작성시간26.06.17|조회수22 목록 댓글 0

갈망의 저자 손성무 목사님의 책을 추천하며

목사님이 쓰신 칼럼을 공유합니다.

 

 

모든 감사는 존재됨에 대한 감사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흔히 감사라고 하면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건강할 때, 형편이 좋아졌을 때 감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감사의 기준을 훨씬 더 깊은 곳에 두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상황 속에서(in all circumstances)라는 뜻이다. 환경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넘어 감사하는 삶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가? 인생에는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억울한 일도 있고, 실패도 있고, 상처와 배신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성경은 그 답을 단순한 긍정적 사고나 감정 조절에서 찾지 않는다. 성경은 감사의 가장 깊은 뿌리를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에서 찾는다.

 

감사의 가장 깊은 자리

하박국 선지자는 현실적으로 보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당시 농경 사회에서 이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의 위기였다. 그런데도 하박국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겠다고 고백한다. 왜인가? 그의 감사는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진짜 감사는 조건에서 나오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감사의 더 근원적인 차원을 보여 준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친히 지으셨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는 과정에는 인간의 죄와 실수가 개입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혼전 임신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 속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폭력과 아픔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허락과 계획 없이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

생명의 탄생 자체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수억 개의 정자 가운데 단 하나가 난자를 만나 지금의 내가 된다. 만일 다른 정자가 난자를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도, 기질도, 성격도, 지능도 전혀 다른 누군가가 태어났을 것이다.

그 엄청난 확률 속에서 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받아들이는 믿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외모를 미워하고, 자신의 기질을 부정하고,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원망한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못할까?”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로 우리를 만드시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를 지으셨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통해 각 지파의 기업을 정하게 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땅을 받았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하나님께서 내게 나누어 주신 삶의 자리, 나의 조건, 나의 기질, 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감사의 시작이다.

 

관점이 인생을 결정한다

자신의 존재를 감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삶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어떤 사람은 “콜라가 반밖에 없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한다. 문제는 상황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가나안 정탐꾼 사건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열두 정탐꾼은 동일한 땅을 보았다.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와야 할 정도로 풍성한 땅이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을 악평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민 13:32)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들이 본 거인들을 더 크게 보았다. 같은 현실을 보았지만 해석이 달랐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도 결국 환경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요셉이 배운 하나님의 시각

요셉의 인생은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 성실하게 보디발을 섬겼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하는 눈을 배우게 되었다.

훗날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선언한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

이것은 단순한 감정 조절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믿음이었다. 요셉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고난 속에서 배우는 감사

예레미야애가에서도 같은 원리가 나타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과 재난을 기억하며 낙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1-22)

 

그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애 3:27-28)

인생의 무거운 시간들조차 하나님의 허락과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삶을 원망만 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우게 된다.

 

십자가를 앞두고 드린 감사

감사의 완전한 본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다. 그리고 떡과 잔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

그런데 그 감사의 자리 뒤에는 배신과 고난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곧 체포되실 것을 아셨고, 조롱과 채찍과 죽음을 아셨다. 그럼에도 감사하셨다.

 

유월절 만찬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유월절 밤, 니산월의 보름달이 밝게 비추는 밤이었다. 성전에서는 어린양들의 피가 흘러 수로를 따라 기드론 시내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어린양의 길을 걸어가셨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면서도 감사하셨다.

 

왜 예수님은 감사하실 수 있었는가? 아버지의 뜻과 섭리를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 너머에 있는 구원을 보셨기 때문이다.

감사는 단순히 좋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모든 감사의 뿌리

결국 감사는 이렇게 깊어져 간다.

먼저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가 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마침내 범사에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감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믿음의 문제다.

내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음을 믿는 사람,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결국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시 우리에게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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