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이루시는 예수님/막 14:43-52
성경을 이루시는 예수님
[본문] 막 14:43-52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나서 무리들에게 잡히시는 장면입니다.
43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라고 말합니다. 한밤중에 유다가 왔습니다. 보통 ‘가룟 유다’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가룟인 유다’, ‘가룟 사람 유다’입니다. ‘가룟’은 유다 남부 지역에 있는 성읍으로 생각됩니다. 에돔과 가까운 지역입니다. 이 유다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옛 전승에 의하면 가룟 유다가 예루살렘에 와서 가게를 차려 장사를 하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마귀가 들어갔다고 합니다(요 13:27). 그래서 그는 그의 스승을 은 30개에 팔아넘겼습니다. 양심이 화인맞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을 때에도 보면 뻔뻔스럽게 예수님께 나아와 입맞춤으로 배반하였습니다. 45절에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라고 합니다. ‘랍비’는 원래 ‘나의 큰 자’란 뜻인데 스승, 선생을 가리켜 부르는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입을 맞추었습니다.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마귀가 들어가서 양심이 화인 맞으면 이런 가증스러운 일도 뻔뻔스럽게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룟 유다는 참 불쌍합니다. 그는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제게 좋을 뻔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마 26:24).
다른 한편 베드로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45절에 보면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귀를 떨어뜨렸다.”고 하는데, 곁에 서 있던 이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는 했지만, 의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마저도 나중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하였습니까? 48-49절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는 그 순간에도 성경을 생각하셨습니다.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또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순순히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성경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다. 비록 대적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갖 궤계를 꾸미고 애를 썼지만, 성경 말씀이 허락하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르치실 것을 다 가르쳐야 했었고, 하셔야 할 일을 다 하셔야 했었고, 그 일이 다 이루어지기까지는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예수님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잡혀 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성경을 이루기 위해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행하십니까? 자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소위 비전을 이루기 위해 행하십니까? 소위 만 명 교회, 대형교회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보다도 “소위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렇게 설교하더라”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집어던져버리고 그런 설교를 흉내 내려 하십니까?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더라”고 하면, 성경을 덮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성경을 이루기보다도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성경은 덮어버리고 인터넷을 뒤져서 우스갯소리들을 찾고 솔깃한 이야기들을 찾는 것을 설교 준비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 말씀을 모르고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전도사, 강도사, 목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우스갯소리 잘하는 사람은 TV만 켜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보다 훨씬 더 잘 합니다. 세상 이야기 잘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왔더니 목사가, 강도사나 전도사가 성경은 안 가르치고 세상 이야기, 인간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오겠습니까? 아니 그런 목사, 강도사, 전도사에게 무엇 때문에 사례를 주겠습니까?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례 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경을 생각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에도 세 번 다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은 각 동네를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가르치시고 풀어 주시고 또 친히 이루셨습니다.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그 극심한 고통과 갈증 가운데서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내뱉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극심한 갈증을 달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 성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도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다시금 성경을 풀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풀어줄 때에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영안이 열리게 된 것을 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성경을 풀어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설교 준비하라”고 하면 인터넷부터 켜서 재미있는 예화 없나 솔깃한 이야기가 어디 없나 하고 찾지 말고(그런 게 설교 준비가 아닙니다), 먼저 성경을 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설교할 본문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관련 구절들을 찾아보고, 그리고 원어성경을 펴서 단 한 절이라도 읽고 사전을 찾아보고, 그리고 나서 주석들 찾아보고,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설교를 준비하기 전에 기도하고, 준비하는 동안에도 기도하고, 준비한 후에도 기도하십시오. 어떻게 이 말씀을 잘 전하고 오늘날 성도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설교 준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이단들은 성경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비록 잘못된 엉터리 해석이지만 이단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그들의 교주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자이지만 신구약 성경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만든 성경공부 교재는 전부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이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을 가지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비록 잘못 해석하지만). 그러나 기성교회, 전통교회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우스갯소리나 만담, 그저 경건한 이야기, 성공철학, 긍정적인 마음 등만을 말하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하여, 성경을 배우고 싶어서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인들을 이단으로 내모는 공범들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바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목사들과 강도사들과 전도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역자에게는 사례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쫓아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신학교에 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그저 지식을 얻기 위해 왔습니까?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학을 공부합니까? 한낱 직장을 위해 공부합니까?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역자는 교회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교역자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잘 알아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에도 성경을 이루는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이루기 위해 순순히 잡혀가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도 이러한 예수님을 본받아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하고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큰 영광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