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11|조회수53 목록 댓글 0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누가복음 16:1-13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비유는 주님께서 귀한 진리를 제자들에게 더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의 내용은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단 및 자기 사람들을 만들려는 거짓 선생들은 비유를 꼬아서 자기 해석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만 깨달은 것처럼 ‘깨달음을 통한 구원’을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소위 “비유 해석”이라는 것을 통해 비진리를 진리처럼 속이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악한 무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늘 비유풀이 하는 자들을 경계하기 바랍니다.

 

주께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오늘 내용도 천국과 관련한 귀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본문에서 비유를 말씀하신 주께서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비유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몇가지 확인할 내용이 있습니다.

 

2절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는 뜻은 그 동안의 회계 장부를 정산한 후에 주인이 맡겼던 소유를 다 돌려달라는 뜻입니다. 이는 청지기직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청지기는 직장을 잃은 셈입니다.

 

4절은 사람들이 그 청지기를 자기들의 ‘집으로’받아줄 것이라고 그 청지기가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보면 갚아야 할 것을 덜 갚게 해 준 이 청지기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청지기가 직업을 잃어도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그를 그들 집으로 받아들여 숙소 및 양식을 제공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8절은 원어에서 직접 볼 때,  “주인이 불의한 그 청지기가 (프로니모스)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칭찬하였다”고 번역됩니다. 여기서 프로니모스는 “지혜롭게”, “통찰력 있게”, “약삭 빠르게” 라는 뜻이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은 매우 약삭 빠른 행동입니다. 이에 주인은 그 청지기가 그의 직무에서 해임되기 전에 직업을 잃은 후에도 버젓이 살기 위해 아직 청지기 직무를 할 수 있을 때 대책을 마련하였으니 ‘그 놈, 참 영리하구나. 매우 약삭 빠른 놈이구나’라고 혀를 둘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방금 말씀하신 비유에 대해 설명을 하십니다.

첫째 설명은, 8 후반입니다. 부분을 원어로 보면,  oi` ui`oi. tou/ aivw/noj tou,tou”(호이 휘오이 아이오노스 투투)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 개정은 세대의 아들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아이온이라는 개념은 어떤 시작과 끝이 있는 특정 기간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아이오노스 투투라는 말씀을 하신 의미를 공관 복음에서 찾아보면 주님이 오신 때부터 주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대의 아들들은 결국 영원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불신자들을 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대의 아이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또한 개역 개정에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라는 표현의 원어는 th.n genea.n th.n e`autw/n”(테인 게네안 테인 헤아우톤)이라 하여 세대, 어떤 인생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보통 많게는 120년으로 치기도 하고 적게는 30 정도로 칩니다.

 

또한 8 후반에서 지혜롭다 원어 역시 앞부분에서 사용한 (프로니모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통찰력 있게”, “약삭 빠르게” 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를 대상으로 하며 표현한 것이고 문맥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한 지혜라기보다는 땅 위의 지혜로서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약 3:15)이므로 “약삭 빠르게”로 번역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즉, 8절은 이 세상의 아들들은 이 땅에서 사는 그들의 인생 동안 빛의 아들들보다 훨씬 약삭 빠르다는 뜻입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빛의 아들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처럼 약삭 빠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의미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논점은 불의한 청지기가 악하게 살다가 갑자기 직업을 잃게 된다는 사실 주인 앞에서 정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남은 짧은 기간 동안 약삭 빠르게 행동하여 직업을 잃은 후에도 그럭저럭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것입니다.

 

부분에 대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 궁리를 제대로 하는 점에 대해 , 못되고 악한 놈이 궁리는 제대로 하는군하고 그의 약삭 빠름에 혀를 내둘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삶의 방법 속에서 빛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배워야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빛의 아들들에게 교훈하기 위해 비유에 대한 해석을 시작하십니다. 먼저 예수께서 내리신 비유의 요점은 세상의 아들들은 그들 인생 동안 빛의 아들들보다 약삭 빠르다.” 것입니다.

 

이제 주께서는 첫번째 교훈을 선포하십니다.

불의한 맘몬으로 친구들을 만들라그리하면 (호난 에클리페이), , 그것이 끝날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스케이네이) 영접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스케이네이는 장막 또는 처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장막들이라고 하니 예수께서 땅의 처소들을 의미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의미합니다. 천국에서 주실 처소들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2-3)

 

이때 9절에서 중요한 것은 (호난 에클리페이)인데, 호난은 라는 뜻이고 에클리페이는 3인칭 단수 과거 동사로서 (떠나다, 죽다, 끝에 이르다) 뜻입니다.

 

지금 에클리페이의 개념은 주께서 하신 비유에서 청지기가 직무에서 잘리는 때를 말합니다. 재물을 주어로 한다면 9절의 직접적인 맥락에서 볼때는 개정 개역이 번역한 것처럼 불의한 맘몬이 없어질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하신 비유와 해석을 함께 연결한다면 (호난 에클리페이) 세상을 떠날 , 그래서 불의한 맘몬을 이상 사용할 없을 라는 뜻이 됩니다.

 

그때 불의한 맘몬으로 친구들을 만든 자들은 친구들이 그를 받아주어서 영원한 장막들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번째로 하신 진리의 교훈은 10절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신실한 자는 것에도 신실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것에도 불의하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로서 세상에 속한 소유들을 말합니다. 반면에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직접적인 맥락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은 불의한 맘몬이며 것은 신실한 친구들을 만든 또는 영원한 장막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뜻은 불의한 재물에 신실하지 못한 자는 영원한 것들에 신실할 없고, 불의한 재물에 신실한 자라야 영원한 것들에 신실하다는 진리입니다.

 

11절은 번째 교훈으로서 그러므로라고 시작하여 앞의 교훈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불의한 맘몬에 신실하지 않다면 누가 너희에게 (to. avlhqino.n )( 알레이씨논) 맡기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 알레이씨논)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원어로보면 실체, 참된 , 영원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 문맥과 함께 보면 , 영원한 , 실체, 참된 것을 맡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실 불의한 맘몬에 정직하지 못하거나 진실하지 못하거나 충성되지 못하거나 신실하지 못한 자에게는 영원한 , 참된 , 실체를 절대로 맡기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번째 진리입니다.

 

넷째 진리는 12절로서 만일 너희가 남의 것에 신실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는 남의 것에 신실하지 아니한 자는 자기 소유를 갖지 못하게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남의 것은 비유에서는 주인의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께서 맡기신 세상의 것들에 신실하지 않을 , 주께서는 그에게 영원한 것들을 주지 않으실 것이기에 그의 영원한 소유는 없게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내리신 마지막 진리이며 결론은 13절로서 하인이 주인을 섬길 없나니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없느니라 합니다.

 

중히 여긴다는 원어 (안테코) 굳게 잡다. 달라붙다. 헌신하다. 뜻입니다.

반면 경히 여긴다는 원어 (카타프로네오) 멸시하다. 우습게 알다. 무시하다. 가볍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 사람은 하나님과 맘몬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아니면 맘몬입니다. 우리는 인생 가운데 우리의 절대적이 주인으로서 하나님 또는 맘몬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이유는 겸하여 사랑하거나 겸하여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거짓이며 또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께서 하신 비유 주님의 해석 빛의 아들들을 위한 진리의 교훈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비유 속의 청지기는 불의한 사람입니다. ,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은 비유속의 주인이 보기에, 그리고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불의한 소행입니다. 하지만 비유 속의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가 미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약삭 빠른 점에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청지기가 옳다고 칭찬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한 상태에서 그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약삭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 속의 주인과 이 비유를 하신 예수님은 청지기의 불의를 칭찬하거나 권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부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비유를 읽다가 마치 예수께서 불의를 칭찬하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하신 배경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을 꾸짖으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돈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하시기 위함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세상의 돈을 뜻합니다. 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자리를 다투는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주께서는 돈을 불의한 맘몬이라고 부르십니다.

 

주 예수님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도로 쓰이지 않는 모든 돈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그 용도에서 벗어난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께 그 만큼 불의한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돈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자리까지 와 있는 특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용도 외에 사용되는 모든 돈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정하신 용도가 헌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사거나 신앙 서적을 사는 등, 기독교의 종교성을 띈 것에 돈을 사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들과 밖에 나가 식사를 하는 것도 그 동기가 하나님 안에서의 화목과 사랑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헌금을 드린다고 하면서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용도 외로 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성경은 고르반을 말합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7:10-13).

이와 같이 고르반처럼 가난한 부모 또는 힘없는 형제를 돌보지 않으면서 헌금이라는 구실로 오히려 하나님의 용도에서 벗어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들의 돈에 대한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비유 및 설명은 관계와 돈에 있어서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고, 특히 영원한 친구 관계를 위해 불의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빛의 아들들의 특징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영원한 장막들, 영원한 친구 관계, 영원한 실체, 영원한 천국, 하나님, 복음, 성령, 영원한 성도들과의 관계와 이 세상에 잠깐 있다 사라지는 지극히 작은 것, 곧 맘몬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만일 맘몬을 붙들기 위해 친구 관계를 버리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며, 맘몬을 붙들기 위해 큰 것들을 놓치는 자는, 지극히 작은 것을 붙들기 위해 큰 것을 놓치는 지극히 미련한 자입니다.

 

특히 불의한 맘몬을 붙들며 귀중히 여기며 맘몬 때문에 불의를 행하며 나아가 맘몬을 섬긴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히 여기며 하나님을 업신 여기며 영원한 것을 업신 여기며 저버리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 하나님께서 절대로 영원한 큰 것을 맡기거나 주지 않으십니다.

 

어느날 불의한 맘몬은 다 사라질 것이고, 사람은 정산의 날, 곧 심판의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사랑한 자는 결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코 영원한 자기의 것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는 완전한 거지가 되어 영원토록 어둔 암흑 가운데 유리하며 떠돌게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할 기회가 있는데 돈이 아까와서 계속 선을 행할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우상은 돈입니다. 돈 때문에 양심을 속인다면 이것도 돈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안전을 위하여 돈을 계속 쌓아 두기만 하는 경우도 돈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돈이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도 미래 때문에 돈 걱정을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는 증거입니다. 돈에 자존심 및 자신의 가치를 두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으면 힘이 생기고, 돈이 없으면 힘을 잃는 경우도 돈이 그 사람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돈을 자랑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는 주님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쌓아놓고 그것으로 든든해하고 기뻐하고 교만해진다면 이는 돈을 주인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물 때문에 주님을 붙들지 못한 부자 청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 19:22-24)

 

돈을 벌기 위해 주님과의 교제 시간을 놓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에 현재의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는 자들 또한 돈을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가정을 파괴하고 돈 때문에 교회 생활을 포기하고, 돈 때문에 의리, 진실, 사랑 등, 참으로 귀한 것들을 잃는 현상은 바로 돈이 그 사람에게 불의한 재물, 즉 우상이 되어 버린 증거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어느새 돈이 하나님 자리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선포에 늘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8-10).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에 불의한 맘몬에만 기운 부자들을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 12:18-24)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내게 있는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주의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돈을 선으로 또는 악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돈은 큰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한 곳에 사용되면 무서운 악이 됩니다. 그 반대로 돈을 선한 곳에 사용하면 선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돈을 지출할 때마다 그 돈이 하나님 나라를 돕는지 아니면 마귀의 나라를 돕는지 살펴야 합니다. 쾌락과 죄악을 위해 쓰이는 돈은 마귀를 돕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돈을 사용하되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또한 영원한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주의 뜻에 순종하여 사용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돈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비유를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주께서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에 대해 판단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돈으로 사람 중에 높임을 받으려는 그러한 자세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돈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세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를 버느냐로 사람의 가치를 둡니다. 돈이 많은 사람을 훌륭하게 여기고 칭찬하고 아첨합니다. 나아가 돈 많은 자를 존경하고 따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바리새인처럼 돈으로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 깊은 마음 속에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무시 받지 않고 존경 받고 살려면 먼저 돈을 벌자라는 논리가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로 사는 사람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께서는 영원한 것을 아무 것도 맡기거나 주지 않으십니다.

 

더 무서운 것은 바리새인은 종교와 돈의 결탁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 종교는 부는 하나님이 그의 신앙과 삶을 인정한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 부와 신앙은 비례한다는 종교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욥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지닌 자들은 오늘 불의한 청지기처럼 약삭 빠른 자들일 뿐이며 빛의 자녀들과는 무관한 자들입니다.

 

나아가 바리새인 교회는 부자들을 교회 지도자로 세웁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맘몬을 하나님 위에 두는 신앙으로서 거짓 신앙이며 위험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신앙은 복음적인 신앙과는 정반대에 있는 신앙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시키는 마귀적인 신앙입니다. , 기복 신앙은 부를 위하여 신앙을 취한 것이며 사람 중에 높임을 받기 위해 신앙이라는 악세서리를 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신앙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기복 신앙은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현명하게 그 기회를 사용하라고 당부하십니다. , 주께서 내리시는 결론은 지혜로운 사람, 믿음있는 사람은 멀리 보는 사람으로 내세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땅의 재물에 정직하고 그 재물을 지혜롭게 관리하며 사용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참된 부요에 비교할 때 돈으로 인한 부요는 잠깐이요, 안개와 같음을 증거하십니다. 돈은 주께서 주시는 영생과 하늘의 은사와 하나님의 공의, 정의, 진실, 사랑,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돈의 사용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온전하게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하늘의 은사와 함께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능력을 쏟아 부으십니다. 물론 주께서는 빛의 자녀들을 경제적으로도 곤란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청지기는 어느날 그 동안 저질러 왔던 방탕한 삶을 살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갑자기 자기 인생을 정산하게 됩니다. 이제 곧 그는 청지기 직분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제 멋대로 내 인생을 살다가 어느날 죽음을 의식하며 주 앞에서 삶을 정산하게 될 것입니다.

.

그때 우리는 나의 원래 소유는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며, 자신은 단지 맡겨진 재물을 관리할 특권과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빨리 깨닫는 자가 지혜롭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이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습니다.

 

매우 간단한 진리이지만 우리는 이 진리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까지 포함하여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인생은 잠시 들렀다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인을 업신 여기고 불의한 세상 재물을 위해 산 자들은 영원한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의 모든 삶과 소유와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보고해야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비유 속의 청지기는 새로운 시작을 하였습니다. 특히 그 청지기는 물질에 얽매인 삶에서 이제 그 물질을 사용하여 친구 관계를 만들어가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위기가 찾아오면 물질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는 자를 보호하고 축복하심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주의 복음과 나라를 위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유 속의 청지기는 지금까지 주인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갑자기 자신의 삶을 심판하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을 회계할 날이 옵니다.

우리가 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주인의 심판을 진정으로 심각하게 의식할 때 청지기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주의 심판에 대해 알려줍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0-15).

 

재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재물을 바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바르게 사용하는 자에게 사랑과 기쁨이 넘치며 영혼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는 참 친구를 얻습니다. 우리는 물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친구를 얻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선한 사업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에 이런 친구들이 우리의 영원한 상급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주의 재림과 함께 새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영원히 보게 될 그 나라에서 과연 몇 명의 반가운 친구가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혼자 온 사람, 수십, 수백명의 친구들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저 분이 그때 도와주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이렇게 천국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저 분이 사준 책을 읽고 믿음이 깊어져서 더욱 주를 앙망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저 분의 집에 방문하여 며칠 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되어 저도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주 예수께서 강조하며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6:9). 이것이 바로 썩을 재물로 영원한 영광을 얻는 최고의 비밀입니다.

 

오늘 주께서 가르치시는 교훈은 이 세상의 썩을 재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뜻입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복음을 위해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불의한 썩은 지극히 작은 맘몬으로 영원한 친구들을 만들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물질과 인생과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재림과 함께 새하늘과 새땅이 임할 때 참으로 귀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로운 삶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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