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11|조회수27 목록 댓글 0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배경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 시간입니다. 잠시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제자들과는 이별 직전인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별 직전이나 죽음 직전에는 가장 중요한 말이나 마지막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께서 자기 제자들을 향해 주신 마지막 유언은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명령에 이상한 단서가 붙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새 계명"을 준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면 왜 새 계명이라고 했을까요?

사실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미 구약 율법에 있읍니다. 레위기 1918절을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여 사랑을 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237-40절을 보면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고 구약의 율법을 요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장면에서 주께서 말씀하실 때 내가 전에 말하였던 것 같이또는 율법이 말하는 바와 같이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사랑하라 하시며 이 계명은 분명히 새로운 계명이며 구약의 계명과는 구분되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아무튼 우리 주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그 부탁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까? 왜 새 계명입니까?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주님의 이 새계명을 다른 곳에서는 그의 계명이라고 하여 뚜렷하게 구분하며 특징을 짓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23절을 보면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고 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의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 계명" 또는 "그의 계명"일까요? 

34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단서가 주님의 계명을 다른 계명과 구분하고 있는 것이요 "새 계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요한복음 1512-17절은 이 새 계명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15:12-17)

 

여기서 우리는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단서 때문인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의미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 곧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십자가의 사랑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라하라는 이 계명을 지키면 너희는 곧 나의 친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주께서 주신 새계명을 지키기기 바랍니다. 또한 그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과실을 맺게 하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을 받게 하는데 이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자들 모두에게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22절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다른 일반적인 사랑과는 구별되는 이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려는 자들에게 특별한 기도응답이 약속되어 있고,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주 예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원인이라 하시며,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 맞습니다. 이 새계명은 천국의 유일한 계명이요 주님과의 새 언약 속에서 주어진 유일한 계명입니다.

[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증거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자들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있으니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증거는 오직 이 사랑이요, 이 사랑을 순종하여 행할 때, 그가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데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드리는 간구는 다 응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행하는 자를 통하여 교회가 풍성해지고 사회가 변화되며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사람과 구분시키는 사랑이 바로 이 새 계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이 새 계명입니다. 주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은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계명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는 계명이 바로 이 사랑의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해야만 주의 제자들이 세상과 구분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새계명을 우리가 행하면 우리를 통해 생명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고 빛이 흐르고 평강이 흐르고 감사가 흐르고 기쁨이 흐를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 주변에 천국이 임하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임에도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면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육신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살 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 새 계명으로 주어진 십자가의 사랑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가능한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 새 계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고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할 때만이 주의 새 계명인 아가페 사랑을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계명을 지키려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에만 이 사랑의 새 계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을 좀더 구체적으로 몇가지 제안해 봅니다.

 

먼저 이 사랑을 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첫째, 겸손입니다. 겸손없이는 이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주시기 전, 즉 요한복음 1334-35 절이 있기 전, 요한복음 13:1-33 절의 사건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 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변하지 않고 지칠줄 모르는 사랑으로 세상에 있는 끝까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1절에서 제자들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가롯 유다의 경우 예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며 끝까지 희생하시는 실패함이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댓가를 얻기를 바라지 않는 사랑으로서 우리 예수님은 자기에게 속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때 주님의 제자들의 상태는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본 수다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본 제자들은 이제 곧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을 확신한 가운데 누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에 대해 늘 논쟁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더 높아지고 싶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계하고 헐뜯고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이 가까와 올수록 더욱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는데 제자들은 더욱 미움과 시기에 빠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새계명을 주시기 전의 조치로발을 닦는 일을 생각해 내십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겸손함이 없이는 "새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을 우리 주님은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는 도중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대야와 수건을 가져오십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면서도 교만한 제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발을 먼저 닦아 주겠다고 나서는 자도 없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며 자존심을 꺽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저놈들이 먼저 굽실 거리지 않는데 내가 뭐하러 먼저 굽실거리겠는가. 나는 결코 저들보다 내 자존심을 먼저 꺽는 자는 되지 않으리!"

 

지금 이 장면을 보면, 임박한 죽음을 앞둔 주님과 버릇 없는 제자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 같으면 제자들에게 꾸중과 화를 퍼부을텐데, 주님은 묵묵히 열두 제자의 발을 만지시며 다 씻기십니다.

 

주님은 아십니다. 그들의 자존심과 교만이 부서지지 않고는 이 위대한 새 계명을 실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주 예수께서 몸소 보여 주신 겸손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후에 제자들의 교만을 완전히 무너지게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도망갔던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수치와 자기 부정의 겸손 위에 이제는 주를 위하여 주님과 똑같은 사랑으로 새 계명을 실천하는 제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새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기 전, 우리는 항상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작은 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지독한 교만과 죄성 때문에 결코 주께서 맡기신 새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실, 새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모독과 멸시와 거절을 당해야 합니다. 인간들은 너무나 교만하고 착각이 심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들을 사랑하고자 손을 내밀어도 늘 거절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면서도 예수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내 자존심을 지켰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쭐합니다. 이러한 교만하고 악독하고 어리석은 세대 가운데 우리가 겸손을 먼저 배우지 않는 한, 주께서 맡기신 새계명을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새계명을 행하기전 겸손한 마음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이는 오직 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업신과 멸시와 조롱과 천대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주께서 맡기신 새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말씀을 나눕니다.

[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4:7-12).

 

둘째로 중요한 사실은, 이 새계명은 오직 주님의 사랑을 맛보고 이해하고 느낀 자만이 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사람들에게서 찾으면 안됩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이 목사님이나 교우들을 통하여 발생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항상 그런 사랑을 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을 통하여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감동합니다. 그후 그 사람이 예수님를 바라보게 되면 좋을텐데 계속 사람을 의지하며 아가페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크게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가페의 사랑을 사람에게서 구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 그러한 깊은 진실한 영원한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이 사랑을 맛보셔야 합니다. 성경을 통한 깊은 체험과 깨달음과 함께 주어지는 주 예수님과의 관계만이 오직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과 십자가의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체험한 자가 그 사랑을 한없이 감사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사랑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 속에 체험되는 주님의 사랑과 그 선하심을 아는 자의 복은 얼마나 큰 것인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시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알아가야 합니다.

[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9-11, 15-16, 19, 21)

 

아무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 하나님의 사랑을 한량없이 받는 자만이 다른 사람들을 한량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실행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삶을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주님과 함께 한 후, 형제들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놀라운 방법은함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함께함은 닮은 꼴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랜 친구는 닮습니다.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 시간이 지나면서 닮게 되는데 이는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한 후 친구와 함께 하여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주님을 닮은 후, 내 형제, 내 이웃으로 하여금 나를 닮게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이는 곧 바울을 본 받는 것이 주 예수님을 본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하며 그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함께 사랑하라. 너희가 함께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모이기를 게을리지 말고 더욱 자주 만나며 새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옴을 볼수록 그리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참조, 10:25, 24).  

 

마지막으로 주님의 새계명은  "불구하고"의 사랑을 요청합니다. 새계명은 "때문의" 사랑도 아니요 "만일의" 사랑도 아닙니다. 새 계명의 특징은 상대방의 반응에도불구하고주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을 인내 가운데 상대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들어보세요. 주님의 사랑은 로마서 56-8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5:6-8).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의 단점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괴수 같은 타락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이웃이 험악하고 나를 조롱하고 대적하고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오는 사랑으로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새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신 사랑의 새 계명은 내 자신의 자존심과 교만과 육신의 세력을 죽이기 위한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가 우리 마음 속에 있을 때에 실천되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평생 이를 위해서 말씀과 기도와 거룩한 교제 가운데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유일한 새 계명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특이한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면,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가페 사랑을 행하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미소가 환하게 비췰 것입니다. 또한 자자 손손 하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십자가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죄 많고 교만한 나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의 저주를 내 대신 감당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신데 여러분을 위해 가장 무서운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가페의 사랑의 증거로서 보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분을 믿으며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늘의 모든 풍성한 보화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4:14-16)

 

이 시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새생명으로 충만해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명이신 새생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게 주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넉넉히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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