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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배가 담긴 질그릇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20|조회수38 목록 댓글 0

보배가 담긴 질그릇


서론

여러분은 사람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보실까요?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일들을 허락하실까요?

인생의 시련은 무한정 지속될 것인가? 인생의 시련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고린도후서 4:7-11, 16-18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7-11, 16-18)

 

본론

1.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

그릇은 재료, 크기, 담긴 내용물에 의해 가치가 결정됩니다. 질그릇은 재료면에서 보면 가장 가치가 없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 있다면 질그릇의 가치는 전혀 달라집니다. 학창 시절에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노래 가운데 물을 담아두면 물단지, 꿀을 담아두면 꿀단지, 우리들은 꿈단지 꿈을 담아라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보배가 담긴 그릇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겉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겉만 가꾸거나 겉 멋 들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배기량, 아파트 평수, 멋을 내는 장신구나 비싼 백 등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보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배는 무엇일까요? 고후 4:6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보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것이 보배입니다. 영광은 곧 품성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보배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보배가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자식도 귀하고, 돈도 소중하고, 아파트와 자동차도 재산 목록에서 상당히 우위에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는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귀하고 복된 것입니다. 잠언 3장에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3-18)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왜 하나님께서는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셨을까요? 빈 그릇일때는 재료와 크기가 가치를 결정하지만, 무엇인가가 담겨 있을 때는 내용물이 결정합니다. 아무리 흔한 재료가 사용되고, 크기가 작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 귀하고 값나가는 것이라면 재료와 크기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질그릇인 우리에게 이 보배를 담아 두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담아두신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질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질그릇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가꾸고 꾸미는 일일까요? 금과 은을 많이 소유하는 일일까요? 자식을 출세시키는 일일까요? 비싼 옷이나 장신구로 치장하는 일일까요? 보배를 담는 일입니다.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를 담는다면 우리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배를 소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보배를 소유하면 어떻게 될까요? 1-4에는 방법을, 5-8에서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2:1-8)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으면 집중력이 생기고, 전에 없던 힘이 생깁니다. 방법이 보이고, 추진력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보배를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더 풍성하게 소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 질그릇인 우리 몸에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질그릇으로 묘사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치고,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고후 4:8-9을 보시겠습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고후 4:8-9을 보면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합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3) 핍박을 받습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 마음에 보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주도할까요? 사단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배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최근에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있으셨다면 축하드립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귀한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이 일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했던 동일한 일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이 말씀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일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것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2:20)다는 말씀과 동일한 경험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예수와 함께 죽으면 예수와 함께 살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를 죽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6000년간 줄곧 사람들을 죽여 왔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면 열 받는지, 어떻게 하면 뚜껑이 열리는지, 어떻게 하면 이성을 잃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매뉴얼이 있어서 상황을 보면서 단계별로 수위를 높여 가면서 공격합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집요한 공격과 다양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는 것 같고, 살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을 세상은 목격하게 됩니다.

지금 교회는 전투 중에 있다. 우리는 지금 거의 우상 숭배에 빠져서 밤중과 같은 흑암 속에 있는 세상과 마주 대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나고 승리를 거둘 날이 오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3보감, 225)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는 건드려 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보배가 있는지 없는지는 육안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영역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자극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자극할까요? 떼거리를 지어 포위하고, 답답한 일을 만나게 하고, 핍박하고, 거꾸러뜨리기도 합니다. 이 때 보배를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은 예수의 생명이 몸에 나타납니다. 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보배를 마음에 간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뒤로 물러 갑니다.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소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소유하고 있으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고, 그렇지 않다면 사단의 정신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 저와 여러분에게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질그릇에게 닥치는 환란은 잠시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6-18)

바울 사도는 사람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입니다.

겉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부분을 말합니다. 흰 머리가 많아졌네요! 주름이 늘었어요! 살이 많이 쪘네요! 등등의 말들은 모두 우리의 겉사람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들입니다.

겉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속사람입니다. 대화를 해보면, 표정을 보면 속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겉사람이 후패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26세부터 38세까지 노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그 이후에는 완만해진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늙어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낙심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염색, 성형, 화장, 등등 수많은 방법이 동원되고, 돈을 투자하지만 한계가 뻔하지 않겠습니다. 속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이 후패하는 겉사람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후패하는 겉사람을 감추는 것보다는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후 4:17-18은 우리의 겉사람이 후패해지는 원인이 되는 환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이 말씀은 우리가 힘겨워하는 환난에 대하여 하나님의 평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환난은 가볍고 시간은 짧다고 하시는데 그 까닭은 우리가 누릴 영광이 환난에 비하여 휠씬 크고 영원하고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맛있어도 더 맛있는 것이 있을 때는 이전에 맛있는 것은 더 이상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더 힘든 것이 있을 때는 이전에 힘든 일은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길고 지루해도 더 길고 지루한 시간이 있을 때는 짧아 보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보이는 것은 환난이고, 또한 환난으로 인해 후패한 겉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광이고 또한 새로워지는 속사람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보이는 것은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애의 시련들은 우리의 품성에서 불순물과 결점과 거친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광 중에 있는 순결한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련들을 통과할 때, 고난의 불이 우리에게 붙을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불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유업, 불멸의 생명,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믿음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불은 우리를 태우지 못하고 다만 찌꺼기만 제거해 버리고, 우리는 일곱 번 연단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나오게 될 것이다.”(1증언, 706-707)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이 우리에게 남겨준 불후의 명언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우리가 겪는 모든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일들입니다. 우리가 피하거나 거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때가 곧 다가올 것입니다. 정금같이 나오게 되는 날, 우리 모두 한분도 빠짐없이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및 호소

우리 모두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단은 우리를 깨뜨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포위하고 답답하게 하고, 핍박하고, 거꾸러뜨리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환난이 심하고 오래 갈 것 같을 때, 우리가 누릴 영광에 비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요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하늘에서는 누가 정금이고 누가 돌맹이인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화요일부터 연말기도주일로 모이고 안식일에는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우리 생애에 마지막 연말기도주일, 마지막 성만찬 예식으로 생각하시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은혜의 문 넓게 열려 있는 동안 거절하지 말고 주의 앞에 나와 마음을 바치는 성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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