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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의 삶 속에 있는 가시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20|조회수43 목록 댓글 0

고린도 후서 12:7

(여러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제목: 성도의 삶 속에 있는 가시


I. 서론:

우리 교단에 뛰어난 지도자 여러 분이 계십니다. 그 중에서 몇 손 안에 꼽히는 분 중에 한 분이 남대극 전 삼육대총장님이십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에 육군사관학교 교수경력 등 화려한 전력이 있습니다. 남목사님이 아이아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헬라어의 공부를 하시다가 그 실력이 너무 출중하셔서 학생인 그가 교수로 채용되어서 그 과목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과목 만점을 받아서 최고우등상을 받고 졸업하셨습니다. 그의 학점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런 그분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그분께서 동의를 해 주셨습니다. “성장하면서 자신에 대해 콤플렉스로 느낀 것이 있으신가요?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목사님도 자라면서 콤플렉스로 느낀 것이 있으신지요?” 무엇이라 하셨을까요?” “그분은 왜 없겠습니까? 여러 부족한 것 투성이지요.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사니 괜찮은 것이지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만족하지 못해서 다시 구체적인 어떤 콤플렉스가 없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분께서 두 가지를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는 5살 때 아버님을 일찍이 전쟁 통에 잃으셨습니다. 그래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크셨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마음의 공허가 컷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제대로 길을 잡아 주었으면 바른 길로 갔을 텐데 멘토가 없어서 시간 낭비를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멘토가 없었기에 개인적 좋아하는 기질에 따라 공부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한 것이 아쉽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그분이 어렸을 때 일찍 아버님을 잃고 힘들게 사신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 모두에게 힘든 어떤 도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신약의 가장 탁월했던 인물인 바울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3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모든 사람들에게는 콤플렉스가 있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 속에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신약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당시의 하버드대학입니다. 산헤드린 회원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국회의원인 것입니다. 거기에 그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여러 하늘의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친히 들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계시 중에 세째 하늘 곧 천국의 낙원에까지 가본 사람입니다. 이런 탁월했던 영적인 거인 바울도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일까? 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추측을 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바울의 불경건한 삶” “성욕이 가시였다고 말합니다.

마틴루터는 회개하지 않은 죄와 죄에 빠지도록 하는 유혹

터툴리안 귀병

크리소스톰 바울의 대적자끊임없이 그의 발을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

재미있는 주석은 그의 흉측스런 외모라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외모는 참으로 혐오감을 불러내는 인상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키에 등은 휘었고 다리는 안짱다리. 두 눈썹은 붙었고 검은 피부에 머리 숱은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복음을 전하는 그에게는 대단히 큰 장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바울의 가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간단히 그의 질병을 특정해서 밝힐 수 있었을 텐데 왜 막연하게 육체의 가시로 표현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바울의 질병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가시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혼의 고통과 상처를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혼을 통해서 그에게 허락하신 위로를 잘 이해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는 지를 잘 이해합니다. 그에게 이혼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금방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혼얘기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특정한 문제를 가졌다면 해당되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라고 했을 때는 정확한 어떤 문제가 아닌 자신과 관련된 콤플렉스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시란 표현은 참 절묘한 단어 입니다. 이 본문에서 이보다 적절할 수 없는 단어 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시에 찔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시는 아주 작은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찔린 사람에게는 끓임 없이 고통을 주는 물체입니다. 가시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어떤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모든 사람은 아무런 고통과 시련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고통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잉꼬 부부로 잘 살고 있던 연예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혼하는 것을 심심하지 않게 봅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삶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 보면 많은 그 사람들만의 고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용맹스런 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간질로 고생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증상이 올 때 측근에게 재빨리 신호를 해서 그것을 가리게 했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 시저도 나폴레옹도 간질에 시달렸습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장미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모든 독에는 흠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도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이 한가지씩 남이 알지 못하는 고통과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고통을 당할까? 왜 나만 이런 문제가 있을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라톤 경기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가장 앞서 1등으로 달리는 사람, 중간에서 달리는 사람 아니면 가장 끝에서 달리는 사람 중에 누구일까요? 가장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가장 쉽게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가장 꼴찌로 달리는 사람이 마지막이니까 이왕 선두 경쟁이 안되니 힘이 덜 들까요? 아니지요. 1등에서 300등까지 모두가 힘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문제가 가장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각자 삶의 마라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가시는 축복이다.

두 번째 우리 삶에 있는 가시는 축복입니다.

본문말씀에 보면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쉬운 표현으로 우리를 사단의 손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입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단의 손에 넘겨 주실 수 있습니까? 성경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은 욥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욥기 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을 넘겨받은 사단은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운더리를 정하고 사단의 손에 넘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단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 온 욥을 무자비하게 다룹니다. 가족들에게 재앙이 오고 재산을 다 찟어 버립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욥기서 42: 5-6 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기 42: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그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고난을 통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적인 은혜 아래에서 모든 환경이 허락됩니다. 최악은 사단의 손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너무나 세상에 깊이 몰두 되어서 그의 영혼이 위험에 처하고 다른 방법으로 그를 구원하실 수 없을 때 그에게 사단이 그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돈을 버는 데 너무 몰두하던가, 세상의 재미에 너무 빠져서 신앙의 세계에 완전히 흥미를 일으켜서 영적인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갈 때 혹은 그를 앞서 더 큰 재앙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할 때 비상조치를 치하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건강할 때 하나님을 부인하던 사람들이 인간의 한계에 부딪힐 때 하나님께 돌아서는 경우들을 우리가 종종 보게 됩니다. 갑자기 사업이 망해서 바닥에 떨어질 때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해 전 (2012) 에 돌아가신 강영우 박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2001년 백악관 정책차관보로 발탁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그 때까지 미국공직에서 가장 고위직에 올라가신 분이셨습니다. 그의 자서전은 7개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생애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가 중학교 때 그의 인생은 쪽박을 차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반전이 이룬 사건이 중학교 1학년 때 생겼습니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같은 해에 그가 눈을 축구공에 맞아 실명을 했습니다. 눈을 회복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쇼크로 뇌졸증으로 숨졌습니다. 가사를 책임졌던 누나도 과로사로 사망합니다. 그야말로 일년 사이에 처절한 인생 가장 바닥까지 떨어 졌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삶이 끝났을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강영우박사는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탄식하던 때가 바로 인생 대박의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인생의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알지 못하는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의 길을 이끌고 함께 할 숙대 1년이었던 여학생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약 그 때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하나님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오늘날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 나에게 그러한 시련을 허락하셨다오늘 우리에게 있는 삶의 시련이 무엇인가? 나의 콤플렉스가 무엇인가?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도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때로 사단의 손에 잠시 맡기더라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 나를 자꾸 끌어 내리려 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통해서 나를 더욱 큰 축복으로 인도 하시고 정결케 하십니다. 그분의 섭리적 통치와 인도하심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하십시오. 그러면 긴 시간이 지나서 혹은 저 천국에서 왜 이러한 힘든 일이 있어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가시를 받게 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라고 고후 12: 7에 나와 있습니다. 그 가시의 목적은 그를 겸손케 하려 함이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것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만약 바울이 교만하여 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초대교회는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유대적이고 율법적인 편협한 신앙체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새로운 복음을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깨우침 받게 된 바울에게 초대 교회는 희망이 없는 고리타분한 종교였습니다. 전통에 사로잡혀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구태에 사로잡힌 종교였습니다. 그는 그런 초대교회를 공격하며 새로운 종파를 하나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계시를 받고 예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그가 초대교회의 결정을 거부하며 새로운 종파를 시작했다면 초대교회에 엄청난 혼란과 장애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답답한 초대교회의 모든 절차와 결정을 존중하며 따랐습니다. 이것이 가시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높이 들으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높이신 자들이 자신이 잘난 것으로 생각해서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이전에도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든지 낮추시던지 겸손히 주의 뜻을 받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현재의 은혜가 족하다

세번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바울은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3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9절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였습니다.

 

일전에 본 동기부여 비디오에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한 기업체의 사장이 직원들에게 어느 날 백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점 하나를 그렸습니다. 그 백지를 들고 여러분들은 이곳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회사원들이 모두 점 하나가 보입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넓은 여백이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흰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넓은 공간은 보지 못하고 점 하나만을 봅니까

 

강영우박사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맘을 크게 감동받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단 가진 것 열 가지를 감사하며 살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영우 박사가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면 그의 삶은 실패자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했더라면 그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없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년 어느 날 둘째 딸 예진이와 차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감정이 상했습니다. 예진이가 제가 하는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저의 약점을 지적하는지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습니다.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속으로 분노를 삭혔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여전히 극을 향해 달려 가고 있습니다. “이제 너와 나의 관계는 끝났다.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거다.” 목회자가 참 우습지요? 그러나 목회자도 예수님의 은헤가 없으면 희망이 없는 죄인입니다. 2-3시간 정도의 거리를 가면서 제가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저의 분노를 다스려 주십시오그렇게 기도를 했어도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기도를 하는 가운데 생각이 회전문 돌듯이 스르륵 돌아갔습니다. 예진이가 있어서 내가 감사한 것이 불평할 것보다 더 많지 않은가?” 그리고 감사할 것들을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그 감격과 감사한 마음이 생각 났습니다. 예진이가 써 주었던 아빠를 사랑한다는다정다감한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진이의 다정 다감한 성품적인 특성들이 수문이 열린 것처럼 쏟아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딸들을 잃은 세월호의 부모들이 생각났습니다. 예진이가 지금 옆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 예진이가 자기의 의사를 조리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다 자기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자 맘에 감사가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 고집스럽게 보이던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무나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창에 기대어 자는 예진이를 보면서 너무나 귀한 딸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진이의 작은 점 하나에 집중해서 전체를 망칠 뻔 한 것을 돌이켜 예진의 더 많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들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큰 축복과 행복으로 더욱 차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III.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서 3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모든 사람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2. 우리의 삶에 있는 가시는 축복입니다.

3. 우리에게 있는 현재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최 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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