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
☞ 본문: 고린도후서 2:14-16
(ex) "탑뉴스(Topnews)"란 매체가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직업들"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남자들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는 직업입니다. 이들은 향수를 개발하는 여성들인데, 좋은 향수를 만들기 위해 남자들의 겨드랑이 냄새를 계속 맡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이 내뿜는 가스(방귀)를 연구하는 직업입니다. 이들은 여러 음식을 먹고 가스를 내뿜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아,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두 직업의 공통점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맡아야 하는 냄새가 좋은 냄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냄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 많은 냄새가 있는데, 좋은 향기도 있고 나쁜 냄새도 있습니다.
사람은 냄새를 잘 맡기도 하지만, 냄새를 잘 풍기기도 합니다.
몸에서도, 인격에서도, 신앙에서도 끊임없이 냄새나 향기를 풍기며 삽니다.
저는 이 시간 "그리스도의 향기"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2:14-16을 보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But thanks be to 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in Christ and through us spreads everywhere the fragrance of the knowledge of him."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or we are to God the aroma of Christ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those who are perishing."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To the one we are the smell of death; to the other, the fragrance of life. And who is equal to such a task?"
살펴볼 첫 번째 교훈은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15에서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란 말은 당시 로마 군대의 개선 행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ex)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로마인이 출세로 여기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출세는 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마 네 마리가 이끄는 개선식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승리한 로마의 장군들은 군대를 이끌고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 산에 있는 쥬피터(Jupiter) 신전으로 행진하여, 거기서 희생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습니다.
그 때 피운 향이 엄청났는데, 로마 시내 온 거리에서 누구든지 그 향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개선식의 향기에 빗대어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냄새를 좋아하십니까?
좋아하고 싫어하는 냄새는 주관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냄새는 있습니다.
세면 후의 비누 냄새, 풀냄새, 꽃냄새, 과일냄새, 빵 굽는 냄새, 고구마 굽는 냄새, 원두커피 향기, 은은한 녹차 향기 등은 참 좋습니다.
제 둘째 아들은 특이하게도 지하 주차장 냄새를 좋아합니다.
추모관 주차장에 들어가면 냄새가 참 좋다고 말합니다. 좀 특이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도 많습니다.
음식 쓰레기 썩는 냄새, 하수구 냄새, 누군가 오래 머물다 간 공중 화장실 냄새, 담배로 찌든 차안의 밀폐된 냄새, 대충 빤 행주로 유리 깔린 식탁 닦은 냄새 등.
사람은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냄새를 풍기며 삽니다.
(ex) "무탄트 메시지"(Mutant Message Down Under)란 책이 있습니다. "무탄트"란 말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원주민이 "문명인"을 가리키는 말인데 "돌연변이"란 뜻입니다. 이 책은 미국인 여의사 "말로 모건(Marlo Morgan)"이 호주의 한 원주민 부족과 함께 4개월간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며,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원주민처럼 먹고 입고, 맨발로 걷고, 맨땅에서 잠을 잤습니다. 한번은 야생 딩고떼가 계속 그들을 따라왔습니다. 딩고는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사막에 사는 늑대였습니다. 딩고 떼가 따라온 이유가 모건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막에서 오랫동안 씻지 못하자 몸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났습니다. 급기야 원주민들은 사막의 모래를 파고 모건을 땅속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녀는 얼굴만 내놓고 땅속에 완전히 묻혔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지내고 나오자, 신기하게도 그녀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물로 씻고, 향수를 뿌리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제거할 수 없는 다른 냄새가 있습니다.
(ex) 이해인 수녀가 쓴 "꽃의 향기, 사람의 향기"란 시(詩)가 있습니다.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곤 합니다. /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 . .
시인의 말처럼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우리는 인품만큼만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우자가 우리에게서 어떤 인품의 냄새를 맡고 있을까요?
우리의 자녀와 친구, 직장 동료는 우리에게서 어떤 성품의 냄새를 맡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향기일까요, 세상을 보여주는 냄새일까요?
두 번째 교훈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면 그 향기는 사람들에게 사망이나 혹은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5-16입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For we are to God the aroma of Christ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those who are perishing. To the one we are the smell of death; to the other, the fragrance of life. And who is equal to such a task?"
승리한 로마의 군대가 시내로 개선해 들어올 때, 그들은 크게 두 무리로 나눠졌습니다.
하나는 로마 군인과 장군들이었고, 또 하나는 포로로 잡혀오는 적국의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피워진 향은 로마 군인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승리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국의 포로들에게 그 향은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고통과 치욕,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선식에서 피운 동일한 향은 어떤 이에겐 생명을,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신자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런 신자를 바라보는 세상은 두 부류가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교회 안에서도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런 신자를 받아들여 사람들이 생명을 얻든지, 그들을 핍박하여 심판을 초래하던지.
그래서 고린도전서 1: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인격의 향기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격의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 설탕 좋아하십니까?
조금 전에 소개했던 "무탄드 메시지"란 책에 나오는 원주민들은 문명인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탄트들의 생활 속에는 달콤한 맛을 내주는 설탕도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달콤한 것만 쫓으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시간을 피상적이고 인위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영원한 존재를 개발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무탄트 메시지 261)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주민들은 컴퓨터나 자동차가 없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는 더없이 높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설탕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인 문명인은 설탕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달콤한 면만 추구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가장 마음을 두고 사십니까?
순간적이고 세상적인 것, 아니면 영원하고 하늘에 속한 것,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십니까?
햇빛이 똑같이 비칠지라도 흙은 수분이 증발해 딱딱해지지만, 밀랍은 녹습니다.
여러분은 의의 태양되신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설탕처럼 달콤한 것만 추구한다면, 우리에게 복음은 계속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아무리 성공한 삶을 살지라도, 우리는 주변에 사망에 이르는 냄새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교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4을 보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But thanks be to 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in Christ and through us spreads everywhere the fragrance of the knowledge of him.
바울은 자신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향기를 각처에 퍼트리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비결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아는데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데는 두 가지 국면이 있습니다.
에스라 7:6입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this Ezra came up from Babylon. He was a teacher well versed in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the God of Israel, had given. The king had granted him everything he asked, for the hand of the LORD his God was on him."
에스라는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지 약 80년 후에, 이스라엘의 행정을 재조직하기 위해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구절은 그 임무를 맡았던 아론의 후예인 에스라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두 부분이 기록돼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지식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해야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두 번째 부분은, 에스라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려면,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얻는 지적인 활동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무수한 말씀을 듣고 읽었지만 그것이 다 믿음으로 연결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 깨달은 성경 말씀이 부분이 실제적으로 삶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내 것으로 경험될 때 믿음이 확고해집니다.
(ex) 이번 주에 있었던 저의 작은 경험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안면도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한길 목사님과 다녀왔는데, 일요일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머리가 아팠습니다. 전날 밤 둘째 아들과 샤워를 하다가 아들이 제 안경테를 치는 바람에 안경이 비뚤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안경이 오른쪽 귀를 자꾸 건드려 편두통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근처에 문을 연 안경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안면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안경점을 찾아가 안경을 고쳤습니다. 그런데도 귀가 계속 아프고, 편두통 때문에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다른 안경점으로 가려고 한 목회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태안까지 가야 되는데, 왕복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강의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곳에서 중요한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경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파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가 아프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기도를 드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20분이 지났을 때는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고, 다음날 그 다음날, 떠나오는 날까지 괜찮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에는 두 국면, 지적인 부분과 경험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에도 두 가지 국면이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구원에는 이 땅에서 누리는 구원이 있고, 내세에서 누릴 구원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죽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장로 교인들이 종종 합니다.
그 때마다 재림교인들은 대답하기를 주저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재림교인들은 내세에서 누릴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을까요?
그것은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적고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육신의 질병, 가족 간의 불화가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림으로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100%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의 구원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누리는 구원입니다.
이 땅에서 그런 구원들을 계속 경험하는데, 어떻게 내세의 구원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지적인 부분과 경험적인 부분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한 쪽만 강조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고 경험하지 못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에 대한 근거도 없이 무조건 믿는데, 광신주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어떤 것이 부족합니까?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말씀을 더 깊이 보아야 하는지, 기도를 더 간절하게 해야 하는지.
이런 깨달음을 가진 후에는 말씀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ex) "정 트리오"(명화, 경화, 명훈)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씨가 15일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원숙 씨는 슈퍼맘의 원조였고 자녀들을 키우는 열정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이 이화여대 강당에서 연주할 때 근처 신촌역의 기관사를 찾아가, 연주 시간에 기적소리를 울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녀의 공연장이 결정되면 그곳에 먼저 가서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 연주를 망치지 않도록, 핸드백에 못과 망치를 넣어 다니며 의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64세에 신학대학에 들어가 70세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그런 열정 때문에 정 트리오를 비롯한 7남매는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5:2은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God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예수님은 이 땅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가 짓밟히고, 모욕을 당하고, 조롱받았을 때, 어떤 향기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까?
그분은 언제나 용서의 향기, 사랑의 향기, 온유의 향기, 오래 참음의 향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의 향기를 오래도록 기억한다면, 분명 그의 희생과 헌신 때문입니다.
이기심으로 살았던 사람의 냄새는 우리에게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진정한 향기였습니다.
왜요? 우리를 하나님과 사람과 회복시키기 위해 그분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뿜어져나온 그 향기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향기로운 제물이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희생이 가슴에 새겨지도록,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말씀을 적용하는 일에, 기도로 간구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인가요?
지금까지 어떤 냄새를 주변에 퍼트리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봅시다.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였는지, 사망으로 인도하는 냄새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돌아오는 한 주 동안 어떤 향기를 퍼트리는 삶이 되고 싶으십니까?
마음에 말씀을 새기고, 새겨진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아, 하나님을 경험하는 새로운 한 주가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과 가까워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오 재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