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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두 근심

작성자예수님사랑|작성시간26.06.20|조회수55 목록 댓글 0

두 근심(The Two Sorrows)

본문: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7:8-10


 

(ex) 정신과 의사였던 "토마스 홈즈"(Thomas Holmes)가 만든 "스트레스 표"(stress chart)란 것이 있습니다. 이 표에 43가지 스트레스 항목이 나오는데, 각각 점수가 매겨져 있습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death of spouse)인데 100점입니다. 두 번째는 "이혼"(divorce)으로 73, "질병"(illness)53, "결혼"(marriage)50점이나 됩니다. "실직"(fired at work)47, "재정 상태의 변화"(change in financial state)38, "배우자와 언쟁 증가"(change in number of argument with spouse)35, "시댁 혹은 처가와 갈등"(trouble with in-laws)29, "직장 상사와의 갈등"(trouble with boss)23점입니다. 1년에 총 스트레스 점수가 150-199점이면 병이 날 확률이 37%입니다. 200-299점이면 51%입니다. 300점 이상이면 병이 날 확률이 79%나 됩니다.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에 병을 일으킵니다. 요즘 여러분에게 어떤 스트레스가 있으십니까?

세상에 많은 근심이 있는 것 같은데, 성경은 두 가지 근심만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시간 "두 근심"(The Two Sorrows)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2 Corinthians)7:10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For godly sorrow produces repentance leading to salvation, not to be regretted; but the sorrow of the world produces death."

 

여기서 "근심""뤼페"(lupe)란 단어로, 몸과 마음의 고통, 아픔, 슬픔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두 가지 근심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고, 또 하나는 "세상 근심"입니다.

이 말씀은 근심의 종류 뿐 아니라, 근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결과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세상 근심의 열매는 사망을 가져옵니다.

사람이 근심하는 것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ex) 3주 전에 친구가 세상을 떠나, 장례식에 갔었습니다. 그는 한 대학의 건축공학과 교수였습니다. 대학교수였던 장인의 후원으로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다 그가 장가를 잘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45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에 걸리기 3년 전에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에서 겪은 스트레스가 암의 주원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장례식에 모인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가 장가를 잘못 갔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가 결혼을 잘 했나요, 잘 못했나요?

 

대부분의 사람은 내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것을 통해 판단합니다.

사람에게 근심과 슬픔이 있다면, 당연히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이 근심 걱정이나 슬픔이 없이 살 수 있다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어떤 근심과 슬픔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얻게 한다고 말합니다.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란 뜻입니다. / 오늘 말씀의 배경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8-9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For even if I made you sorry with my letter, I do not regret it; though I did regret it. For I perceive that the same epistle made you sorry, though only for a while. Now I rejoice, not that you were made sorry, but that your sorrow led to repentance. For you were made sorry in a godly manner, that you might suffer loss from us in nothing."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18개월간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교회가 네 개의 파로 갈라졌습니다(고전 1:10-12).

한 신자가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는데, 교회가 올바로 처리를 하지 못했습니다(고전 5:1-5).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문제를 이방인 법정에까지 가지고 갔습니다(고전 6:1-8).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바울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요즘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다면 직접 찾아갔거나, 책임자에게 전화를 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없었던 당시의 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였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보내고 나서, 처음에 근심하고 후회했습니다.

그 편지가 고린도 신자들에게 근심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생각이 곧 바뀌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편지로 근심했지만, 그 근심이 그들을 회개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기쁨에 겨워 두 번째 편지,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습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이 한 근심이 세상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근심을 하고 사십니까?

(ex) 지난 주 목요일에 수능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 학생이 시험을 쳤습니다. 수능 시험이 끝난 일주일 뒤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젠 우리 차례, 2 벌써 대입모드" 이 땅의 많은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대학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ex) 이 사진은 106일 이랜드 그룹에 지원한 사람들이 취업 시험을 치르는 장면입니다. 3000명이 모였는데, 사진의 제목이 "드넓은 시험장, 좁은 취업문"이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ex) 이번 주에 한 후배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친구인데, 실적이 좋지 않아 해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를 위해 일부러 보험도 들어주었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웠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사무실을 떠났지만,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얻고도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ex) 올 추석에 가족 간 말다툼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성인남녀 1000명에게 물었습니다. 네 가지 보기가 주어졌습니다. "돈 문제," "대선 문제," "자녀 문제," "음식 문제." 말다툼의 가장 큰 원인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자녀 문제"였습니다.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로 인해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근심하고 슬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근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일까요, "세상 근심"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원어는, "하나님에 의해서 하게 된 근심"이란 뜻입니다.

여러분의 근심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게 된 근심입니까?

아니면, 좀 더 잘 살고, 좀 더 편안하게 살려고 여러분이 만들어낸 근심입니까?

 

"유대인 시대에는 사람들의 정열이 주로 돈을 사랑하는 쪽으로 쏠렸다. 속된 마음이 하나님과 믿음이 차지할 자리를 빼앗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 . . 사단을 섬기면 근심과 번민과 피곤한 수고로 가득 찬다."(산상보훈 영한대역 199) "The love of money was the ruling passion in the Jewish age. Worldliness usurped the place of God and religion in the soul. So it is now. . . . The service of Satan is full of care, perplexity, and wearing labor."

 

"이 세상에는 자녀들의 세속적 번영을 첫째 목적으로 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실물교훈 53) "How many parents make it their first object to secure for their children worldly prosperity."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근심은 "세상 근심"입니다. 그 결과는요? "사망"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근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일까요?

 

(ex) 한 그리스도인 군인이 해안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대의 군인들은 밤마다 한 사람씩 인근 마을로 내려가 김치와 고추장을 훔쳐왔습니다. 며칠 뒤엔 그 그리스도인 군인이 가야 했습니다. 그가 근심에 빠져서 고참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가져오겠으니 훔쳐오라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훔치지 말고 가서 달라고 부탁해라.' 그는 기도하고 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를 만나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그 아주머니 아들도 군에 가 있었습니다. 아들 생각이 난 아주머니는 김치와 고추장을 듬뿍 주셨습니다. 그 군인은 이전에 동료들이 훔쳐오던 것보다 훨씬 많은 김치와 고추장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만약 그 군인이 환경을 핑계로 삼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적당한 태도를 보였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을까요?

 

(ex) 3주 전에 이한봉 목사님이 오셔서 주말 부흥회를 하셨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하나님이 이기셨다"는 자신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미국을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학생이었을 때, 군인이었을 때, 현직 목사였을 때, 은퇴 목사였을 때, 한결같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결단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나는 진리를 받은 후 언제나 '양심'에 무슨 가책은 없는가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p45)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가로막는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 때 그 환경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음에 근심과, 그에 따른 슬픔이 있으십니까?

그런 근심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ex)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르완다로부터 온 소식!" ("We Wish to Inform You That Tomorrow We Will be Killed With our Families: Stories from Rwanda")이란 책이 있습니다. 19944월부터 약 100일 동안 약 100만 명이 살해된 르완다 대학살을 보도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르완다 대학살 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한 목사와 그 아들이 조직적인 살인에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가 동료 목사들을 죽였고 자신의 신자들을 죽였습니다. '목사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를 생각하며,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더라도, 사랑해야 할 사람을 자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줍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근심과 슬픔이 있습니까?

그런 근심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ex) 11월 초 삼육서울병원이 보건복지부 인증 검사를 마쳤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병원의 모든 직원들이 애를 썼습니다. 교회의 한 여집사님이 그 인증 절차를 마치고,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외워야 할 규정집이 있는데, 너무 안 외워져서 밤에 잘 때도 끌어 앉고 잤답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또 중얼거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하고 외웠답니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가까이 대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ex) 매일 아침 해가 뜹니다. 사실 해가 뜨고 진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해는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다만 지구가 돌면서 해를 향하면 낮이 됩니다. 지구가 해를 등지면 밤이 됩니다. 지구가 해를 향할 때 해가 뜬다고 표현합니다. 말라기 4:2 예수님을 의의 태양으로 묘사합니다. 해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 항상 그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사랑과 은혜의 빛을 항상 비추십니다. 우리가 언제 그 빛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매일 해는 뜨는데, 의의 태양은 마음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요?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예수를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지만,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도 그렇게 먹고 사나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 때문에 근심과 슬픔이 있나요?

그런 근심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일천년간 사단은 그 황폐된 땅에서 방황하며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러 반역한 결과를 바라본다. . . . 타락한 이후로 그는 끊임없는 활동 때문에 반성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GC 660) "For a thousand years, Satan will wander to and fro in the desolate earth to behold the results of his rebellion against the law of God. . . . Since his fall his life of unceasing activity has banished reflection."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사단은 황폐된 지구에서 천년 동안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사단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단이 타락한 이후 끊임없이 활동했기 때문에, 반성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ex)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최신식 호텔들이 있습니다. 그 호텔들에 다 카지노가 있습니다. 모든 카지노 안에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계입니다.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시간가는 것 신경 쓰지 말고 도박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카지노에는 오존(O3)을 통해 신선한 산소를 계속 공급합니다. 쾌적한 공기를 공급할 테니, 피곤해하지 말고 도박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카지노엔 비싼 술을 공짜로 줍니다. 아무리 작은 도박을 해도 술은 무제한 공짜입니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려서 도박에 집중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어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와 비슷하지 않나요?

사단이 만든 교묘한 덫으로, 하늘을 생각하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영적인 면을 돌아보거나, 자녀의 구원을 위한 진지한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비만이 걱정되게는 하는데, 마음에 죄의 습관들이 불어나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게 합니다.

카카오톡이다, 페이스북이다, 사람들과 수없이 연락하게 하지만, 정작 하루에 5, 10분 하나님과 교제하지는 못하게 합니다.

안식일에 교회 와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별 관심을 갖지 않게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세상 근심은 머리 터져라 하게 합니다.

그러나 회개를 가져오고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못하게 막습니다.

 

요한복음 11:35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Jesus wept."

이 구절은 성경 66권의 수많은 구절들 중에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영어로는 두 단어, 한글로는 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는 짧지만, 메시지는 강력합니다.

예수께서 우셨더라. 왜 우셨을까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해서 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내려다보실 때에 그는 고통과 슬픔, 눈물과 죽음이 사람들의 운명임을 보셨다. 각 시대와 각 나라에 사는 인간 가족들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Looking down the years to come, He saw the suffering and sorrow, tears and death, that were to be the lot of men. His heart was pierced with the pain of the human family of all ages and in all lands."(DA 534)

 

예수께서 우신 것은, 사람이 시대마다 미움과 슬픔과 고통 중에 살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신 다음에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다음에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세상 근심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눈물이 있다면, 그것을 보시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풀지 않으실까요?

그 때 그분이 회개의 선물을 주시며, 삶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지 않을까요?

요한복음 11장에서 흘린 예수님의 눈물이 오늘 우리를 향한 눈물은 아닐까요?

 

(ex) CEO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살이, 그거 패키지 딜(일괄 거래)이다.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 . . 한 묶음으로 팔지, 따로 따로 살 수 없더라."(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CEO는 삶이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즐거움과 괴로움을 묶어서 준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인생이 기쁨과 근심을 같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 사단이 주는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은 기쁨도 주고 슬픔도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만 줍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기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짜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진짜 기쁨을 줄 수가 없습니다. 진짜 기쁨은 예수께만 있습니다.

 

세상에 맛을 짜게 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뭐죠? 소금입니다.

세상에 소금 외에 짜게 하는 물질이 있나요? 없습니다. 소금이 유일합니다.

음식이 싱겁고 맛이 나지 않는다면,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

소금 외에 그 어떤 것을 넣어도 짜게 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상의 어떤 유명한 사람이, 높은 명예와 풍족한 재물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27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온 세계가 이 돌(예수) 위에 걱정과 근심의 짐을 놓을지라도 이것은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다."(DA 598) "The entire world may lay upon it their burdens and griefs; it can endure them all."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근심을 지고 있는 그대로 예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 근심을 제거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 다 내려놓는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려놓은 것 같은데 또 걱정이 되면 또 내려놓는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계속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여러분의 어떤 무거운 짐이라고 다 받아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드디어 차원이 다른 근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게 됩니다.

회개를 이루는 근심, 구원을 얻는 근심 말입니다.

돌아오는 한 주간 매일 아침 의의 태양을 바라보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근심과 함께 회개와 구원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 재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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