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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강해-다른복음은 없다
갈라디아서 1장 6-10절 / 김효성 목사
➤“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 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어떤 자들이 있도다. 8.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셨다.
➤“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 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구출하시려고 우리 죄들로 인해 자신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갈 1:4-4).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랐다. ‘다른 복음’이라는 말은 ‘내용이 다른 복음’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과 내용이 다른 것을 가리킨다.
갈라디아 교회가 은혜의 복음을 속히 떠난 것은 사람의 연약성을 보인다. 이것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신명기 9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목이 곧고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속히 떠났었다(신 9:7, 12-13, 16, 24). 사람의 연약성은 구원 얻은 성도들 속에도 있다(롬 7:18-25).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우리를 붙드심이 아니고서는 오늘날 우리도 은혜의 복음을 속히 떠날 수 있다.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좇아간 것은 이상한 일이었으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주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이었지만, 이 교회 속에 다른 복음이 용납된 것이다. 역사상 기독교회 안에는 다른 복음들이 적지 않게 들어왔었다. 천주교회를 비롯하여, 각종 이단 종파들과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은사주의는 다른 복음들이다. 그것들이 역사상 기독교회 안에 용납되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7.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어떤 자들이 있도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말은 그것이 다른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다른(different) 복음은 다른 하나의(another) 복음이 아니었다. 복음은 여러 개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유일하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환경에서도 다른 내용이 될 수 없다. 아무도 복음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고 하였다.”는 말은 다른 복음이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보인다.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하나님의 일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파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었다. 여기에 다른 복음의 나쁜 목적이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소식인데, 어떤 사람들이 그 복음을 변경시키려고 다른 복음을 만들어 전파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의 가감이나 변경은 결국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상 사탄의 활동들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교회들을 어지럽히고 부패시킨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1서에서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교훈하였다(요일 4:1).
➤“8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이라는 말씀에서 ‘전한’이라는 원어(εὐαγγελίζηται 유엥겔리사메다)는 과거시제로서 복음이 이미 그들에게 전해졌음을 나타낸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들이 이미 전한 복음, 초대교회에 이미 전해진 복음이다. 복음의 내용은 이미 전해졌다. 그 내용은 확정되어 있다. 기독교 복음은 결코 시대마다 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복음의 유일성과 확정성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은 사도 바울 자신이라도 변경할 수 없고 하늘로부터 온 어떤 천사라도 변경할 수 없는 성격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하물며 오늘날 누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을 변경시킬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 내용을 변경시킬 수 없다. 그러면 그 복음은 지금 어디에서 확인되며 확증될 수 있는가?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확인되며 확증될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신약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제시되어 있고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 바울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며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복음이다. 복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그것을 믿고 전한 사도들의 믿음이었고 또한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고 증거 되어 있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확인에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며, 그 중에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는 말씀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보인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자기 생각대로 임의로 변경시키는 것은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매우 악한 일이며 사탄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라는 표현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새로운 것이거나 처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인다. 이 경고는 이전에 이미 했던 것이고 다시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한 저주를 반복하여 다시 선언하는 것이다. 다른 복음들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일이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사탄의 방해 때문에 죄절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의 받은”이라는 원어(παρελάβετε 파렐라베테)도 과거시제로서 복음이 이미 그들에게 전달되었음을 보인다. 복음은 초대교회가 이미 전달 받은 것이요, 갈라디아 교회도 이미 받은 것이었다. 기독교 복음은 옛날부터 즉 사도 시대로부터 전해온 것이며 믿어온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전통적인 것, 옛것이다. 복음 신앙은 새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에 없었다가 어느 날 누가 비로소 깨닫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복음을 믿는 신앙은 사도적, 전통적 신앙, 곧 옛 신앙이다.
물론, 전통적인 것이 다 옳다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전통도 있고 순수하지 못하고 불순해진 옛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내용이며 섞인 것들을 제거시키고 순수하게 보존해야 할 옛것이다. 본래 사도들에게 계시되고 사도들이 전파하고 선언한 그 옛 복음은 확정된 내용이어서 아무도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거기에서 무엇을 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 기독교’ 혹은 ‘옛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받은 그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변질되고 있었다. 교인들은 목사들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양들은 순진하여 목사들을 그냥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목사들의 책임은 크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목사들을 더 엄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아님이니라](전통사본, syr).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좋게 하거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종’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감히 인간의 생각으로 변경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변경하는 자들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본문 말씀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다른 복음은 없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 바울과 그 외의 사도들, 즉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이며 초대교회가 ‘받은 복음’이다. 그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증거 된 대로 죄인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내용이다.(롬 3:21-24; 갈 2:16).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기독교는 참으로 옛것이며 복음 신앙은 참으로 옛 신앙이다. 역사상, 다른 복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회와 각종 이단 종파들과 자유주의 신학과 은사주의가 다른 복음들이다.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이 다른 복음들로 인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잘 지켜야 하고, 이 믿음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둘째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은 없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변경하고 왜곡시키고 부정하는 것은 그들로 구원 얻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들을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저주받을 큰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배교와 타협과 혼돈(混沌)은 모든 사물이 마구 뒤섞여 있어 질서가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이다. 무질서가 만연한 시대에는 목사들과 성도들이 넓은 길, 포용적인 길을 가기 쉽다. 그런 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옛길, 좁은 길은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아마 많은 원수들이 있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한, 우리는 타협적이고 포용적인 넓은 길로 갈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일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배교자들과 타협자들과의 교제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지키며 그 믿음만 힘써 전파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