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갈라디아서 6장 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제목: 씨앗의 복음
I. 서론
독일에 저명한 사회학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는 막스 베버입니다. 30세의 나이에 독일대학의 정교수가 되었습니다. 아주 비범한 인물입니다. 그는 책 한 권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책은 현대 사회사상분야의 최고의 고전입니다. 그 책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입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개신교가 득세했던 곳에서 경제와 문화가 부흥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먼저 선진국에 푸른 색으로 동그랗게 표시해 보십시오. 그리고 다른 세계지도에 기독교국가들을 표시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두 지도를 겹쳐 보십시오. 그러면 한 두 나라를 제외하고 정답지를 맞춘 것처럼 일치합니다. 기독교국가가 곧 선진국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버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기초한 생활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서구에서 산업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향상하게 된 것이 청교도의 사상 덕분입니다. 청교도의 사상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성결한 생활, 성실한 생활, 절제하는 생활,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성실한 노력을 통하여 부를 축척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노력 없는 결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생활에서 차근차근 쌓아서 생활을 세워가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청교도 사상의 뿌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말씀을 통해 4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수학의 원리 (7절)
첫 째 수학의 원리입니다.
본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수학의 공식은 정확합니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1+1= 2입니다. 2+2=4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계산됩니까? 없습니다. 미국사람이나 사우스 아프리카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누가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씨앗을 하나 뿌리면 반드시 줄기 하나가 올라옵니다. 10개엔 10개의 싹이 올라옵니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옵니다. 불교인이 심어도 콩에서는 콩이 올라옵니다. 천주교인은 어떨까요? 기독교인은 어떤가요? 어떤 종교인이 해도 콩 심으면 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변덕스런 생각에 따라 편을 나누고 편애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사람은 콩을 심어 놓고 팥이 나오길 기다립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같은 지능을 가진 두 학생이 있습니다. 한 학생은 기독교인이고 다른 학생은 비 기독교인입니다. 기독교인이 한 시간 공부했습니다. 비기독교인은 2시간을 공부했습니다. 누가 더 좋은 성적을 받을까요? 수학의 원리입니다. 신앙의 신조와 관계없이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이 더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시험치는 순간에 기도해서 좋은 점수를 맞으려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면 결국에는 그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혹은 게으름뱅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낙후될 것입니다. 학생들과 청년들은 특별히 이 원칙을 맘에 꼭꼭 새겨 두어야 합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지만 이것이 기독교의 기본 원리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아마추어 사진 작가가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몇 장 가지고 갔습니다. 그 사진을 본 주부가 “카메라가 참 좋은 가봐요. 사진이 잘 나왔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 작가가 말했습니다. “이 집은 밥 솥과 냄비가 좋은가 봐요. 음식이 참 맛있었어요”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뿌리는 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긍정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참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서 자기 인생을 망치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대학동창이 만나서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야! 자네 정말 오랜만이야.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폭 싹 늙었어? 늙은이 다되었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야! 너 자신을 제대로 봐라!. 자기 꼴은 어떻고?”
기독교는 철저하게 심는 종교입니다. 심지 않는 데서 거두는 종교가 아닙니다. 산에 가서 빌면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땀 흘리는 종교요 부지런한 종교요 씨를 뿌리는 종교입니다.
2. 시간의 원리 (9절)
두 번째 시간의 원리가 있습니다.
본문 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심고 저녁에 거두려고 합니다. 한 두 달 노력해보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면 그 결과는 가을에 걷게 되어 있습니다. 더 큰 수확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과 나무를 심었다면 그 사과 나무에서 열매를 걷기 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가야 합니다.
예전에 서울학원교회에서 설교예배 전에 짧은 어린이 설교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어린이 설교를 들었지만 기억나는 설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한 어린이 설교가 있습니다. 기억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존과 메리라는 남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존과 메리의 친구들이 공놀이 하자고 남매를 불러 내었습니다. 그 남매가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엄마 친구들과 나가서 놀아도 되요?’ 어머니는 씨앗이 든 한 통을 주며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텃밭에 씨앗을 다 뿌리고 난 후에 가라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에 세 개의 씨앗을 뿌리도록 했습니다. 자매는 씨앗 통을 받아 들고 부지런히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걸음에 세 개, 또 한 걸음에 3개 차근 차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가다가 통을 보니 아직 가득 씨앗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씨앗을 10개씩 뿌렸습니다. 그래도 가득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는 한 주먹씩 이곳 저곳 흩어 뿌립니다. 마지막에는 한 곳에 몽땅 남아있는 씨앗을 모두 뿌렸습니다. 밭을 보니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일은 정리된 듯 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어느 날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집에 도착했을 때 존과 메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밭에 씨앗들이 올라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줄에는 일정하게 씨앗이 가지런히 자라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줄에는 많은 씨앗이 한꺼번에 자라나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는 씨앗들이 무더기로 자라나 있었습니다. 그 날 존과 메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너희들이 한 일이 어떤지를 이제 보았겠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이렇게 드러난단다. 앞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 조용히 타일러 주었습니다. 존과 메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좋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올 해 봄에 우리 교회의 김성희 집사님을 중심으로 몇 교인들이 저희 집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잡초들을 제거하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 씨앗이 심겨 졌을 때 어떤 식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뿌려진 모든 씨앗은 이렇게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요즘은 인스턴트 시대입니다. 모든 것에서 빨리 결과를 보려고 합니다. 기다림이 없습니다. 공부해도 두 달을 제대로 참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영어를 잘하길 기대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세대입니다. 지긋이 일년 혹은 이년을 꾸준히 두드려야 무엇이든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직장을 잡는 사람들이 이력서를 씁니다. 그 이력서를 쓸 때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6개월 혹은 일년 단위로 자주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은 그 기록을 안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기록들은 지원자가 시간을 버티며 자신을 훈련시키는 끈기가 없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엉덩이를 지긋이 의자에 걸치고 버티는 사람이 공부를 잘 합니다.
머리가 조금 떨어지면 다른 사람보다 4배 더 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되면 8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그래도 상대가 안되면 16시간 투자하면 됩니다.
저는 천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노력을 안 해도 어떤 분야의 톱의 자리에 오르겠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천재들이 탑에 오르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적어도 두 세배 더 노력해서 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중한합회의 손윤호목사님 딸 손 에스더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아이큐가 150이 넘습니다. 하버드대학 박사를 마치고 지금 스텐퍼드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저희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당시 에스더는 중학생이었습니다. 베리엔스프링스의 공립학교에 한 달 정도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공부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새벽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정리를 했습니다. 단어장을 찾아서 단어의 뜻을 다 찾아보고 완벽히 예습해서 공부할 내용을 정복했습니다. 모두가 잠잘 때 그렇게 매일을 새벽까지 공부했습니다. 만약 어떤 평범한 머리를 가진 학생이 그렇게 공부했다 해도 분명 학급에서 상위권을 차지 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에서 천재로 알려진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래의 일에 대해서 빨리 갈 필요 없습니다. 천천히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습니다.
3. 은혜의 원리 (10절)
세 번째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행하되”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행하라고 합니다.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씨앗에 당신의 품성을 담아 두셨습니다. 모든 씨앗에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씨앗에서 한 개의 열매만 주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에 60개 100개의 열매들이 열리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에 덤을 얻어서 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의 사람들은 주로 수학의 법칙아래서 살아 갑니다. 상대방이 하나를 주면 하나를 주고 두 개를 주면 두 개를 받아야 만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세상이 삭막합니다. 조금 후하게 은혜의 법칙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수학의 법칙과 시간의 법칙은 일반인들과 타종교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이요 윤회의 법칙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남에게 베푼 만큼 이생에서든 내세에서든 내게 돌아온다는 법칙입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도 그런 이해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 차원을 넘어서 은혜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코미디언 가운데 김신영씨가 있습니다. 무명시절 그녀의 고 3후배가 떡뽁이를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주머니를 뒤졌는데 200원 밖에 없었습니다. 공원을 뒤져서 50원을 찾아내었습니다. 그 250원을 가지고 리어카 떡뽁이 집에 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떡뽁이 250원 어치만 주시면 안되요?" 그 아주머니는 "윤다훈씨도 그 떡뽁이 먹고 잘 되었어 힘내요!" 라며 떡뽁이를 듬뿍 담아주었습니다. 그녀는 구석에서 그 떡뽁이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녀는 코미디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금을 가지고 그 떡뽁이 집으로 가서 같은 양의 떡뽁이를 20만원을 주고 사먹었습니다. 나중에 더 성공하면 그 아주머니에게 떡뽁이 가게를 차려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은혜의 원리로 사는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우리 사람들도 은혜를 갚을 줄 압니다. 작은 친절을 배로 더해 은혜를 갚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친절에 대해서 더욱 풍성히 은혜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작은 재능을 드릴 때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마19:29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친절과 노력에 최소 30배에서 100배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은 은혜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자식들의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착한 자식도 악한 자식도 사랑합니다. 예전에 나이 든 어머니를 골목길에서 심하게 때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팔이 부러지고 이빨도 부러 졌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아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한사코 자신이 미끄러져 넘어져서 다쳤다고 아들을 변호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받을 가치가 없는 대상에게 주는 호의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따라 취급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터넷에 보면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방울 토마토씨를 뿌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착한 사람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도록 할 것입니다. 저에 대하여 훼방하는 사람에겐 방울 토마토 줄기에 방울 토마토 하나만을 달리게 할 것입니다. 그 방울 토마토가 잘 자라서 먹을 만 하면 곤충이 와서 먹어 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악담을 하는 사람이 방울 토마토를 심어도 주렁주렁 열매가 열리게 하시는 은혜로운 분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우리의 삶에 안정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4. 영성의 원리 (8절)
네번째는 영성의 원리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것이 우리가 씨앗에서 얻어야 할 가장 귀한 교훈입니다. 지금까지 씨앗의 교훈이 점점 더 높은 단계로 올라왔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수학의 원리> 시간의 원리> 은혜의 원리> 영성의 원리 이렇게 더 놓은 단계로 상승했습니다. 가장 높은 단계는 영성의 원리입니다. 괄호 안에 여러 숫자를 더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숫자가 더해 집니다. 그러나 괄호밖에 마이너스가 표시되어 있으면 모두 마이너스가 됩니다. 사람들이 노력해서 많은 것을 쌓았다 해도 하나님이 없이 살았다면 그 삶에 대한 평가는 결국 마이너스 입니다. 이 세상이 살아갈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이선로 목사님으로부터 멜을 받았습니다. 그가 수원학원 원장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의 멜 속에 다음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영통학원 코디 JOY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조이는 아침에 가장 빨리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교사입니다. 학원의 원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아주 모범적인 교사입니다. 자신은 저녁 7시에 수업이 끝나면 퇴근하면 되는데 9시 40분에 나가면서 불을 끄고 문단속까지 하고 퇴근합니다.
얼마 전에 CCTV로 보았는데, 나갈 준비를 다하고 등록 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좋은 교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교사가 더 많아져 삼육 학원이 성장하고 발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 드리며 수원학원에서
기도하며 영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원장이 그녀를 지켜 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생활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늘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아 갑니다. 화잇부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주시하시고 모든 미소를 보신다” (생애의 빛 85)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일어나는 순간을 보았습니다.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교회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우리의 모습도 보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은혜로 이끄시는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숨을 거두면 먼지로 사라질 존재들이 아닙니다. 영생을 약속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씨앗에 영생의 약속을 담아 두신 하나님을 늘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III. 결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4 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수학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둡니다.
둘째, 시간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두는 것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그 결과가 따르게 됩니다.
셋째, 은혜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에 보너스를 얻어 주십니다.
넷째, 영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땅의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히 썩어지지 않을 것들을 위하여 삽니다. 수학의 원리에 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은혜의 원리- 영성의 원리에까지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영을 심고 영을 거두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
최 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