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울 곳
왜,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있잖니?
묘역을 잘 단장해 놓은 게 아니라
그냥 밭 한 모퉁이를 돋우고 모셨잖아.
이쁘게 가꾼 것도 아니고 해마다
풀이 우거져 무성한 풀밭이 되지 뭐니.
8월 명절 이전에 벌초하긴
하는데 뽕나무 뿌리도 질기고
환삼덩굴이 어찌나 극성인지
이겨낼 재간이 없더라.
내 생전에, 기력이 남아 있을 때,
두 양반을 수목장으로 모시려고 해.
어딘가에 얼마간 돈 주면
'나무무덤' 돌봐주는 데가 있긴 있다더라.
아마 소나무 아래면 좋겠지?
솔가지 아래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는 법이거든.
거기 부모님 묻고, 한쪽 옆에 나도 누웠으면 해.
나 가고나면 산소 돌볼 사람이 누가 있겠니.
네 형은 멀리 사니 네가 들으렴.
물론 아직 때가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을 게야. 새겨두라는 말이지.
누워서 편안한 곳, 어딘들 어떻겠니?
바람은 부르지 않아도 불 것이고,
비도 슬며시 왔다 가고,
햇살이 이마를 짚어주겠지. 그럼 된 거지.
산 중턱이면 호사를 누리겠네.
아랫녘 들판을 굽어보다,
누가 낟가리 쌓는지 보기도 하고,
아님 첩첩산중에 나무끼리
숙덕거리는 소리에 지칠 즈음,
봄꽃 향기인지 갈잎 냄새인지
킁킁대는 것도 좋겠지.
눈이 무겁게 내려 솔가지 찢어져
내 어깨를 눌러도 불평하지 않을게.
그 정도야 살아오며 참았던
시커메진 울음에 비하겠니.
새벽빛이 환한 날 그냥 문자 좀 보내봐.
그럼 나도 혼잣말인 듯 답할게.
난 와이파이 없이도 너희 목소리는 다 듣거든.
- 정한용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