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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철의 역사교실

제주시 화북1동 동주원물/행기물 터

작성자고영철|작성시간26.06.05|조회수21 목록 댓글 0

위치 ; 제주시 화북1동 4724-5번지의 북쪽(도로에 편입됨) 오현중고등학교 동쪽 4거리 남동쪽
유형 ; 수리시설
시대 ; 미상(조선~현대 추정)

조선시대 도내에 설치됐던 원(院)은 물이 귀한 지역 특성을 감안하여 비교적 물이 좋은 곳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오현학원 동남쪽에 설치됐던 동제원의 경우, ‘동주원물’(행기물)을 의지하여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주원물이 유명했으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일주도로 확․포장 사업으로 인해 매립돼 자취를 잃고 말았다.(잊혀져가는 문화유적) 샘이 있던 곳은 도로 한복판이 되어 버렸다. 행기물이라고도 했는데 호종단이 수맥을 끊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는 전설이 이곳에도 전해 내려온다.

제주시 영평동 행기물이나 표선면 토산리 노단새미, 서홍동 지장새미와 같이 호종단의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중국 송나라의 왕이 지리서(地理書)를 보다가 고려국의 산세와 지세가 특이한 형국인 것을 감지하고 걸출한 인재가 많이 나타날 형세로 판단했다. 그래서 풍수에 능통한 술사(壓勝術士) 호종단을 불러 고려의 제주에 건너가서 지혈을 끊어 인재가 태어날 것을 방지하도록 지시했다. 서귀포교육청에서 발간한 '우리고장현장체험학습'에는 이 때 끊어야 할 혈이 열세 곳이었다고 한다.
호종단은 제주도에 도착한 후 여러 곳의 지맥과 수맥을 끊으며 돌아다녔다. 이에 앞서 마을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백발의 노인이 위급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저기 물을 한 그릇 떠다가 감추어 달라고 했다. 지금 자신이 쫓기고 있으므로 누가 찾아와서 묻거든 모른다고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농부는 놋그릇에 물을 떠다가 쇠질메(소길마) 밑에 놔 두었다. 곧 이어 호종단이 나타나 밭 가는 노인에게 "이 근처에 꼬부랑 나무 밑에 행기물이라고 있다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모른다고 하자 호종단은 부근에서 '꼬부랑 나무 밑에 행기물'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분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술서가 틀렸다며 찢어 버리고 돌아갔다. 이 때 호종단이 데리고 다니던 개가 소길마 주변을 킁킁거리며 다녔는데 농부가 자기 먹을 점심을 먹어버릴까 해서 쫓아 버렸다고 한다. 호종단이 그걸 모르고 물혈을 못 끊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고향인 ᄀᆞ는새마을(서회천)에서 제주시내를 걸어서 오갈 때 이 물가에서 쉬고 물을 마셨었다. 물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지름이 2m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솟아나는 물이어서 물맛이 참 좋았었다. 주변에는 논밭도 형성되어 있었다.
《작성 141231, 보완 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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