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조천읍 조천리 3140번지[신북로195]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교육기관(초등학교)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이다. 연북정에 설립한 사립의흥학교가 조천초등학교의 전신으로 보인다. 의흥학교의 설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견이 있다.
1906년 3월(조천초등학교 누리집,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1908년 2월(1908년 10월 6일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보도)
1921년 6월 30일 조천공립보통학교 설립인가(전남고시 53호)를 받았다.
1922년 11월 1일 개교(조천초등학교 누리집)
그러나 양세현의 주장에 따르면 이보다 앞선 시기에 조천공립보통학교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있다.
①1921년 9월 6일 개교(1937년 전라남도 제주도청(濟州島廳) 발행 제주도세 요람)
②조천공보교는 신좌면 조천리에 있으며, 대정9년(=1920년) 창설하여 현재 학급 수 4개 외에 부설학교 2학급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1924년 7월 전라남도 제주도청 발행 “미개의 보고 제주도” 41쪽)
③“제주청년 대운동회”제하 기사에서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에서는 일반청년들의 발기로 조천공립보통학교 및 제주면 화북리와 구좌면 행원리 양리의 개량사숙을 연합하여 지난 5월31일과 6월 1일간 동리 죽헌에서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는데…”라고 하고 있다.(1921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현재 학교당국이 개교시점으로 잡고있는 1922년 11월 1일보다 1년 반 앞서, 제주도세 요람 등의 기록보다도 3개월 빠른 1921년 6월에 조천공립보통학교에서 인근 지역 학교 학생들을 모아 체육대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학교가 공식 개교 시기로 잡고 있는 날보다 더 앞선 날짜에 이미 조천공립보통학교의 존재가 나타나고 있다.
1931년 1월 1일 신년축하식을 거행하는 데 학생 전체가 일본국가와 칙어봉답가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동학생으로 지목된 고담룡, 김순재, 김문원, 한을룡, 김봉택 등 7명을 퇴학시키고 다른 5명에게는 정학시켰다. 제주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 4명이 이 학교 졸업생 김계삼, 김평원, 안세용, 고희문, 한석중, 김시홍, 이만구, 김형수, 이병화, 김철배, 신약한, 김계완 등을 배후인물로 검거하여 학생 김문원과 함께 본서로 잡아갔다. 1일 밤에는 교장습격을 기도하였다고 함.
이후의 일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38. 04. 01. 조천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 변경
1941. 04. 01. 조천공립국민학교 교명 변경
1950. 05. 01. 조천국민학교 교명 변경
와흘, 대흘리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대흘분교장이 소속되어 있었으나 1962년 10월 16일 대흘분교장을 국민학교로 승격, 분리하였다.
1964. 09. 01. 교래분교장 설치
1981년 2월 5일 병설 유치원 설립인가
1983년 3월 1일 신흥국민학교가 분교장으로 격하됨에 따라 조천교 소속으로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조천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0. 03. 01. 조천초등학교 신흥분교장 본교에 통폐합
2014. 02. 14. 제90회 졸업(총 8,275명 졸업)
2014. 03. 01. 13학급(특수학급 포함) 편제
●교가
하늘에 높이 솟은 한라의 정기 받고/푸르른 태평양의 기상을 내다보며
선열의 순국정신 길이 빛날 이 땅에/씩씩하게 자라는 조천교 어린이.
2026.01.14. 제102회 졸업(남 23명, 여 15명, 계 38명 졸업) 누적 졸업생 총 8,830명
2026.03.01. 16학급 편성(특수학급 2학급 포함)
(참고자료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김지혜,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조천초등학교 누리집, 제주고등학교문학모임터 카페 2009. 12. 29. 양세현의 주장)
《작성 141229, 보완 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