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아라1동 2686-3번지. 제주여고 서쪽 둘째 남쪽 골목 가다가 첫째 서쪽 골목으로 80m 정도 되는 곳에 있다.
시대 ; 미상(1947년 추정)
유형 ; 표석
표석은 자연석의 한 면만을 깎아서 글자를 새겨 독특한 모양이다. 글자는 앞면에만 있고 氷寒이라고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왼쪽 아래에 작은 글씨로 靑年 一同라고 음각하였다. 비석 남쪽의 건물은 취수장이다. 이 마을 출신의 말로 샘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송장환님의 조사에 따르면 이 표석의 옆에 있는 의사비(義思碑) 2기는 지금의 관정이 있는 곳에 있던 물통(당시 이름 쿳남새미, 큇남새미)이 아닌 지금은 매몰되어 버린 지금의 관정 우후방에 새로운 샘을 팔 때 출연한 분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독비에 쓰인 분(吳容杓)이 반을 담당했고 또 다른 비에 있는 세 분(吳珠杓, 金奎海, 金仁壽)이 반을 담당했다고 한다. 의사비에 새겨진 해는 단기4280년(1947)이다.
빙한 표석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한다. 이 표석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모르나 의사비 세울 때 없었다고 말하는 집안이 있고, 의사비가 세워질 때 마을 청년들이 당시 마을 훈장인 김영문에게 빙한(氷寒)이라는 글자를 받아서 새겼다고 말하는 집안이 있다.
훈장이 청년들에게 빙한(氷寒)이라고 써 주었다면 두 가지의 뜻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생수는 차가워야 깨끗하니까 이 새로운 샘에서 얼음 같이 찬 물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 둘째는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과 댓귀가 되는 빙한어수한어수(氷寒於水寒於水=얼음은 물이 얼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물보다 더 차다)의 氷寒을 써서 마을 청년(제자)들이 선대(스승)보다 더 나은 사람 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필자는 샘물이 나는 곳에 세우는 표석이므로 물과 관련된 글귀를 가지고 청년들에게 금언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보아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의사비(義思碑)들은 옮겨졌다. 옮겨졌다고 보는 이유는 구산거사오용표의사비의 〈碑〉자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송장환님이 매몰되었다고 하는 샘터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처음 세울 때는 세 분의 이름을 쓴 의사비보다 구산거사의 비석을 조금 더 크게 만들었을 것인데 옮겨 세우면서 높이를 같게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좌우 위치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혼자서 소요경비의 반을 내놓아서 독비를 세운 것이라면 보는 사람의 위치에서 오른쪽에 세웠을 것이다. 의사비 2기와 빙한(氷寒) 표석이 처음부터 한 곳에 있었는지 각각 따로 있던 것을 모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성 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