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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di - Writing

[드라마 감상문] '북쪽의 나라에서(北の国から)'를 보고...

작성자jungdi|작성시간20.02.23|조회수1,555 목록 댓글 0




















드라마 '북쪽의 나라에서(北の国から)'를 보고...


 나는 2주일간의 홋카이도 여행에서 어제야 비로소 돌아왔다. 홋카이도에 있는 동안 당연히 그 어떤 곳도 가보거나 들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홋카이도에의 정신적 여행이었고 더구나 과거로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의 여행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현실의 비좁은 여행이 아닌 초현실의 대하적인 경험이었으므로 마치 수 십 년간 직접 현실에서 살아온 것 같은 경험적 기억으로 나의 뇌와 옴 몸의 감각에 지독하게 깊은 상처 자국처럼 남아 있으리라. 그리하여 이제 돌아온 현실은 여행 이전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이러한 여독으로 인한 피로와 후유증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끝난 후에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염색되어버린 가슴과 머리는 고착된 습관처럼 새로운 나로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그동안 있었던 곳은 홋카이도의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후라노'시와 '로쿠고'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일 년의 반이 겨울인 그곳의 겨울은 곰이나 북극여우 조차도 쉽게 살기 힘든 일상처럼 눈보라가 치는 눈의 마을이지만 그 모든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보상처럼 가득한 고장이었다.


 선조들의 짐승적인 투지와 피와 땀으로 일구어 저서 이제야 조금 인간이 살만한 땅으로 만들어진 그곳, 눈으로 가득한 평야와 숲 속으로 어느 날 한 가족이 좇기 듯 들어왔다. 


 단지 눈과 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이미 허물어진 폐가에 도착한 이들은 열 살의 소년 '쥰'과 여동생 '호타루'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고로'였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이 숲 속의 폐가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버리고 도망쳐 나왔던 이곳에 그동안 도쿄라는 문명 속에서만 살아온 이 어린 남매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살 수는 있을까.


 그들은 당장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허물어진 외벽을 대충 막고 불을 피우면서 이 기나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드라마는 시나리오 작가 '쿠라모토 소우(倉本 聰)'원작의 후지테레비 대하드라마 '북쪽 나라에서(北の国から)'이다. 총 24편에 걸친 연속 드라마와 6편의 사후 스페셜 편으로 되어있다. 각 편마다 소제목이 붙어있는 이 장편드라마는 1981년부터 시작하여 2002년 '유언'이라는 소제목의 SP 드라마로 막을 내리지만 이후에도 또 스페셜이 나올지는 모른다. 마치 역사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는 지금도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은 이 드라마는 20년 동안 이어지는 이 드라마는 같은 곳에서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으므로 10살과 8살의 어린 배우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내내 출연한다. 또한 초기에 젊은 배우들은 중년이나 노년이 되어있다. 어떤 때는 각 편마다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어둠의 통로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어 신비한 어둠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많은 일본 드라마를 봤지만 이 드라마는 일반적인 드라마들과는 분명 달랐다. 일반적인 일본 드라마들이 일본의 사회적인 계몽성에 물들어 대개 소재는 다르더라도 전개 방식이나 결말 그리고 교훈 등은 거의 한 사람의 작품처럼 비슷하였지만 여기서는 그것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첫째로 사실적인 순문학의 요소가 강하다.  이 드라마는 어린 남매의 성장소설이고 어린이의 시각으로 본 마을의 이야기이다.  연속되는 화자인 '쥰'의 독백 내레이션은 그 표현이 매우 문학적이다.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혼자서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갖게 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역시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5:4의 비율임에도 영상미가 뛰어난데 그것은 쉽게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처럼 어떤 화면은 몇 초의 화면을 담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기다린 흔적이 보인다. 영상들은 당시의 온도와 바람의 냄새까지 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세 번째로는 스토리 전개가 얄팍한 설정이 아닌 매우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목적을 위한 가볍고 쉬운 희생의 전개 라든가 억지로 짜아낸 달콤함 같은 것이 없다. 우리들 누구나 흔히 있을 수 있거나 가지고 있는 상처 같은 것들을 향료의 첨가 없이 생 맛을 내어주는 것이다. 늘 부채가 증가될 수밖에 없는 농가의 구조와 남녀관계의 모순에 대한 솔직한 이중 감정 같은 현실들 즉 누구나 안고 있는 모순들을 그대로 맞딱들이게 하고 그것에 대한 결과도 해피 엔딩과 같은 당류가 제거된 파산 이라든가 죽음 같은 날것을 그대로 대면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보고 느끼는 독자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허망함 같은 감정은 그 어느 드라마 보다도 진실한 것이 된다. 


 전체적으로 이 드라마는 작은 기쁨들 보다는 슬프고 억울하며 아련하다. 그렇지만 아름답다. 또한 그런 가공되지 않은 사실적 슬픔은 보는 이에게 가벼운 위로나 망각이 아닌 현실적 희망을 갖게 한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드라마의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사회가 원하는 계몽적인 것들과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래서 이렇게 되어 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같은 것이 없다. 누구에게라도 말하기 민망하고 창피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숨겨진 자화상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자주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민망해지거나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가슴까지 흘러내린 그 눈물의 뜨거움을 느낄 때 비로소 그 눈물자국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간에 어린 호타루가 엄마를 태우고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 달리는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든 장면이다. 만약 그 장면을 보고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갓난아기 이거나 정신이상자일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마도 내가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흘린 모든 눈물보다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매일 보는 내내 연속으로 울었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음악이다. 테마 음악은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라는 가수가 만들었는데 솔직히 너무 가볍고 어설퍼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금 국민드라마처럼 되어버린 이 드라마의 음악을 만든 자부심에 우쭐거리고 있는 듯한데 실은 이 좋은 드라마에 숟가락 하나만 엊은 격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가 상상하지 못할 명작이 되었을 텐데... 그것이 가장 아쉽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인간이 터를 잡고 살기에 부적절한 곳 일수도 있다. 겨울 내내 살인적인 눈바람의 연속이고 여름이라도 언제든지 인간들을 한방에 없앨 수 있는 자연재해가 많은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은 어디에도 없는 겨울의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따뜻한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의 뜨거운 눈물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춥지만 오히려 따뜻한 곳이었다.  그 차갑고 황량한 곳에 있는 마을에서는 길을 가다 만나는 아무나 착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 혹독한 곳이었다. 이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이지만 한 번도 이 드라마가 일본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곳은 일본과 관계없는 그냥 북쪽의 나라였다.




첫회의 남매와 아버지


마지막회의 성장한 남매와 아버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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