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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체(素菴體)의 이해

작성자김정택|작성시간26.06.17|조회수7 목록 댓글 0

소암체(素菴體)의 이해

 

귀지헌 김 정 택

 

(1) 필체(筆體)

 

필체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을 넘어, 한 사람의 내면과 삶의 태도가 시각적으로 발현된 ‘선(線)의 언어’이자 고유한 개성입니다. 옛 서화가들이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학문적 깊이를 평가했던 것처럼, 필체에는 손끝의 움직임을 넘어서는 지각과 정신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필체의 본질은 신체와 정신의 합일에 있습니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뇌의 명령을 받은 손과 팔의 근육, 그리고 지면과 필기구(붓이나 펜) 사이의 물리적 상호작용입니다.

글씨는 점과 선의 역학입니다. 글씨를 쓸 때 가해지는 힘의 강약(필압), 속도의 빠르고 느림(운필의 속도), 그리고 획과 획이 이어지는 흐름(연면)은 매 순간의 호흡과 감정 상태를 반영합니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신체적 고유성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손뼈의 구조, 근육의 발달 정도, 신경계의 반응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글자 형태(자형)를 모방하려 해도 자신만의 독특한 물리적 습관이 서리게 됩니다.

필체는 개성과 습관의 하나입니다. 글씨를 쓸 때 나타나는 개인 고유의 필적이나 글씨체의특징을 필체라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글씨를 쓸 때 힘을 주는 방향, 속도, 자음과 모음을 이어 쓰는 버릇 등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납니다. 흔히 ‘글씨체’라고 할 때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필체를 보아 ‘누구의 글씨인지 알겠다.’처럼 ‘필적 감정’에 쓰이기도 합니다.

결국 필체란 정형화된 글자라는 틀 안에 나만의 호흡과 온기를 불어넣은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이 같은 글을 쓰더라도, 지면 위에 남는 자취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바로 필체가 가장 강력한 개성의 상징이 되는 이유입니다.

필체에서 개성을 만들어내는 시각적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요소글 쓰는 습관개성의 발현
골격
(骨格)
글자의 구조와 자형의 짜임새엄격하고 반듯한 성정
vs 자유롭고 유연한 성정
운필
(運筆)
붓이나 펜을 움직이는 속도와 흐름신중하고 깊은 사유
vs 과단성 있고 거침없는 결단력
묵색/필압
(墨色/筆壓)
선의 굵기와 힘의 안배굳세고 묵직한 강직함
vs 부드럽고 온화한 포용력

 

 

(2) 자체(字體)와 서체(書體)

 

① 자체(字體, 글꼴)

자체(書體)는 서예라는 예술적 영역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문자가 그 문자로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글자의 구조와 도상적(圖象的) 규칙', 글씨를 쓰는 공식적인 양식이나 종류를 말하며, '자학(字學 또는 文字學)'의 영역에 속합니다. "A라는 글자를 어떻게 써야 다른 사람이 A라고 알아볼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자 뼈대입니다.

자체는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규칙과 공통의 양식에 따라 정립된 글씨의 형태나 스타일을 뜻합니다. 개인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틀과 양식'의 영역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실용적·예술적 목적에 따라 발전해 온 '공통의 틀'입니다. 점과 획의 개수, 결구(结构·글자의 짜임새), 부수의 위치 등 구성규칙이 자체(字體)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 목木자는 가로획, 세로획, 삐침, 파임이 결합해야만 木이라는 자체로 성립합니다. 이 규칙이 깨지면 아예 다른 글자가 되거나 오자가 됩니다.

자체(書體)는 글씨의 구조와 틀(형식)을 말합니다. 비유하자면 자체는 자동차의 '차종(세단, SUV, 트럭)'이나 건축의 '양식'과 같습니다. 건물의 기본적인 '방, 기둥, 지붕의 설계 구조' 따위를 말합니다. 자체는누구나 공유하는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틀입니다. "저는 아직 해서체(楷書體)로 습자(習字)하고 있습니다.“고 할 때의 서체입니다.

자체(字體)란문자의 '생김새 자체'를 뜻합니다. 글자가 글자로서 존재하기 위한 기본 설계도와 뼈대를 말합니다. 글자의 외형적 종류와 규칙이며, 서예사적(書藝史的)인 역사적 법칙과 양식으로 결정됩니다. 한자의 역사에서 갑골문, 금문, 소전, 예서, 해서, 행서, 초서로 발전해 온 과정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변천사'입니다. 글자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인쇄에서 말하는 서체나, 컴퓨터에서 쓰는 폰트(Font)는 한문서예의 오체(五體)에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이 있으며, 한글서예체에는 반포체(고어체, 정음체, 판본체, 판각체)와 궁체(반흘림, 흘림, 정자) 등이 있습니다. 현대의 디지털 서체(컴퓨터/인쇄의 폰트)에는 고딕체, 명조체, 바탕체 처럼 한 글자를 구성하는 표준적인 디지털 형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② 서체(書體)

서체는 개인의 필체(筆體)에 속하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개성과 습관'의 영역입니다. 서체는 글씨의 모양이나 스타일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필체와 비슷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중심 의미와 쓰임새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필체는 '개인'의 독특한 손글씨 특징만을 말한다면, 서체는 '예술적'으로 나타내는 개인 필체의 특성을 뜻합니다. 작품을 쓸 때 발현되는 예술적 개성과 서풍(書風)을 서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똑같이 바르고 정자체인 '해서(書體)'를 공부하여 글씨를 쓰더라도, 각자가 가진 고유의 힘과 습관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필체(筆體)'로 발현하게 됩니다. 서예나 글씨 매니아들이 오랫동안 법첩(法帖)을 보고 똑같이 박아내듯 연습하는 임모(臨摹)나 임서(臨書)만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서풍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 필체로써 개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한 개인의 독창적인 필체가 오랜 연구와 예술적 성취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양식으로 인정받게 되면,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처럼 곧 하나의 서체(書體)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3) 서체(書體)의 개성화

 

그 사람의 서체에는 그의 개성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① 정신성과 인품의 시각화(서여이인, 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書如其人)."은 옛 서론(書論)의 오랜 격언입니다. 안진경의 중후하고 강직한 해서(楷書)에서 그의 충의로운 기개를 읽을 수 있고, 추사 김정희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추사체에서 평생의 학문적 탐구와 유배 생활의 고독이 빚어낸 내면의 칼날을 볼 수 있듯이, 필체는 한 인간의 정신적 도량과 성정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② 의도와 무의식의 조화

우리가 의식적으로 단정하게 쓰려고 노력할 때(해서의 영역) 드러나는 균형감과, 반대로 급하게 메모하거나 흘려 쓸 때(행서나 초서의 영역)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리듬감이 있습니다. 이 의도적인 조율과 무의식적인 습관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 사람만의 독특한 '자형(字形)의 미학'이 완성됩니다.

 

③ 축적된 시간의 기록

필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글씨를 쓰는 것만이 아닌 수십 년 동안 읽어온 책, 서사를 대하는 태도, 삶의 궤적도 손끝에 누적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필체는 그가 살아온 삶의 깊이와 개성을 증명하는 움직이지 못할 단서가 됩니다.

 

(4) 서체(書體) 성립에 필요한 기준

 

서예가가 개인의 개성을 담아 쓰는 '글씨체'와, 그 이전에 글자로서 성립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공통적인 구조인 '자체'는 엄연히 구분됩니다. '자체'와 '서체'는 혼용되기 쉽지만, 문자학적 관점과 서예학적 관점에서 층위가 다릅니다.

서체(書體)란 자체의 뼈대 위에 특정 시대나 유파가 정립한 시각적 양식입니다. 비유하면, 한옥, 고딕 양식, 현대식 건물 같은 '건축 양식’에 해당합니다. 즉, 서체(書體)란자체(字體)를 바탕으로, 붓이나 필기구를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해 내는 구체적인 양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해서'라는 자체를 바탕으로 구양순이 쓰면 '구궁체(서체)', 안진경이 쓰면 '안안체(서체)'라는 고유의 서체가 형성됩니다. 바를 정(正) 자를 쓸 때, 가로와 세로 5획의 구조를 정확히 지켜 다른 사람이 正자로 읽을 수 있게 묶어둔 규칙은 자체(字體)입니다. 이 正자를 당나라 구양순의 정밀한 법도에 맞춰 모나고 단정하게 썼다면 이는 구양순의 서체(書體)를 따른 것입니다.

서예에서 단순한 개인의 필적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서체(書體)로 인정받고 성립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미학적, 구조적, 그리고 사회적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20세기 한국 서예계의 거목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1907~1997) 선생의 '소암체(素菴體)'는 전통의 철저한 법고(法古) 위에서 제주의 거친 바람과 자연, 그리고 삶의 예술적 초월이 결합하여 하나의 독자적인 경지를 이룬 서체입니다. 제주의 자연을 붓끝으로 품어낸 소암의 서풍이 개인의 필적을 넘어 독자적인 ‘체(體)’로 인정받으며 정립된 과정은 크게 네 가지 단계와 구조적 특징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4-1. 필획(筆劃)의 일관된 법칙성과 체계성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조건은 점과 선을 긋는 법칙(필법, 筆法)이 독자적이고 일관되면서도 고유한 결구(結構)와 장법(章法)의 미학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서체가 성립된다는 것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바탕으로, 점과 획의 법칙(필법), 글자의 구조(결구), 공간의 미학(장법)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후대에 서예적 규범(역사적 공인)으로 자리 잡음을 의미합니다. 글자 자체의 구조적 짜임새와 공간 배치가 하나의 독특한 양식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점 찍기(측側), 가로긋기(늑勒), 세로긋기(노弩), 갈고리(적趯), 오른쪽 위로 치켜올리기(책策),

왼쪽으로 길게 삐치기(약掠), 짧게 삐치기(탁濯), 오른쪽으로 파임(가장 어렵지만 꽃인 부분; 책磔) 등은 점획의 기본입니다.

▸기필(起筆), 행필(行筆), 수필(收筆): 붓을 대고, 나아가고, 떼는 과정에서 그 서체만의 독특한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서의 '역입평출(逆入平出)'이나 '잠두연미(蠶頭燕尾, 누에머리와 제비꼬리 모양)'처럼 획의 시작과 끝에 명확한 법칙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운필(運筆)의 속도와 리듬: 획을 그을 때의 속도감이나 힘의 강약(돈좌, 頓挫)이 전반적으로 통일된 체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결구법(結構法): 개별 글자의 가로, 세로 비례와 균형을 잡는 방식입니다. 전서가 세로로 긴 '종세(縱勢)'를 취한다면, 예서는 가로로 넓은 '횡세(橫勢)'를 취하고, 해서는 정사각형의 '방정(方正)'한 구조를 이룹니다. 이 구조적 규칙이 글자마다 다르게 적용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장법(章法): 글자와 글자 사이(자간), 줄과 줄 사이(행간)의 여백을 처리하는 전체적인 구도입니다. 행서나 초서처럼 흐름을 강조할 것인지, 해서처럼 엄격한 질서를 강조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필요합니다.

 

4-2. 독창적인 풍격(風格)과 서예미의 구현

글씨를 과거의 것을 완벽하게 베끼는 일에 멈춘다면 그것은 기술자에 불과합니다. 기존에 있던 서체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그 서체만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정신성(풍격)이 있어야 합니다.

고유의 서체가 되려면 단순히 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쓰는 실용성을 넘어, 획의 굵기 변화, 공간의 안배, 필력(筆力)의 운용을 통해 예술적 감상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왕희지의 난정서에서 보이는 유려함이나, 안진경 서체에서 느껴지는 중후하고 강인한 기상처럼 고유한 예술적 성격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고대의 비문을 수없이 연구한 끝에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했듯, 전통의 정수를 흡수한 뒤 그것을 깨뜨리고(破) 자신만의 서풍(書風)을 세우는 과감한 예술적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소암은 고향 제주로 돌아온 뒤, 평생 권세와 명예를 멀리하고 서도(書道)에만 정진했습니다. 이 시기 제주의 독특한 풍토는 서풍을 완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소암의 글씨에는 거친 바람과 파도 같은 필획이 나타납니다. 정형화한 육조체의 틀을 깨고, 제주의 거친 바람과 몰아치는 파도처럼 변화무쌍하고 호방한 기운이 획에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운필(運筆)은 사실 제주의 파도와 바람을 포함한 자연을 닮아있습니다. 획의 굵고 가늠, 빠르고 느림의 리듬감이 극대화되면서 서체에 살아있는 생명력(서조자연, 書造自然)이 부여되었습니다

자체(字體)나 서풍(書風)과 서체(書體)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붓글씨를 쓸 때 3단계 개념을 한 눈에 정리하면 ‘자체 ➔ 서체 ➔ 서풍’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체'가 글씨(字體)의 틀이나 구조(형식)를 받아쓰는 일이라면, '서풍'은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예술적 개성과 풍격(느낌, 정신)을 뜻합니다. 서풍은 같은 서체를 쓰더라도 서예가 개인의 학문적 깊이, 성품, 예술적 해석에 따라 뿜어져 나오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분위기를 뜻합니다. 글씨에서 느껴지는 '바람(風)'이자 '기운'입니다. 비유하자면 같은 세단 자동차라도 제조사나 디자이너에 따라 '우아함', '역동성' 등 디자인 느낌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서예가의 주관적인 예술 세계가 반영되는 것이 서풍입니다.

서풍(書風)의 핵심 개념은 글자에서 풍기는 예술적 기운과 개성입니다. 소암의 글씨에서 풍기는 예술적 기운과 개성이 소암체이자 독창적 서풍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서체는 글씨의 '몸(體)'이요, 서풍은 그 글씨가 지닌 '정신과 풍모(風)'라고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가령, 오늘날 서예가가 구양순의 글씨를 임서(臨書)하면서도, 자신만의 강직하고 담백한 성품을 필선에 녹여내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그것이 바로 서풍(書風)이 됩니다. 즉, 자체는 문자의 경계선(틀)이고, 서체는 예술적 양식(갈래)이며, 서풍은 개인의 내면이 투영된 아름다움(정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두 명필인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가 똑같은 왕희지의 글씨를 본받아 바른 글씨체인 서체의 하나인 '해서(서체)'를 쓴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두 글씨가 모두 '해서체'라는 공통된 틀 안에 있지만, 한석봉의 글씨는 단정하고 정교한 멋이 있고, 추사의 글씨는 거칠고 파격적인 괴석 같은 힘이 느껴집니다. 이때 느껴지는 서로 다른 맛과 분위기를 바로 '서풍이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서풍(書風)을 요약하면, 같은 양식 안에서 서예가 개인의 필력과 성품이 뿜어내는 예술적 기운을 말합니다. 마치 같은 한옥이라도 대목장의 손길에 따라 느껴지는 '품격과 맛'이 다른 것입니다.

 

4-3. 임모(臨摹)와 전승

1955년 고향인 제주도로 귀국한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하며 서예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에도 부단한 정진으로 일본 시기에 체득한 육조해(六朝楷)를 재해석했습니다. 육조해의 강건하고 개성적인 필법을 바탕으로, 왕희지(王羲之)로 대표되는 행초서(行草書)의 전형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서예 세계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에 소암은 육조체의 개성적인 필획과 왕희지 행초서의 유려한 조형미를 결합하여 한국 서단에서 '이채(異彩)'를 띠는 독자적인 서풍을 만들었고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서풍도 후대에 이어지지 않으면 '체'로 남을 수 없습니다. 소암 선생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며 '소묵회(素墨會)'라는 두터운 서예장인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후래 제자들은 그의 서법과 정신을 이어받아 임서하고 연구하면서 소암체는 제주, 영남과 호남을 비롯한 전국 서단에서 확고한 서예 유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묵회(素墨會)를 통한 전승과 역사적 공인이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체본은 제자들이 본받아 배우고(임서, 臨書), 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법첩(法帖)'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에 건립된 '소암기념관'과 그가 남긴 수많은 금석문, 공공기관의 편액, 서적의 제자(題字)들은 소암체가 현대 한국 서예사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양식적 표준으로 공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들입니다. 소암 현중화의 서체는 고전의 뼈대 위에 제주의 자연을 호흡으로 불어넣은 것입니다.

 

4-4. 철저한 프로정신(Professionalism)

프로 서예가는 옛 법도를 깊이 수용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개성과 시대를 담아내는 창신(創新)의 단계로 나아가는 독창성(獨創性)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예가 소암의 프로정신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소암의 프로정신

소암은 서예에 일생을 걸었고 전통을 바탕으로 당신의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서도에 입문후 오직 글씨 쓰는 일에만 전념하여 문인화나 전각 또는 시음(詩吟)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글씨는 도(道)를 닦는 수단일 뿐’이라는 삶과 예술의 일치, 즉 ‘먹고 잠자고 쓰고(吃睡寫)’입니다. 단순히 글씨를 잘 쓰거나, 작품을 팔아 경제적 수익을 올리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수천 년을 이어온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역사를 몸으로 받아내고, 끊임없는 신체적·정신적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적 경지를 증명해 내는 숭고한 태도입니다.

동양 예술에서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書如其人)"라고 했습니다. 서품(書品)과 인품(人品)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졸박(拙朴)하고 담백한 획 하나에서도 깊은 인품이 묻어나도록 내면을 닦는 태도입니다. 프로 서예가는 기술적 화려함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학문적 깊이를 글씨에 투영합니다.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역사와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도덕성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프로정신의 영역입니다. 이미 시대적 검증을 거쳐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있습니다. 비로소 하나의 독보적인 '소암체'로 완성되었기 까닭입니다.

 

2) 기고(技高): 엄격한 법고(法古)와 기량의 완성

이 프로 서예가는 선인들이 남긴 위대한 필적을 철저하게 연구하였고 재현해 내는 임모(臨摹)와 임서(臨書)의 과정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소암 필법의 기초는 북비(北碑)·육조체(六朝體)의 철저한 수련이었습니다. 육조해(六朝楷), 즉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비석에 새겨진 강인하고 소박한 글씨체에 소암체 성립의 뿌리가 있습니다.

소암은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는 한편, 당대 일본 서예계의 대가들에게 사사하며 1950년대 초까지 서예를 깊이 있게 배웠습니다. 특히 쓰지모토 시유(辻本史邑) 등에게서 육조체(六朝體)를 전수받으며 서예의 기본을 확립했습니다. 육조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비석 글씨에서 유래한 서체로, 강건하고 거친 필획이 특징입니다. 이 시기에 소암은 비석에 새긴 글씨인 비(碑)와 법첩에 실린 명필의 글씨인 첩(帖)을 모두 연구하며 북비와 육조체의 골격을 완벽하게 체득했고, 동아시아 서예의 큰 흐름인 비첩 혼융(碑帖混融)을 선도적으로 탐구한 것입니다.

북비 서예 특유의 칼로 깎은 듯한 강건함과 두터운 필력(비파 서풍)은 훗날 소암체의 단단한 뼈대가 됩니다. 소암은 오체(五體)를 아울러 통섭하였습니다. 해서와 예서, 행초서에 이르기까지 고전 법첩을 평생토록 쉬지 않고 임모(臨摹)하면서 고전의 엄격한 법도를 몸에 익혔습니다. 소암체의 파격적인 변화는 법도를 완벽히 장악한 뒤에 나온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결과물입니다.

 

3) 법도의 준수와 지필묵의 일체화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의 엄격한 골격부터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유려한 흐름까지, 각 서체의 고유한 법도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 프로의 기본입니다. 먹의 농담, 종이의 질감, 붓털의 탄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제하여 운필(運筆)하는 기술적 완숙함을 지녀야 합니다. 소암체의 특징을 ① 비첩을 혼융한 조화: 육조체의 힘찬 필획과 행초서의 유려함이 독보적인 미감으로 융합된 경지. ② 야취(野趣)와 고전미: 세속을 벗어난 듯한 탈속(脫俗)적인 야취(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멋)와 더불어 고전 서체의 격조 높은 미감으로 요약하기도 합니다.

 

4) 신독(愼獨):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끊임없는 정진

소암은 당대 최고의 대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육조해(六朝楷)와 고비(古碑)의 필법을 끊임없이 임서하셨습니다. 서예는 철저히 고독한 예술입니다. 수천 번, 수만 번 같은 글자를 쓰며 획 하나, 점 하나를 다듬는 과정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남들의 이목이나 화려한 칭송에 안주하지 않고, 홀로 먹을 갈며 옛 성인들의 필치와 끊임없이 대화했던 그 고독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마침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소암만의 '소암체(素菴體)', 즉 행초서의 최고 경지에 이르실 수 있었습니다.

명성과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 새벽 먹을 갈고 붓을 잡는 자기 절제와 일관성과 지속성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입니다.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호흡을 조절하고 온몸의 기운을 붓끝에 모으는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뜻하는 정신과 신체의 조화입니다.

소암은 92세에 몰하시기 직전까지도 신독(愼獨)으로 끊임없이 정진하셨습니다. '신독지공(愼獨之工)'의 프로정신을 온 삶으로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병상에 누워 계시면서도 손가락으로 이불 위에 글씨를 쓰셨을 만큼 붓을 놓지 않으셨다고 전해집니다. 평생을 서귀포 조그만 거처인 소암기념관(법환동 시절의 먹고 자던 방)에서 "하루 쓰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기개로 지필묵과 함께하셨던 그 치열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70대 이후 노년에 이르러 소암은 서귀소옹(西歸素翁)이라 자호하고 오직 서도(書道) 탐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이는 소암체의 예술적 절정기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기(1970~1990년대)에 선생은 자신의 서예 철학과 깊은 내면세계를 집대성한, 소위 '소암체'라 불리는 서체를 완성한 것입니다. 이처럼 소암체는 일본 유학을 통한 철저한 고전 습득(육조체)을 토대로, 귀국 후 한국 서단의 흐름 속에서 행초서를 재해석하고, 노년에 이르러 자신만의 예술적 경지를 담아내며 완성된, 개성이 강하고 독창적인 서체입니다.

소암의 서예 인생에서 '신독'이 그토록 빛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① 평생을 바친 임서(臨書)의 힘 ② 살아있는 서도(書道)의 실천으로 다가옵니다. 소암에게 글씨는 단순히 종이 위에 먹을 입히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닦는 수행(修行) 그 자체였습니다. "글씨를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과 담박한 삶의 태도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렸던 신독의 경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5) 대중적 통용성과 역사적 공인

소암체(素庵體)는 한국 서예의 거목 소암 현중화(素庵 玄中和)가 일생 동안 서도 탐구와 예술적 승화를 통해 완성한 독창적인 서체를 말합니다. 아무리 개성이 뛰어난 글씨라도 혼자만 쓰고 사라진다면 '서체'로 남을 수 없습니다. 소암체는 세상에 알려졌고 역시적 공인을 받아 있습니다.

 

① 가독성과 통용성

소암체는 세상 사람들이 그 글자를 읽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로서의 기본 기능을 유지합니다. 그것을 정제체(整齊體, 일명 '빤득체')라고도 합니다. 단아하고 장중하여 고결한 선비의 기상이 느껴지는 해서와 예서의 풍격입니다.

② 파체(破體)의 구사

소암은 전통적인 서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서체를 파격적으로 운용하는 파체를 즐겨 구사했습니다. 그래서 소암체만의 구조적 양식을 '방일체'와 '정제체'의 조화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검증 안 된 이야기이지만 소암체의 독특한 풍격을 친근하게 '삐딱체'와 '빤득체'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의 제자의 한 분인 소농 오문복 선생의 방담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소암의 방일체(放逸體, 일명 '삐딱체')란 글자의 중심축이 자유롭게 기울어지며 종횡무진하는 초서와 행서의 흐름입니다. 겉보기에는 붓을 마음대로 휘둘러 비뚤어진 듯 보이나, 시각적 균형과 뼈대는 한 치의 흐름도 놓치지 않는 절묘한 장법(章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암체의 가장 큰 위대함은 "삐딱함 속에 빤득함이 있고, 빤득함 속에 삐딱함이 있다"는 문하의 평가처럼, 자유분방한 흐름(방일) 속에서도 북비의 엄격한 법도(정제)가 중심을 잡아주며 두 성격이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③ 초서풍 한글 서체의 창안과 외연 확장

한자 서예에서 이룬 소암의 성취는 한글 서예의 독창성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한문과 한글을 한 가지 필법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한글 서예에도 독특하고 뛰어난 경지를 이룬 것입니다. 글자 자체의 음양 요소를 역동적으로 배치하는 공간 경영이 특질입니다. 소암은 한자의 행초서가 가진 유려한 필법과 공간 구성 능력을 바탕으로, 한글과 한자를 관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암의 한글체는 서간문이나 금석문 같은 당신의 필요, 또는 취미수준의 필체였지 전승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암은 한글 체본을 남기지 않았고 당신을 본 받아쓰기를 권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소암의 한글체를 소암체라 말하는 서평은 수준이 낮고 가소로운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소암체는 소암의 프로정신을 표출한 것입니다. ‘법도(法)를 철저히 지키되 법도에 갇히지 않고, 붓 한 자루로 자신의 온 삶과 정신을 종이 위에 가감 없이 책임지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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