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살아요
김혜연
토끼에게 줄 당근을 씹어 본다
내 입맛은 몇 번쯤 바뀌었나
동물원에 못 가본 내가 쪼그려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토끼는 건성건성 당근을 씹는다
살아요,라고 말할 때
죽음이 떠다닌 건 몇 해쯤 되었나
죽음이라는 게
당근처럼 한낮처럼
토끼처럼 당근이 씹히지 않는다
나는 긴 표정으로
토끼는 짧은 꼬리로
낯가림을 하고
작은 숨을 쉬지만
풀은 죽지 않는다
근처에, 라고 대답할 때
우리가 되지 못하는 나도
우리,
그 근처에 있구나
그래서, 종종만 외롭구나
근처로 소풍 갈 때면
당신이 싸준 김밥이 아직 따뜻할 때면
당근을 쏙 빼어 한쪽에 모아둘 때면
맛있었다는 말에 당신이 웃어줄 때면
괄호 같은 당신이
오후를 깰 때면
살아요 살아요
살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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