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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오늘의 시- 근처에 살아요 / 김혜연

작성자김란|작성시간23.12.25|조회수11 목록 댓글 0

근처에 살아요

              김혜연

 

토끼에게 줄 당근을 씹어 본다

내 입맛은 몇 번쯤 바뀌었나

동물원에 못 가본 내가 쪼그려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토끼는 건성건성 당근을 씹는다

 

살아요,라고 말할 때

죽음이 떠다닌 건 몇 해쯤 되었나

죽음이라는 게

당근처럼 한낮처럼

토끼처럼 당근이 씹히지 않는다

 

나는 긴 표정으로 

토끼는 짧은 꼬리로

낯가림을 하고 

작은 숨을 쉬지만

풀은 죽지 않는다

 

근처에, 라고 대답할 때

우리가 되지 못하는 나도

우리,

그 근처에 있구나

그래서, 종종만 외롭구나

 

근처로 소풍 갈 때면

당신이 싸준 김밥이 아직 따뜻할 때면

당근을 쏙 빼어 한쪽에 모아둘 때면

맛있었다는 말에 당신이 웃어줄 때면

 

괄호 같은 당신이

오후를 깰 때면

살아요 살아요

살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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