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서투른 결심
서안나
슬픔은 소주잔처럼 손잡이가 없어 캄캄하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새벽마다 물결로 흩어졌다
삶은 돼지고기 한 근에 찬술 마시고
아버지는 북극처럼 혼자 춥다
습자지처럼 뒤돌아보면 자국만 남는
슬픔은 그런 것이다
봄날 새벽
나도 아버지가 마셨던 녹색 빈 술병을 본다
술병 속에 아버지가 앉아있다
병만 남은 사람의 몸은 고요하다
병 속에서 바람이 흘러나온다 담배 냄새가 났다
애월을 걸으면
물빛이 아버지의 눈빛과 닮았다
당신을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서투른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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