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주의보
김혜연
버스가 생크림 케이크 사이를 달려요 눈벽 같은 크림
위에 달을 닮은 달걀 노른자가 터질 듯 떠오르면 혼자인
내가 찰나의 식탁에 초대되죠 종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번호로 분류되던 벌레는 거인의 무릎에 기어올라 따뜻한
수프에 홀짝여요 커다란 거인의 손바닥 안에서 수프 한
스푼에 더듬이가 잠들고 수프 두 스푼에 가슴이 길어지고
수프 세 스푼에 향긋한 기억이 스쳐가요 차창 밖 눈꽃들
은 노곤한 겨울 동화처럼 서늘하게 서 있고 나는 진작에
나를 잃었다는 걸 직감해요 나는 내가 모르는 소원만 읊
조리는 멍청이니걸요 유행가가 달걀 노른자를 터뜨리면
폭삭 꿈이 내려앉고 폭설 속 버스는 혼자 맞는 생일처럼
느리게 흘러가요
애지시선 120 김혜연 시집 [근처에 살아요]
며칠 폭설이 내려 버스를 타고 출퇴근 하면서 생크림 사이를 오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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